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의 뉴스룸]‘야당 의원이 가장 쉬웠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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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정치부 기자
홍수영 정치부 기자
지난달 28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장.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고액 자문료’ 논란에 휩싸인 송 후보자를 엄호하는 게 머쓱한지 자꾸 사족을 달았다. “(자문료로) 월 3000만 원이면 일반인들이 볼 때는 천문학(적)…”이라고 말하다가 멈칫하기도 했다. 그는 용어를 바로잡고는 “굉장히 센 보수이긴 하지만 그(방위산업 자문 시장) 기준에 비춰 보면 특A급이거나 상급은 아니다”라고 두둔했다. 이 의원은 국회에 입성하기 전 날카로운 정치평론으로 인기를 모았던 인물이다.

전투력에서 내로라하는 민주당 여성 의원들도 청문회 기간 한동안 입을 닫았다. 비뚤어진 성(性) 인식 논란이 불거진 탁현민 대통령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을 거들 수도, 맞설 수도 없었던 탓이다. 4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정의당을 포함한 야 4당이 ‘탁현민 협공’을 펼쳤지만 이들은 무대응 전략을 펴야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당시 본회의장에서 ‘오방색 끈’을 던지며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몰아붙이던 당찬 초선 이재정 의원도, 30여 년간 여성운동의 한길을 걸어온 남인순 여성가족위원장도 말을 아꼈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요즘 ‘울원식’으로 불린다. ‘울컥 우원식’의 줄임말이다. 우 원내대표가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자유한국당 너무하잖습니까!”라며 눈물을 훔친 데서 비롯됐다. 그는 한 달 가까이 야당 원내대표실을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가고 술도 같이하면서 어르고 달랬는데 한국당이 협상 자체를 거부하자 감정이 격해졌다고 한다. 청와대와 야당에 끼인 채 시한이 있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게 여당 원내대표의 숙명이다. 협상의 재량권도 크지 않아 스토커 소리까지 들어가며 읍소할 수밖에 없다.

“여당 의원 하기가 더 힘든 법이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같은 상임위원회의 여당 의원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내각 인선에 문제를 느껴도 속 시원히 내지를 수 없고, 대통령의 정국 운영에 해가 되지 않을까 자기 검열부터 하는 게 여당 의원의 처지라는 얘기였다. 그는 “공공기관까지 인사가 모두 마무리되면 한 자리 얻으려 민원을 넣던 인사들이 돌아서면서 ‘손가락을 분지르겠다’ 등 험악한 얘기를 서슴지 않는다”며 앞으로 겪게 될 경험도 전해줬다. 그 여당 의원은 한참 고개를 주억거리더란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거꾸로 “국회의원은 야당 의원이 하기 좋더라”고 털어놨다. 야당이 되고 나니 장관이 먼저 의원실로 찾아와 기다리고, 공공기관에서도 연락을 자주 한다고 했다. 정부의 정책을 공격하지 않을까 사전에 ‘관리’하는 차원이지만 싫지 않더란다. 여당 시절에는 “같은 편끼리 왜 안 도와주느냐”며 되레 핀잔만 들었다.

인사 정국을 거치며 ‘여당 의원 신고식’을 치른 의원들에게 정치인으로서는 이제부터가 본격 험로일지 모른다. 전투력은 더 이상 쓸 곳이 없고, 정권 편들기만 해선 ‘좋은 정치인’ 소리를 못 듣기 때문이다. 고민하는 여당 의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덕목이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야당 시절을 잊지 말라는 얘기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에 야당은 못 이기는 척 국회로 복귀했다. 국민과 애국심을 여당 홀로 독점하려 들지 않는다면 협치(協治)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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