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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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불신이 이단자 트럼프 낳아
조국 사태 겪은 한국은 괜찮은가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미국 트럼프 정부의 난맥상이 점입가경이다. 얼마 전까지 대통령을 보좌하던 공직자가 외교관계를 망가뜨리는 책을 내고, 책을 통해 드러난 대통령은 국익이나 국제사회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 것이 적나라했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책을 보면 이렇게 변덕스럽고 극단적인 미국 지도자들과 한미동맹에 계속 한반도의 운명을 의지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거짓말을 일삼고 공직을 사익에 이용하는 트럼프의 행동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개인 골프장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딸과 사위가 나랏일에 개입하는가 하면 트윗으로 장관을 해고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한국이라면 탄핵을 당해도 여러 번 당했을 것이다.

세계 민주주의의 맏형이자 자유무역과 인권의 보루를 자처했던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을까.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경제사가인 애덤 투즈 등 학자들의 분석은 일치한다. 미국 트럼프의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유럽 여러 나라의 극우 포퓰리즘은 모두 서민들의 팍팍한 삶, 그리고 심해지는 불평등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심하다. 미국 경제와 기업들은 예나 지금이나 잘나가지만 상위 20%를 제외한 80% 국민은 하루하루가 힘겹다. 2008년 금융위기로 수백만 명이 집을 잃고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살려낸 금융자본은 다시 부와 특권을 독차지했다. 민주당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해주지 않았고, 오바마와 힐러리 등 지도자들은 위기를 부른 월가와 한편으로 보였을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경제학자다. 그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과거 하층민과 노동자들을 대변했던 미국 민주당과 유럽의 사회민주당들이 점점 고학력 엘리트들의 정당으로 변해 노동자층을 배반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상인 우파와 브라만 좌파의 공생’, 즉 부자를 대변하는 보수정당과 교육받은 상류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만 있고, 자신의 대변자는 사라진 서민들이 극우 포퓰리즘으로 몰려간다고 분석했다.

기존 정치인들과 사회 엘리트들을 믿지 못한 미국인들은 정치 아마추어이자 이단자였던 트럼프를 선택했다. 도덕성은 없지만 이민자와 자유무역이 일자리를 뺏는다는 그의 주장에 솔깃했다. ‘말로는 고결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는 민주당은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트럼프라는 나쁜 선택을 했고, 지금 나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불평등이라는 근본 문제를 치유하지 못한 채 극심한 인종차별과 사회갈등,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서민경제 파탄으로 달려가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지난해 한국 사회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귀족 입시’로 심한 갈등을 겪었다. 조 전 장관의 가족이 실제로 위법 행위를 했는지, 아니면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정치적 무리수였는지는 앞으로 법적 판단을 받을 일이다. 그러나 당시 많은 젊은이는 위법 여부와 별개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다더니 586진보도 기득권층인 건 보수랑 똑같다”며 분노했다. 한국의 진보도 이미 특권층이 되어 서민들과 멀어진 것은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사람 중심 경제’를 외치며 불평등 완화와 사회안전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말한 ‘빵을 살 자유’도 같은 방향이다. 정책은 방향도 중요하지만 일 잘하는 실력도 중요하다. 진보건 보수건 미래세대를 포함한 사회 밑바닥의 소리 없는 외침을 잘 듣고 민생의 어려움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도 언제 트럼프 같은 아마추어 극단주의에 빠질지 모른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극단주의#트럼프#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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