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한파[횡설수설/김선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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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70년대 겨울철, 우리나라 가옥들은 대부분 웃풍이 거셌다. 방 안의 천장이나 벽 사이로 매섭게 찬 기운이 스며들었다. 초저녁부터 군불로 달군 아랫목에 밥그릇을 묻고, 밤에는 온 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웃풍은 센데 바닥의 온기는 이불이 가두니 밤에 마시려고 머리맡에 두고 잔 냉수 위에는 살얼음이 꼈다. ‘가난한 날의 한파’가 남긴 추억이다.

▷35년 만에 한반도에 가장 추운 날씨가 찾아왔다. 기상청에 따르면 어제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8.6도로 1986년 1월 5일 영하 19.2도 다음으로 낮은 온도를 기록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발효돼 강원 영서와 산지는 영하 25도 이하까지 떨어졌다. 제주에까지 대설특보가 내려 시간당 5cm 내외의 강한 눈이 내렸다. 추위가 이어져 한강은 이번 주말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지점이 얼긴 했지만 서울 한강대교 제2교각과 4교각 사이 100m 구역이 얼어야 공식적인 ‘한강 결빙’이다.

▷이례적인 거센 한파는 북극에서 온 것이다. 북극 주변 냉기를 둘러싸는 제트기류가 온난화로 느슨해지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중위도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은 현상인 ‘라니냐’(엘니뇨의 반대)도 한 이유다. 1955년 처음 관측된 라니냐는 올해가 15번째다. 북극이 따뜻해져 얼음이 녹아내릴수록 한반도는 추워지는 온난화의 역설이다.

▷한파로 폭설이 내리면서 ‘겨울왕국’이 됐다. 아파트 단지들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뛰어나와 눈사람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영화 겨울왕국의 “같이 눈사람 만들래?” 노랫말을 흥얼거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난방이 잘되는 고층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는 ‘웃풍’이란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한파가 닥쳐도 집 안에서 얇은 옷만 입고 지낸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 실제로 우리나라 겨울 평균 온도는 웃풍과 아궁이가 있던 옛날보다 1.5도 올랐다.

▷북극 한파는 반짝 히트상품도 낳았다. 눈을 오리, 하트 등의 모양으로 찍어내는 플라스틱 집게틀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도 이 틀을 사용해 만든 일곱 개의 ‘오리 눈사람’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그 인기에 불을 붙였다. 한파도 시대마다 세대마다 다른 추억을 낳는다. 다만 추운 때일수록 사회적 약자들을 둘러보는 온정이 필요하다. 집 나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식구를 생각해 아랫목에 밥그릇 하나 정도 따로 묻어두었던 그 옛날 어머니의 마음 같은…. 폭설 같은 악천후에는 배달음식을 자제하자는 요즘 시민들의 자발적 다짐도 고맙다. 추우니까 사랑이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북극한파#한파#한반도#겨울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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