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한일관계는 없었다…‘문전박대’ 당한 국회 대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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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8월 3일 0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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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벽은 높고 견고했다. 국회의장의 친서를 손에 쥐고 출국한 국회 방일 의원단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강행을 막을 수 없겠다는 뼈아픈 현실을 체감하고 돌아왔다. 일본 여야의 초당적(?) ‘불신’이 우리 의원단의 초당적 호소를 압도한 격이었다.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문전박대’는 의원외교의 한계를 분명히 그었다.

우리 의원단의 대화 노력은 일본 정부 측에 조금도 가닿지 못하는 듯 했다. 갈등하던 여야 5당 의원들이 어렵사리 초당적 의원단을 꾸려 한 비행기를 탄 결론 치고는 안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말 많고 탈 많았던 1박2일간의 국회방일단 일정을 타임라인으로 정리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D-2, 7월31일 오전 8시40분 ~오후 3시

일본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이틀 앞둔 지난 7월31일 여야 5당 의원으로 꾸려진 국회 방일의원단이 도쿄 뉴오타니 호텔 16층에서 자민당 중진인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과 오찬 및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보안은 삼엄했다. 일본과 한국 취재진 수십여명은 로비에서 대기하며 브리핑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오후 1시45분 국회 방일의원단 단장 서청원 의원이 방송 카메라와 취재진 앞에 섰다.

한일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가 폭죽처럼 터졌다. 8선 관록의 원로지만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서 의원은 양국관계가 이대로 가선 안된다는 내용의 한일 공동입장문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누카가 회장과 계획에 없던 추가 만남까지 성사되며 대화 무드가 달아올랐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D-2, 7월31일 오후 3시30분~밤 10시

오후 3시30분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 당사를 찾았을 때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미리 나와 기다리며 의원들에 일일이 악수를 건넸다. 야마구치 대표는 “무더운 날씨에 이웃, 벗인 여러분들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일본과 한국은 지금까지 민간차원에서 교류가 두터워져왔고,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자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간담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4시 이후 우리 측 실무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간담회장 밖으로 실무자들이 조용히 나와 여기저기 긴박하게 전화를 돌렸다. 불과 1시간 후인 오후 5시 일정이었던 자민당의 ‘2인자’ 니카이 토시히로 간사장 측에서 회의를 미뤄야겠다는 통보를 해온 것. 자민당 측에선 일정상 만남이 불가능하다면서, 다음날(8월1일) 오전 11시30분에 만나자고 알려왔다. 우리 측 의원들은 이말을 믿었다.

상황은 곧 반전됐다. 저녁 9시가 지나 일한의원연맹의 가와무라 다케오 간사장이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연락해 면담 취소를 통보했다. 의원들은 밤 10시까지 호텔 바에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다. 의원단 일부를 만나기 위해 호텔을 찾은 재일동포단체 관계자들은 “일본인들은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속내를 얘기하지 않는다. 진작에 왔어야 한다. 이제와서 만난다고 마음을 돌리겠나”라며 “일본에서 밥벌이 하는 우리는 수족관 바닥을 기며 숨죽이고 있는 ‘광어’가 된 기분”이라고 참담함을 표현했다. 일본 특유의 손님 접대 문화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진실된 마음으로 손님을 접대하다)’는 자취를 감췄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D-1, 8월1일 오전 11시~오후 1시

다음날 오전 ‘외교적 결례’ 논란이 불붙었다. 방일 의원단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너무 아베 정부를 안만나줬다는 일본 측의 서운함과 불신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자민당 측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긴급안보회의를 취소 이유로 들었는데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회동 불발에 대한 설명을 기다리던 취재진이 일정을 위해 승합차에 올라탄 강창일 의원에 질문을 던졌다. 강 의원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 의원은 “아주 결례야. 결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당과의 만남을 재추진하느냐’라는 질문에는 “우리가 거지냐”고 잘라 말했다.

이어진 일본 야당인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와의 회동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국민민주당 측에선 당사 건물에 우리 측 취재진의 출입 자체를 거부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D-1, 8월1일 오후 1시30분~오후 4시

의원단은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당사로 향했다. 입헌민주당에선 당대표 대신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이 나왔다. 모두발언 후 비공개로 전환된 지 50여분이 지난 무렵, 후쿠야마 간사장이 먼저 급하게 뛰어나갔다.

이날 임시국회 개회를 선언하기 위해 일왕이 국회에 오기 때문이었다. 늦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일정이 촉박해 손님을 남겨두고 주인이 먼저 자리를 뜬 셈이 됐다. 간사장이 나가자 우리 측 의원단은 취재진을 회의실 안으로 불러 브리핑을 자청했다.

매끈한 악수 아래 보이는 갈등은 생각보다 깊었다. 서청원 의원은 “일본 국민들이 (한국이) 징용문제 배상 약속을 저버리고 위안부 화해치유 재단을 해산했다고 보고, 기분이 굉장히 상해있다는 말을 일본 의원 대부분이 한목소리로 했다. 후쿠야마 간사장도 유감을 표명하더라”고 전했다.

윤상현 의원은 “일본도 초당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원내각제라서 그런 건지, 야당의 한계가 있어선지 몰라도 자민당이나 야당이나 말하는 것이 똑같더라”고 이마를 짚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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