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의 ‘코리아 프리미엄’, 어디쯤 있나[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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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창조경제 방역… 정권마다 새 구호 반복
‘기업-재정-국민통합’ 있는 강점부터 살려야

박용 경제부장
박용 경제부장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프리미엄(고평가)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방역에 성공하고 2년 연속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대됐으니 코리아 프리미엄을 언급할 수는 있겠지만 너무 일렀다.

지금도 시민들은 상극인 방역과 경제를 잡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헬스장 노래방 당구장 등 자영업자들이 들고일어나는 마당에 ‘코리아 프리미엄’ 타령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어 보인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방역 실력을 인정하지만 프리미엄까진 아니다. ‘방역 프리미엄’이 그렇게 대단했다면 외국인투자가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바닥을 친 지난해 3월 19일부터 이달 6일까지 13조 원 넘게 한국 주식을 팔진 않았을 것이다.

구호도 참신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7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넉 달 전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돼 코리아 프리미엄이 1%만 높아져도 약 5조 원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했다. 2013년엔 “지금보다 국격이 높은 때는 일찍이 우리 역사에서 없었다”며 ‘코리아 프리미엄’을 주장했다. 그 당시에도 믿지 못한 이들이 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2016년 3월 한국 문화와 우수문화상품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창출해야 한다”며 “그 해답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자 ‘G20’에서 ‘창조경제’로 방점이 바뀐 것이다. 현 정부에선 누구도 창조경제를 입에 담지 않는다.

시장에선 다른 얘길 한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외친 두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정부가 시장과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는다. 얼마 전 만난 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홍콩의 외국인투자가와 만났는데, ‘북한 핵과 기업 지배구조 외에도 규제를 쏟아내는 한국 정부가 오히려 디스카운트 요인’이라고 하더라.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한다.

해외 언론이 인정하는 ‘코리아 프리미엄’은 따로 있다. 반도체 배터리 전자 자동차부터 방탄소년단 등을 배출하는 민간 부문의 역동성, 금융위기를 막아낸 탄탄한 국가 재정, 한마음으로 외환위기 국난을 극복해낸 한국인의 힘을 꼽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상쇄하던 이 강점들이 무뎌지는 게 오히려 걱정이다.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에 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쏟아져 나오는 규제로 힘들다고 한다.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미국에서 가전제품 특수가 생겼는데도 주 52시간 근무제에 묶여 탄력적으로 생산을 늘리지 못한다고 발을 구르던 한 기업인의 모습도 떠오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방패막이가 돼준 탄탄한 국가 재정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 정치권의 선심 공세에 무너지고 있다. 술 취한 주인이 집사에게 곳간 열쇠를 내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이다. 지지자들만 보는 편 가르기 정치는 해외 언론이 부러워한 금 모으기 운동의 주역인 시민들을 분열시킨다.

배우 조승우가 나오는 은행 광고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정상에 오르는 게 아니야, 올라야지! … 생각만으론 아무것도 아냐.” 실행 없는 구호는 말잔치일 뿐이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인정받으려면 있는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대통령들의 반복되는 ‘코리아 프리미엄’ 구호에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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