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화단 주목받은 ‘이응노 열기’ 올해도 이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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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파리 퐁피두센터 기획전 이어… 이응노미술관 하이라이트展 개최
목가구 작품 등 190여점 선보여

이응노 전시의 제2전시실. 오른쪽 벽 앞 두 개의 유리관 가운데 오른쪽은 작품 재료가 없어 식사를 남겨 만들었다는 ‘밥풀조각’. 사진의 가운데 벽에 내걸린 많은 액자들은 66점의 ‘동방견문록 연작’이다. 이응노미술관 제공
이응노 전시의 제2전시실. 오른쪽 벽 앞 두 개의 유리관 가운데 오른쪽은 작품 재료가 없어 식사를 남겨 만들었다는 ‘밥풀조각’. 사진의 가운데 벽에 내걸린 많은 액자들은 66점의 ‘동방견문록 연작’이다. 이응노미술관 제공
지난해는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1904∼1989)의 해였다. 한국 전통미술을 바탕으로 서구 추상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그의 업적은 어느 때보다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체르누스키 파리시립동양미술관에 이어 세계 최고 권위의 파리 퐁피두센터(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가 ‘이응노 기획전’을 열었다.

이응노미술관(대전 서구)이 12일 ‘이응노―추상의 서사’전(展)을 열어 그 열기를 이어간다. 3월 25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선생의 걸작품만 엄선했다.

○ 고암의 예술인생 조감 기회

미술관 1층 제1∼4전시실에서 그의 작품 190여 점을 선보인다. 지난해 파리 화랑에서 매입한 작품 5점도 처음 공개됐다.

제1전시실에 들어서자 흔치 않은 서양화 작품 가운데 하나인 ‘구성(composition)’이 눈에 들어왔다. 수묵화가 출신인 선생은 서양화에도 동양적 감수성을 듬뿍 담았다. 대표작 ‘군상’의 탄생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옆에는 프랑스의 유명한 파게티 화랑에 초대됐던 또 다른 ‘구성’이 있다. 풀 먹인 잡지 조각을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혼돈을 표현했다. 이 작품을 제작할 때 부인 박인경 여사가 “대신 좀 붙여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암은 “아무나 붙여서는 안 된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은 “톱질 하나까지 자신의 손을 거쳐야만 했던 선생의 철저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제2전시실에는 기념비적 작품인 ‘밥풀조각’이 있다. 문자추상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동백림 사건으로 안양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제작했다. 작품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식사 때 남긴 밥풀을 종이에 매긴 풀죽으로 만들었다.

이 관장은 “선생은 재료보다 표현에 집중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와 시대를 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66점의 ‘동방견문록 연작’도 눈길을 끈다. 동방견문록 해설서 제작에 나선 스페인 왕실이 삽화를 의뢰해 탄생한 작품이다. 김상호 학예사는 “마르코 폴로의 실크로드 여행 과정을 상상으로 그려냈다. 상상력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연중 내내 이어질 열기


제3전시실에서는 목가구 작품이 발길을 끈다. 자신이 쓰던 가구에 문자추상을 빼곡하게 조각했다. 김현지 학예사는 “선생은 냄비나 도마 등도 예술의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 감자탕을 먹고 난 뒤 돼지 뼈에 조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제4전시실에는 12폭 ‘군상’ 병풍을 비롯해 여러 형태의 군상 작품이 배치됐다. 프랑스의 유명 크리스털 회사 바카라가 군상 문양을 넣어 만든 ‘크리스털 문진’과 파리 조폐국이 군상 형상을 넣어 만든 메달은 그에 대한 유럽 사회의 평가를 보여준다.

이응노 열기는 한 해 내내 이어진다. 7∼9월 프랑스 체르누스키 파리시립동양미술관 마엘 벨레크 학예실장을 객원큐레이터로 초청해 ‘이응노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10∼12월에는 ‘파리의 한국화가들’ 기획전이 열린다. 김환기 남관 한묵 권옥연 이성자 김흥수 등 1950, 60년대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고암의 예술세계와 접목해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보는 기획이다. 지역 작가를 해외 무대에 소개하는 ‘파리 이응노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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