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반짝하곤 잊히는 ‘귀화 국대’… 평창 출전 18명중 12명 소식 끊겨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입력 2021-05-03 03:00수정 2021-05-0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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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는 한국귀화 국가대표들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국내 첫 여자프로농구 귀화 선수인 김한별(35·삼성생명)이 2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밝힌 도쿄 올림픽 출전 소감이다. 지난달 대한민국농구협회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할 여자 대표팀 최종 엔트리 12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011년 미국에서 귀화한 김한별의 이름도 올랐다. 3월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생명 우승을 이끈 뒤 미국에서 쉬고 있는 김한별은 “생애 첫 올림픽에 나도, 가족도 모두 신이 나 있다”며 웃었다.

한국 첫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케냐명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33·청양군청)도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케냐에서 올림픽 대비를 하고 있는 오주한은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할 기회를 줘 정말 감사하다. 한국 국민들에게 꼭 메달을 선물하고 싶다”고 밝혔다.》

도쿄 올림픽을 82일 앞둔 귀화 한국 대표 선수들의 마음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우려 어린 시선도 존재한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전철이 떠올라서다. 당시 총 18명의 외국인 선수가 귀화해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했지만 계속 한국과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6명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은 현재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귀화 선수들이 올림픽 후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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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의 성적에만 급급하다 관리 실종


국내에서 운동선수 귀화의 시작은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4대 프로스포츠(축구 야구 농구 배구) 첫 귀화 선수로 2000년 러시아에서 온 축구 골키퍼 신의손(발레리 사리체프)을 꼽는다. 2009년에는 한국인 어머니를 둔 미국 국적의 이승준과 전태풍이 프로농구 사상 첫 귀화 선수가 됐다. 프로배구 최초 사례는 2019년 홍콩에서 온 진지위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1년 ‘체육 분야 우수인재 특별귀화’ 제도가 도입된 이래 특별귀화로 한국인이 된 선수는 총 27명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2015∼2017년에 특별귀화 선수가 15명으로 유독 많았다. 하지만 당시 17명의 한국인 메달리스트 중 귀화 선수는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귀화 선수의 마지막 메달은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공상정(대만·2011년 귀화)에 멈춰 있다.

평창 올림픽이 끝나고 귀화 선수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아이스하키는 가장 많은 선수(11명)가 귀화했던 종목이었다. 하지만 맷 달튼(캐나다·안양 한라) 등 3명의 남자 선수를 제외한 8명이 한국을 떠났다. 브락 라던스키와 마이클 스위프트(이상 캐나다), 마이크 테스트위드(미국)는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이언 영(캐나다)은 소재조차 불분명하다. 랜디 희수 그리핀(미국)과 대넬 임, 캐롤라인 박(이상 캐나다)은 학업 등 개인 사유를 들어 대표팀을 포기했고, 마리사 브랜트도 미국으로 돌아갔다.

올림픽 이후 이들은 실업팀의 손에 맡겨졌다. 특별귀화 선수의 추천서를 발급해주는 대한체육회만 해도 귀화 선수들에 대한 별도의 관리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귀화 선수들에 대해서는 귀화 사례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기광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는 “귀화 선수들의 사후 관리를 위한 예산을 확보해서 국내에 적응해 살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며 “비인기 종목의 경우 시도체육회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 전국체전을 열어주면 국민의 관심도 생기고 귀화 선수들의 직업이 보장되는 등 선순환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 한국인으로 소속감 가지게 해야


귀화 선수들이 한국에 애국심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김한별은 “우리(귀화 선수)가 한국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한국 국민들께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귀화 절차는 법무부에서 끝났지만, 한국 사회의 인정을 받는 절차는 대다수 귀화 선수들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18년 특별귀화로 한국인이 된 프로농구 선수 라건아(KCC)는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다. 당시 그는 “예전부터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받았지만 최근 아내와 딸을 공격하는 내용까지 늘어났다”며 “나와 가족 모두 한국 생활에 만족하며 한국을 사랑하지만,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소속감은 귀화 선수의 한국 정착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95년 대만에서 귀화한 화교 출신 후인정 프로배구 남자부 KB손해보험 감독은 귀화 선수들에 대한 인정과 따뜻한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국에 오래 살았던 나는 한국 국민들의 거부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귀화 후에도 늘 팬들의 사랑과 환대를 받다 보니 ‘여기(한국)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고 밝혔다.

2016년 귀화한 아이스하키의 달튼은 여전히 팀에 남아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 중이다. ‘한라성’이라는 한국 이름도 얻은 그는 한국에 대한 소속감이 남다르다. 달튼은 “나는 소속팀과 국가대표 동료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남아 있는 이유는 한국을 대표하는 게 그 무엇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라며 “한국 하키의 발전을 위해 내 모든 걸 쏟아부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덕현 중앙대 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귀화가 아닌 용병만 하더라도 한국인 선수들이 그들의 출중한 기량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종목 전반이 발전하는 효과가 생긴다. 한 사회가 다양성을 수용했을 때 그 이득은 우리 사회로 오게 돼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 각 분야에서 다문화 가정의 역할이 늘어나는 지금 스포츠가 앞장서서 다문화를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선수 귀화를 국가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냉정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겨울스포츠 등 비인기 종목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기는 어렵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모든 스포츠 종목을 지원하려다 보면 체육 산업 전반이 다 죽을 수도 있다”며 “평창 때처럼 국가나 협회가 나서서 선수들을 영입하기보다는 선수가 한국에서 용병으로 뛰다 가능성을 보고 자발적으로 원할 경우 귀화를 시켜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강동웅 스포츠부 기자 leper@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귀화국대#관리실종#소속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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