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약[횡설수설/이은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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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자녀 5명과 살던 A 씨는 지난해 배우자와 함께 수도권으로 주소를 옮겼다. B 씨의 집에 동거인으로 들어가는 형식이었다. 자녀가 5명이나 돼 청약가점이 만점에 가까운 A 씨는 이후 수도권 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다. 이상한 점은 청약과 계약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를 A 씨가 아니라 B 씨가 모두 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는 B 씨가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가점이 높은 A 씨의 명의를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조만간 주택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다.

▷부정청약 수단에는 B 씨와 같은 사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토부가 최근 적발한 의심 사례 중에는 위장결혼이나 위장이혼을 하는 수법도 등장한다. 위장결혼의 경우 주민등록상, 갓 결혼한 재혼 가정에 아내의 동거남까지 같이 사는 내용도 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당첨된 부부가 가점제로 청약하려고 이혼하는 사례도 흔하다. 특별공급에 당첨된 가구원은 가점제로 청약할 수 없기 때문에 이혼을 하고 청약을 하는 것이다. 손자가 90대 할머니를 고시원에 위장 전입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있었다.

▷청약에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이유는 대개 가점을 높게 받기 위해서다. 가점은 무주택기간, 청약통장 가입기간, 부양가족 수로 결정되는데 가입기간 등에 비해 늘리기 어려운 부양가족 수가 관건이다. 신혼부부나 다자녀 특별공급 때는 자녀가 많은 순으로 당첨자를 결정한다. 2자녀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다. 신혼 기준이 혼인기간 7년 이내인데 지난해 과천 지식정보타운 청약 때는 일부 주택형에서 커트라인이 3자녀로 결정됐다. “맞벌이가 일반화된 요즘 7년 이내에 애를 3명 낳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란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청약통장 가입자는 2700만 명을 돌파했다. 청약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분양가상한제로 시세보다 싼 ‘로또 아파트’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청약을 앞둔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분양가는 3.3m²당 5000만 원대로 예상되는데 바로 옆 단지 시세는 3.3m²당 1억 원에 육박한다. 전용 84m² 기준으로 시세차익이 10억 원을 훌쩍 넘을 수도 있으니 ‘진짜 로또’ 당첨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분양가상한제는 1977년 처음 시행됐을 때부터 공급이 줄고 소수 당첨자가 개발 이익을 독점하는 등 문제를 초래했다. 한때 폐지되기도 했던 분양가상한제는 2019년 다시 실질적으로 부활됐다. 가격을 누르니 당첨자의 시세차익은 커졌고, 부정청약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당장 분양가 규제를 푸는 것이 어렵다면 공공기금을 더 내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채권입찰제의 부활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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