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곡으로 色을 들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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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왕혜인 ‘빛의 유희’ 발매

서양음악의 역사에서 사람의 귀와 눈이 가장 가까웠던 때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전환기’였을 것이다. 이 시기에 프랑스의 라벨과 드뷔시는 피아노곡에 ‘거울’ ‘영상’ 등 빛을 불러내는 제목들을 붙였고, 러시아의 스크랴빈은 심지어 소리와 빛을 동시에 뿜어내는 악기를 만들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왕혜인이 소리로 빛을 들려주는 피아노곡 여섯 곡을 새 앨범 ‘빛의 유희’(Jeux de Lumi‘ere·사진)로 묶어 냈다. 첫 곡인 라벨 ‘거울’ 중 ‘슬픈 새들’부터 거침없이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빛의 포말이 귀를 감싼다. 강박(强拍)과 약박의 당기고 풀어냄이 귀로 듣는 색의 심도를 높여준다.

‘거울’ 중 ‘어릿광대의 아침노래’는 리드미컬한 빠른 연타가 연주자에게 기교적으로 도전정신을 불러오는 곡이다. 전설적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도 ‘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은 운(運)에 달렸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음반에서는, 연주자가 운을 딛고 리듬의 재미를 한껏 즐기는 게 느껴진다. 서울 JCC아트홀에서 녹음한 1∼5트랙은 객석 가장 앞줄에서 듣는 듯, 악기 모습이 크게 잡힐 듯 가까운 느낌과 좌우로 안락하게 퍼진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트랙인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은 2014년 금호아트홀 공연 실황을 실었다. 이 외 앨범 제목에 영감을 준 라벨 ‘물의 유희’, 스크랴빈 소나타 4번과 ‘왼손을 위한 녹턴’ 등을 앨범에 담았다.

음반에 실은 연주 노트에 왕혜인은 “유학 시절 스승이었던 피아니스트 베른트 글렘저가 피아노로 색의 마법을 부리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적었다.

“우주 공간을 채우는 물질의 색은 어떠할지, 빛과 하나가 되었을 때의 느낌은 어떠할지…. 나는 손에 닿는 건반의 감촉이라는 뚜렷한 물질적 감각을 가지고, 동시에 그것을 휘발성 울림으로 날려 보낸다. 사진은 세상을 빛으로 그리고, 나는 빛을 소리로 그린다.”

왕혜인은 서울대와 독일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고 2006년 독일 하벨란트 페스티벌 콩쿠르 1위 및 베토벤 소나타상, 쇼팽 에튀드상을 받았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노#서양음악#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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