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여성의 코인열차 탑승기… “코인 실제가격 그래프 그려놓고 작품 썼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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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달까지 가자’ 낸 장류진 작가 인터뷰

장류진
“래퍼 도끼의 곡 ‘내가’의 가사 중에 ‘내가 망할 것 같애?’라는 게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사는 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었죠.”

가상화폐에 투자한 직장인들의 심리를 실감나게 담은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사진)를 15일 펴낸 장류진 소설가(35·여)가 말했다. 이른바 ‘한 방’에 인생을 거는 주인공들이 벌을 받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14일 만난 그는 “소설은 마음대로 상상해도 되는 곳”이라며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3억 원씩 그냥 공짜로 주고 싶었다”고 했다.

장 작가는 2019년 직장인의 애환을 사실적이고 흡인력 있게 그린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장편소설은 어떤 마음으로 썼을까. 장 작가는 “직장에 다니던 시절, 지치고 힘들 때면 누군가 내게 돈 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 탓에 ‘달까지 가자’를 쓰게 된 것 같다”며 웃었다. 2년 전까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느꼈던 감정을 담았다. 그는 “소설을 쓸 때만 해도 가상화폐 가격(현재 1이더리움이 약 300만 원)이 이렇게 많이 오를지 몰랐다”며 “우연하게도 소설 출간 시점과 가상화폐 가격 급등 시기가 겹쳤다”면서 웃었다. 소설에서 1이더리움은 15만 원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230만 원까지 오른다.

소설은 한 식품회사에 다니는 20, 30대 여성 3명이 이더리움 투자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이더리움의 가격 그래프에 따라 주인공들의 희비도 오락가락한다. ‘달까지 가자’라는 제목은 가상화폐 가격 폭등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은어다. ‘흙수저 여성 청년 3인의 코인열차 탑승기’(한영인 문학평론가)라는 평가처럼 가상화폐에 빠진 젊은 세대의 모습을 발 빠르게 포착했다.

그는 “이전 세대와 달리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고, 월급을 받아 집 평수를 차근차근 늘려가는 걸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상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현 세태를 드러내기 위해 이더리움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가져왔다는 것. 그의 말대로 소설엔 시대상이 여실히 담겨 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어릴 적부터 부모의 재정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회사에선 ‘공채’(공개채용) 출신이 아니라며 푸대접 받기 일쑤다. 주인공들이 이더리움 투자에 빠지는 것도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여성 청년’의 현실적인 모습도 담았다. 주인공들은 40, 50대 남성 상사의 눈치를 보며 산다. 삼겹살과 소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남성들과 달리 이들은 커피 전문점의 한구석을 아지트로 삼으며 수다를 떤다. 그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가 여성이니까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며 “어느 땐 돈을 밝히기도 하고, 어느 땐 돈에 대한 욕망을 스스로 경계하기도 하는 제 모습도 담겼다”고 했다.

그는 가상화폐 열풍이 휘몰아친 대한민국에서 유행하는 은어를 사용해 감칠맛을 더한다. ‘떡상’(시세 급등) ‘존버’(흔들리지 않고 버틴다) ‘김프’(한국 거래소의 가상화폐 가격이 외국 거래소보다 높은 현상) 같은 말로 소설과 현실을 뒤섞는다.

그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작품의 배경이 된 2017, 2018년 이더리움의 실제 가격 그래프를 그려놓고 글을 쓰고 고쳤다”며 “독자들이 책을 덮고 나서 ‘좋았다’는 감정이 남는 설탕 같은 소설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흙수저#여성#코인열차 탑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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