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은 슬랩스틱 배우? 영화로 세상을 바꾸려한 감독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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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영화 ‘키드’ 국내 재개봉
정식 개봉 기준 67편 영화 제작… ‘모던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등
인간 존엄-군부정권 독재 비판에 국내서 상영-개봉 금지 되기도
“희극배우 이미지만 부각됐지만 연기-감독-음악제작 등 병행
웃음 선사한 1인 다역 천재 감독”

찰리 채플린은 자신이 출연한 여러 작품의 감독이었다. 그는 1910년대부터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첫 장편영화 ‘키드’를 시작으로 거장 감독 반열에 올랐다. 왼쪽부터 ‘키드’(1921년), ‘황금광시대’(1925년), ‘서커스’(1928년), ‘시티라이트’(1931년) ‘살인광시대’(1947년) ‘라임라이트’(1952년)의 국내 상영 포스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엣나인필름 제공
찰리 채플린은 자신이 출연한 여러 작품의 감독이었다. 그는 1910년대부터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첫 장편영화 ‘키드’를 시작으로 거장 감독 반열에 올랐다. 왼쪽부터 ‘키드’(1921년), ‘황금광시대’(1925년), ‘서커스’(1928년), ‘시티라이트’(1931년) ‘살인광시대’(1947년) ‘라임라이트’(1952년)의 국내 상영 포스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엣나인필름 제공
#제시어1

60편 이상의 영화 제작, 미국감독조합상 명예상, 아카데미시상식 공로상, 베니스영화제 특별공로상

#제시어2

짧은 콧수염, 지팡이, 헐렁한 바지에 꽉 끼는 상의, 중절모, 뒤뚱거리는 발걸음

두 종류의 제시어를 보고 각각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이는 모두 찰리 채플린(1889∼1977)을 설명하는 수식어다. 영화 팬이 아니라면 제시어1과 채플린을 연결짓기 어려울 것이다. 대개는 채플린을 과장된 동작이나 소리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슬랩스틱’ 배우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채플린은 감독이기도 했다. 그는 88세에 눈을 감을 때까지 정식 개봉작 기준으로 6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첫 장편 영화 ‘키드(Kid)’는 올해 개봉 100주년을 맞아 21일 국내에서 재개봉됐다. 영화는 채플린의 자전적 이야기로, 버려진 아이 존과 그를 사랑으로 품은 떠돌이 찰리에 대한 드라마다. 수입·배급사인 엣나인필름은 “감독으로서의 채플린의 세계에 문을 연 작품”이라고 말했다.

감독 채플린은 역사에 남을 만한 명작들을 쏟아냈다. 금을 찾아 몰려든 이들의 이야기 ‘황금광시대’(1925년)부터 소외된 방랑자를 그린 ‘서커스’(1928년), 눈이 먼 젊은 여인이 등장하는 ‘시티라이트’(1931년)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살인광시대’(1947년)나 ‘뉴욕의 왕’(1957년)을 통해 자본주의와 매카시즘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백작’(1916년), ‘어깨총’(1918년) 같은 그의 초기 단편 코미디는 국내에서 1918년부터 1930년대에 걸쳐 70회 이상 상영과 재상영을 거듭했다. 당시 그의 코미디를 번안한 연극들이 공연됐을 정도로 채플린은 우리에게도 유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의 인기는 1934년 변화를 맞는다. 일본이 ‘활동사진영화취체규칙’을 발표하고 할리우드 영화를 일본 영화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한상언 한상언영화연구소장은 “당시 일본은 불황이 시작되고 중일전쟁을 목전에 두면서 외환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수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시행세칙에 따라 1937년까지 외국 영화의 극장 상영 비율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미국 영화는 적성국가라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다.

특히 근대화 속 인간 소외를 다룬 ‘모던타임즈’(1936년)와 전체주의를 풍자한 ‘위대한 독재자’(1940년)는 채플린의 대표작임에도 불구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에야 한국에 정식으로 개봉됐다. 그 전에 모던타임즈는 1938년 단 한 번 상영되는 데 그쳤고 위대한 독재자는 아예 개봉하지 못했다. 군부정권의 독재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그의 영화는 당시 ‘불온한 콘텐츠’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박선영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채플린이 배우로서 개성이 강해 그 이미지만 부각됐을 수 있다”며 “그는 1910년대부터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시선과 웃음에 대한 철학을 영화로 구현해내기 위해 연기뿐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음악 제작까지 병행한 1인 다역의 천재 감독”이라고 말했다.

“나는 앞으로 영화를 몇 편 더 만들 생각이다. … (중략) … 나는 여전히 야망이 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은퇴할 생각이 없다.”

그는 자서전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밝혔다. 채플린이 ‘영화 제작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 감독’이었다는 정체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채플린#키드#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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