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포 핵무기 저장기지 최초 공개[주성하의 서울과 평양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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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11축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북한은 이런 ICBM과 핵탄두를 자강도 만포에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
북한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11축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북한은 이런 ICBM과 핵탄두를 자강도 만포에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약 1년 전 개봉된 영화 ‘백두산’에서는 특전사 조인창(하정우) 대위가 특수임무를 받고 북한에 침투해 지하에 숨겨놓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서 핵탄두를 분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ICBM과 핵탄두 개발 성공을 이미 오래전에 발표한 김정은도 영화처럼 어딘가에 이런 ‘최후의 무기’들을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소가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이 최근 몇 년 사이 ‘최후의 병기창’인 핵탄두 저장고를 자강도 만포시에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정보가 얼마 전 입수됐다.

지금까지 북한 핵문제를 말할 때 평안북도 영변의 핵시설이 언론에 단골로 등장했지만 만포가 언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북한 핵무기 개발의 양대 거점은 황해북도 평산 우라늄정련공장, 평안북도 영변 우라늄농축시설이다. 여기에 더해 자강도 만포 핵탄두 저장고까지 포함하면 핵무기 제작 및 보관의 3대 축이 완성되게 된다. 요약하면 북한의 핵무기 생산 시스템은 평산에서 우라늄 정광을 캐서 현지에서 정련한 뒤 영변에 싣고 와 농축시켜 핵탄두를 만들고 이 탄두를 만포에 싣고 가서 보관하는 것이다. 세 지역은 철길로 연결돼 있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평산군 청수리에 위치한 ‘남천화학단지’에서는 인근 광산에서 캔 우라늄 광석을 정제해 ‘옐로케이크’라고 불리는 1차 원료를 만든다. 이것을 영변에 싣고 가 원심분리기로 고농축시켜 핵무기 제조용 우라늄을 생산한다.

그런데 소식통에 따르면 몇 년 전부터 평산과 영변 단지의 운영은 사실상 중단됐다고 한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공장 중 하나가 있는 평산군 청수리는 과거엔 정전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 비일비재하기 시작했다. 이는 우라늄을 필요한 만큼 다 생산해 평산 우라늄정련공장은 자기 역할을 끝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위성사진으로 확인해 봐도 청수리엔 최근 정전에 대비해 태양광발전 패널을 단 집들이 크게 늘었다.

영변 핵 단지와 그에 포함된 인근 분강지구 역시 현재는 거의 가동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2018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이미 영변의 용도도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북한은 핵탄두 몇십 개만 보유하고 있어도 전략적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으며 영변 핵시설을 끊임없이 가동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이 이미 만든 핵무기를 어디에 숨겼을까 하는 것이다. 김정은도 숨겨둘 곳을 엄청 고심해 정했을 것이고, 선택된 지역이 바로 자강도 만포라고 한다. 김정은은 북방의 외진 지역인 만포를 2017년 12월에 방문했고, 이듬해 6월에도 또 방문했다. 핵무기 저장고 건설과 관련된 시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왜 만포를 선택했을까. 만포는 압록강 옆 국경도시이다. 이곳 산 아래 깊숙한 곳에 저장고를 건설해 입구를 중국 쪽 산비탈로 빼면 타격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미사일을 쏘면 산이 막아서고, 중국 영공에 들어가지 않고선 공습도 어렵다. 특히 만포엔 아연광산이 많은데, 이는 이곳이 지질학적으로 단단하다는 뜻이다.

또 만포는 평양과 직통 철도로 연결돼 있다. 전쟁이 터지면 김정은은 빠르게 만포로 달아날 수 있지만, 공격자의 입장에선 제일 마지막에 함락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만포다. 이는 김정은의 처지에서 볼 때 최악의 경우 마지막까지 핵무기를 껴안고 흔들며 협박을 할 수 있는 최후의 지역이 만포라는 의미다.

물론 만포가 국경도시라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핵무기를 탈취해 갈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이 핵을 가진 북한을 방패로 끼고 있어야 할 이유가 더 크기 때문에 김정은은 그런 위험은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만포뿐만 아니라 백두산 아래에도 몇 개 더 숨겨놨을 수도 있지만, 유사시 그곳까지 갈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다.

김정은이 핵탄두를 만포에 숨겼다는 증언이 나온 이상 앞으로 국제사회는 이곳을 집중적으로 주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국도 이미 용도 폐기됐다는 영변 핵시설이나 평산 핵시설에 현혹되지 말고 만포의 숨겨진 핵탄두 저장고까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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