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푸틴은 폭력배” vs 푸틴 “레드라인 넘지말라” 강대강 대치[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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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이어 서방-러시아도 사실상 신냉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와 러시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미국을 필두로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폴란드, 체코 등 유럽연합(EU) 회원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탄압, 러시아 정보기관의 첩보공작 등을 두고 러시아와 속속 외교관 맞추방전을 벌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서로를 ‘살인자(killer)’라고 비난했다.

냉전 시대와 달리 미국에는 중국이라는 더 큰 경쟁자가 있는데도 왜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격화할까. △친러 행보를 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정책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에 대한 미 민주당 전체의 뿌리 깊은 반감 △러시아의 서진(西進) 위협에 대한 서유럽의 불안 △푸틴 정권의 잔혹한 정적(政敵) 탄압 △중국과 손잡고 서방에 맞서려는 러시아의 움직임 등이 이유로 꼽힌다. 서방과 러시아 또한 사실상 신(新)냉전 시대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바이든의 뿌리 깊은 ‘푸틴 불신’

버락 오바마 전 미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대통령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 사건은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창궐과 함께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대외정책 실패 사례로 꼽힌다. 크림반도 합병을 저지하지 못했고 제재를 통해 러시아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지도 못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반군을 지원하며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노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부터 푸틴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2월 푸틴을 ‘폭력배(thug)’로 규정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미 안보, 동맹 훼손 위험 등을 감안할 때 현재 미국의 최대 위협은 러시아”라며 대선에서 이기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둘째 날인 1월 21일 러시아의 4개 적대 행위(미 대선 개입, 미 소프트웨어회사 솔라윈즈 해킹, 나발니 독살 시도,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에 현지 주둔 미군을 살해하라고 사주했다는 의혹)에 대한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지난달 15일에는 러시아 외교관 10명을 추방하고 러시아의 미 국채 매입도 금하는 등 강도 높은 제재를 단행했다.

무엇보다 2016년 미 대선에서 러시아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원하고, 2020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공작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전반에 러시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심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3월 미 국가정보국(DNI)은 “푸틴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러시아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공작을 시도하려 했다. 특히 지지율 열세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했을 때를 대비해 가짜뉴스 등으로 미 대선 결과에 대한 유권자 신뢰를 훼손하려 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중국은 후폭풍을 우려해 개입하지 않았다’고 적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정은숙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미국의 현재 최대 위협은 중국이지만 러시아는 훨씬 오래전부터 위협 요소로 인식됐다”고 진단했다. 2000년부터 장기 집권한 푸틴 대통령은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등 5명의 미 대통령을 상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당적은 달랐어도 모두 푸틴과 잘 지내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7년 이란 핵개발 저지에 미온적인 푸틴을 두고 “3차 세계대전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교활하다” 등으로 혹평했다. 즉, 최근 미국의 대러 강경 노선이 특이한 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친러 행보가 기존 미 외교 방향과 많이 달랐고,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시정하려 한다는 뜻이다.

○푸틴의 정적 탄압도 문제

서방은 푸틴의 집권 내내 정적을 잔혹하게 탄압했다는 점도 비판한다. 나발니는 지난해 8월 맹독 ‘노비초크’에 중독됐다. 2019년 구금된 상태에서 화학물질 중독으로 알레르기성 발작을 일으켰다. 2017년에도 괴한의 독극물 공격으로 동공과 각막 손상을 입었다.

올해 1월 다시 구금된 나발니는 당국이 노비초크 후유증을 치료할 외부 의료진을 보내주지 않는다며 3월 31일부터 지난달 23일까지 단식 투쟁을 벌였다. 지난달 29일 화상으로 공개된 나발니의 단식 후 모습은 처참했다. 나발니 본인 또한 “최근 몸무게가 72kg으로 중학교 1학년 때와 비슷하다”고 토로했다.

푸틴 정권은 집권 내내 정적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푸틴의 직접 지시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서방은 러시아 정보기관이 깊숙이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정부 언론인 유리 셰코치힌은 살충제를 만들 때 쓰이는 탈륨 중독으로, 푸틴의 옛 경호원 로만 체포프는 차를 마신 후 숨졌다.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역시 방사성물질 폴로늄이 든 차를 마시고 사망했다. 야권 지도자 세르게이 유셴코프, 반정부 언론인 안나 폴릿콥스카야, 2015년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는 총격에 스러졌다. 2013년 모두 목을 매서 숨진 반푸틴 재벌 보리스 베레좁스키, 반정부 운동가 알렉산드르 돌마토프의 사망 뒤에도 푸틴 정권이 있다는 설이 제기된다.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푸틴이 전제군주 수준의 정적 암살 및 탄압을 21세기에 자행하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로 보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또한 “나발니가 숨지면 러시아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계 주민 많은 우크라 동부는 ‘새 베를린 장벽’

EU 또한 러시아에 부쩍 날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15일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 제재를 발표하자마자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즉각 “유럽대서양 안보에 러시아가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을 지지하고 연대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와의 외교관 맞추방전에는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서유럽은 물론이고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동유럽 주요 국가 또한 속속 가담했다. 이는 18,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계속된 러시아의 서진(西進) 위협, 옛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 정보기관이 전 유럽에서 대대적인 비밀 첩보 공작을 벌인 것에 대한 반감으로 풀이된다. 4월 17일 체코가 러시아 외교관 18명을 추방한 것 역시 러시아 정보요원 2명이 2014년 남부 브르베티체 탄약창고를 폭발시켜 2명이 숨진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다.

특히 푸틴 정권이 서유럽과 동유럽의 경계에 있는 우크라이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에 대한 유럽 전반의 경계감이 상당하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와 서유럽 모두 우크라이나를 서로의 군사력을 막아낼 최후의 방어선으로 여기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새 베를린 장벽’이라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에 속했던 동유럽 국가 중 인구(약 4150만 명)와 경제 규모가 가장 크다. 한국의 약 6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를 지녔고 석탄 천연가스 등 자원도 풍부하다. 흑해와 맞닿아 있고 주요 에너지 수송로여서 지정학적 가치도 크다. 벨기에 매체 ‘EU옵서버’는 6일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의 궁극적 목표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정복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틴은 특히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주민이 약 30%인 점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그는 크림반도 합병 때도 대다수가 러시아계인 크림반도 주민이 압도적으로 합병을 찬성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 반발을 물리쳤다. 푸틴은 2019년 “우크라이나 주민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신속히 발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가 우크라이나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우크라이나는 국토 한복판을 흐르는 드네프르강을 경계로 오랫동안 동서 갈등을 겪었다. 서쪽엔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 동쪽엔 러시아어를 쓰는 러시아계 주민이 주로 거주한다. 옛 소련 시절 러시아가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동부에 중공업 단지를 집중 육성한 탓에 양측의 경제 격차가 커진 것도 갈등을 부추겼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후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도네츠크, 루간스크, 하리코프 등 동부 3개주는 러시아와의 합병을 주장하며 친유럽 성향의 중앙정부와 사실상 내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동부 반군을 지원해 왔다. 3개 지역 중 석탄 산업이 발달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가 돈바스로 불린다.

유엔에 따르면 크림반도 합병 후 현재까지 동부 반군과 정부군 교전으로 1만4000명 이상이 숨졌다. 러시아군이 지난달 초부터 돈바스 인근 국경지대에 12만 병력을 집결시키자 서방은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까지 합병하려는 것 아니냐며 잔뜩 긴장했다. 미국과 나토 또한 크림반도와 맞닿은 흑해에 군함 등을 보내 일촉즉발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달 22일 러시아군이 철수하면서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언제든 전쟁 위협이 고조될 수 있다. BBC는 서방에 치우친 옛 위성국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 영향력 아래 두려는 푸틴 정권의 팽창주의가 지속되는 한 양측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EU vs 러-중 연합구도 뚜렷

현재 서방과 러시아의 대결이 냉전 시절과 가장 다른 점은 중국이 러시아 쪽으로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중국과 러시아는 공산주의 종주국, 국경 갈등 등으로 대립하기도 했다.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한 후 중국이 ‘적의 적은 내 친구’라는 이유로 러시아와 손잡는 모습이 뚜렷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야심 차게 추진한 기후변화 화상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향해 입을 맞춘 듯 날 선 반응을 쏟아냈다. 시진핑 주석은 “개발도상국들이 저탄소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선진국이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미국이 역사적으로 최대 탄소 배출국이었다며 특정 국가가 아닌 유엔 주도의 협력에 나서자고 주장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중국-러시아 우호 협력조약 체결 20주년인 올해 3월 22, 23일 중국을 찾아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회동하고 양국 협력을 강화할 뜻을 밝혔다. 둘은 회담 내내 미국을 거론하며 특정 국가가 세계 질서를 좌우할 수 없으며 다자주의로 맞서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인권, 민주주의 가치를 통해 자유진영 국가를 결집시키고 있는 만큼 중국과 러시아 또한 군사안보, 송유관 등 경제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나토에 견제 받는 러시아, 쿼드 동맹에 포위된 중국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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