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아래서]<26>그의 휘파람에 새들이 말을 걸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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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작은 새 몇 마리가 날아간다. 포롱포롱 날면서 뭐라뭐라 지저귄다. 사실은 새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먹이를 많이 먹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새의 기상 시간이 정확히 몇 시인지, 실컷 벌레를 잡아먹은 뒤의 스케줄이나 취미생활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과밭에 가서 지렁이 사냥을 하는지, 삶의 목표는 있는지, 노래하는 의미를 알고 지저귀는지, 음치 새도 있는지, 대화의 주제는 무엇인지, 학교 가는 길에 옆길로 빠져 복숭아나무 아래 숨어서 연필 따먹기 같은 것을 하는지…. 새들에게도 인생이 있겠지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가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점심을 먹고 마당에 나와 한참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레돔이 어딘가를 향해 이렇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쉿, 하고 귀 기울여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삐이이 삐이이, 나무에서 이런 소리가 날아왔다. 새들이 내는 소리였다. 이번엔 오른쪽 끝 나무를 향해 휘파람을 부니 거기서도 찌찌비 찌찌비, 이런 종류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새랑 대화를 한 거야? 뭐라고 물었더니 뭐라고 대답하는 거야?” 나는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밖에서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사이 혼자 이곳에 앉아 새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니 그의 고독감이 안쓰럽기도 했다. “쟤들이 무슨 소리 하는지는 나도 몰라. 그냥 휘파람을 부니까 저렇게 화답을 하네. 쉿, 저기 새집 봐. 새가 나온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새들이야. 이름이 뭘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레돔이 가장 먼저 한 것이 새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작은 새가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뚫린 집부터 중간 크기 구멍, 아주 큰 구멍이 있는 새집 등 10여 개의 새집을 달았다. 그러나 새들은 새집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레돔은 과일과 해바라기 씨들을 놓아주며 ‘세입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한국에는 새집 만들어 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새들이 새집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새집 만드느라 들인 비용과 시간이 아까우며 그의 새 사랑은 무용지물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곰곰이 나를 설득할 말을 찾는다.

“새집을 만들어 달면 새가 날아와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 나뭇가지에 붙은 해충을 잡아먹지. 바닥에 똥을 싸면 나무에게 그대로 거름이 되고 똥 속에 든 씨앗이 새로운 풀을 싹트게 하지. 새집 하나에 적어도 네 개의 득이 돌아오잖아.”

그러나 새들은 씨만 먹고 날아가 버렸다. 간혹 빈 새집에 깃털이 있었지만 살림을 차리지는 않았다. 지난해 봄에는 박새가 그 많은 새집을 두고 우체통에다 알을 까고 새끼를 부화시켰다. 그 박새 가족이 우리 집 터줏대감이 되어 호록거리며 날아다니자 다른 새들이 기웃거리며 빈 새집에 둥지를 하나둘 틀기 시작했다. 새집을 단 지 2년 만에 대여섯 종류의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왔다. 작은 새는 작은 구멍이 있는 둥지, 좀 더 큰 새는 좀 더 큰 구멍이 있는 둥지에 쏙 들어갔다 쏙 나왔다. 해바라기 씨를 한두 알 집어 먹더니 쫑긋쫑긋 둘러본 뒤 나뭇가지에 붙은 뭔가를 톡톡톡 쪼아 먹었다. 그리고 삐리리 삐리리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아 참 귀엽기도 하네. 너희는 언제 나랑 듀엣으로 노래할 거니?”

나는 멀리서 애타는 심정으로 날개 달린 작은 짐승을 탐한다. 고양이처럼 살며시 다가가서 휘파람을 불어본다. 신기하게도 새들은 나만 보면 달아나 버린다. 낙엽이 하늘로 거꾸로 떨어지듯이 포르르 무정하게 날아가 버린다. 그런데 레돔이 앉아있으면 여기저기서 새들이 날아온다. 휘파람을 불면 예쁘게 화답을 해준다. 무슨 마술을 부린 것일까. 나는 꼬리가 긴 노란색 줄이 새겨진 새가 한창 알을 품고 있는 새집 주위를 기웃거린다. 레돔은 내가 새를 놀라게 해서 알 품기를 포기하고 달아나 버릴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나는 심통 난 아이처럼 이렇게 말한다.

“새끼가 나오면 가장 먼저 만져볼 테야.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새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아래서#신이현#작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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