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아직 비핵화 대화에 관심 안보여”… 섣부른 낙관 경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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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한반도]北-美채널 가동에도 갈길 먼 대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0일 “북-미 간 두세 개의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전격 공개하면서 북핵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지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이 최근까지 핵폭탄급 말 전쟁을 벌였고, 김정은은 ‘사상 최고의 대응’을 예고한 상황에서 북-미 대화라는 전격적인 상황 변화의 불씨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구체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또 다른 북-미 신경전만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 뉴욕, 베이징, 스웨덴대사관이 북-미 채널의 핵심

틸러슨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북-미 채널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각 채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데니스 와일더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뉴욕 채널 △주중(베이징) 북한대사관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 등 3곳을 북-미 채널로 지목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 중 뉴욕 채널은 북-미 당국 간 직접 접촉(이른바 ‘트랙 1’ 대화) 창구다.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를 중심으로 만난다고 해서 뉴욕 채널이다. 미국에선 한국계인 조셉 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한에선 박성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뉴욕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국무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에도 미 당국이 뉴욕 채널을 통해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는 식으로 북한 의중을 파악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나머지 두 채널은 사안에 따라 일시 작동되는 이른바 ‘팝업(pop-up·떴다 사라지는)’ 채널이다. 주중 북한대사관(베이징 채널)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채널이다. 이곳을 통해 북한의 반응 수위를 보면 실제로 대북 제재가 어떻게 집행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은 북한에 공관이 없는 미국의 이익대표부로 오래 활용되어 왔다. 미국은 북한에서 석방된 후 사망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건강 상태도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파악했다. 스위스 노르웨이 등 유럽에서 주로 열리는 ‘트랙 1.5’(민간인도 참여하는 탐색적 회담)도 주요 채널로 꼽힌다. 최근 러시아를 방문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로버트 갈루치 전 미 북핵특사 등이 이런 대화의 단골손님이다.

○ 한국 정부 겉으론 “환영”, 속으론 “끙끙”

북-미 간 대화가 진전될 경우 다음 달 3∼14일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때 국면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달 30일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란 핵협정과 같은 조잡한 핵협정을 북한과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과의 대화에 성과가 있다면 5년이 걸린 이란 방식 대신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속전속결로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대화 기류에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색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기색도 없지 않다. 중국의 중재하에 북-미 간 전격적 대화가 진행되면 당장 한국 정부의 외교적 공간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틸러슨 장관은 중국에 대북 경제 압박을 요구했을 것이고 중국은 대북 대화에 열린 자세를 보이라고 미국에 요구했을 것이다. 틸러슨 장관의 언급은 이에 대한 화답”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대화 기류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시기상조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은 1일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에 여전히 날카로운 비난 폭탄을 쏟아부었다. 이 신문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국의 군사적 대결 소동은 림종(임종)을 앞둔 자들의 지랄발광에 지나지 않는다. 대결광신자들에게 차려질 것은 죽음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탈리아가 8월 하순 부임한 문정남 북한 대사를 추방하겠다고 1일 밝혔다. 이로써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에 동참해 북한 대사를 추방한 나라는 이탈리아 멕시코 페루 쿠웨이트 스페인 등 5개국으로 늘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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