‘세계의 나그네’ 발자취 영종도에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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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국내 첫 세계일주 시작
14년간 지구촌 32바퀴 돌아
영종진공원에 추모공간 마련

인천 영종도의 한 건물 옥상에 있는, 김찬삼 씨가 1960년대 말 세계여행 때 타고 다니던 독일제 폭스바겐 차량. 인천시립박물관이 민간 지원으로 이 차량을 수리해 전시할 계획이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인천 영종도의 한 건물 옥상에 있는, 김찬삼 씨가 1960년대 말 세계여행 때 타고 다니던 독일제 폭스바겐 차량. 인천시립박물관이 민간 지원으로 이 차량을 수리해 전시할 계획이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지구 꿈을 달리는 세기의 돈키호테/오늘도 끝없는 광야를 헤매노라면/어느새 이국땅엔 노을이 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여행가 金粲三,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1958년 국내 첫 세계일주를 시작한 김찬삼 씨(1926∼2003)의 기념 조형물에 새겨진 글귀다. 지구 여행 32바퀴, 순수 여행 시간 14년을 기록했던 김 씨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 ‘지구촌 떠돌이’ ‘세계의 나그네’ ‘세계 여행가’ ‘동양의 마르코 폴로’ ‘여행의 신’ 등이다. 인천시설공단이 최근 인천 중구 영종도 영종진공원 내에 그의 두 발바닥을 부조한 동판, 안내판, 기증 벤치 등 여행가 김 씨를 기리는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조선시대 해군기지 역할을 했던 영종진 터이자 영종역사관, 영종진공원과 함께 있는 이 기념공간은 김 씨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영종하늘도시 개발에 따른 역사관 및 공원이 조성되기 전에 김 씨가 2001년부터 ‘세계여행문화원’과 ‘여행도서관’을 운영했던 자리다.

이곳에서 그가 전 세계를 누비며 모았던 자료, 서적, 사진, 기념품, 화보집 등 20만 점가량을 선보였다. 3차 세계여행(1969년 12월 7일∼1970년 12월 3일) 때 독일에서부터 타고 다니던 ‘폭스바겐 비틀’ 승용차와 태극기를 새긴 국방색 배낭, 쌍안경 등 수십 년간 손때 묻은 여행 물품들이다.

인천시는 가치가 높은 여행 자료를 유족들로부터 기증받아 영종진공원 내에 ‘김찬삼 세계여행박물관’을 2013년까지 건립하기로 하고 양해각서까지 맺었으나, 이 계획은 무산됐다. 수많은 여행 자료를 보관하던 세계여행문화원은 2013년 도시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보상을 받고 문을 닫았다.

김 씨는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지만 창영초, 인천중을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인천을 고향으로 생각했다. 그는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뒤 1950년대 인천고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세계여행에 나섰다. 여행 도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한 뒤 1961년부터 경희대, 수도여자사범대, 세종대에서 강의를 했다. 그는 말년엔 월미도가 바라다보이는 영종도에 정착한 뒤 배낭여행객을 위한 유스호스텔, 여행캠프장을 조성하려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저승의 나그네’가 됐다.

그는 생전에 “‘세계 이성’을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강조했다. 18차 세계여행에 나서기 전인 1991년 1월 11일자 동아일보에 투고한 ‘나의 길, 영원한 지구촌 떠돌이’라는 기고문(31쪽 전면)에서 여행 철학을 소상히 전했다.

‘중학교 다닐 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감격한 나머지 그의 여로를 거꾸로 밟아 유럽으로 가보리라고 마음먹었다.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보는 기쁨도 그지없었지만 감격과 경탄의 눈물을 흘릴 때도 여러 번 있었다. 낯선 나라 사람끼리 민족의식을 초월하여 세계의 사랑과 비극에 공감하고 융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신(旅神)을 믿는다. 나의 영원한 사랑인 륙색(배낭)과 지도, 카메라가 있는 한 나의 여행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인천에서 김 씨의 ‘여행 정신’이 담긴 유품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영종도의 한 건물 옥상에 보관 중인 김 씨의 폭스바겐 비틀(1968년 제작)을 수리해 전시하려 한다. 박물관 측은 최근 “김 씨가 제3차 세계여행 때 애용했던 차량 1대를 기증받았는데, 외부에 장기간 노출돼 노후화가 심한 상태”라며 보존 및 복원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 차량은 김 씨가 1960년대 말 독일에서 알게 된 올가 여사로부터 선물 받은 승용차다. 1970년 한국으로 갖고 들어와 1981년까지 사용하다 영종도의 세계여행문화원 마당에 전시하기도 했다. 차량 내부 보관함에는 김 씨가 기록한 주유 메모지(차계부), 자동차세 영수증, 영종도행 정기여객선 운항시간표 등 생활사 자료가 남아 있다.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희귀 차량에 속하기 때문에 원형 복원을 위한 정밀조사를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김 씨 타계 20주기인 2023년을 맞아 인천시립박물관이나 영종역사관에서 세계 여행 자료를 전시하는 특별전을 마련하려 한다. 인천시설공단은 기증을 통해 영종진공원 내에 김찬삼 추모의자 1호에 이은 2, 3호 의자를 추가해 나가기로 했다. 김 씨의 셋째 딸인 김서라 씨(68)는 “인천에서 백지화된 세계여행박물관이 건립될 수 있다면 가족들이 보관 중인 각종 자료를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영종도#세계의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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