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찜찜”… 두 남녀 은신 모텔주변 밤새 탐문한 ‘형사의 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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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골프연습장 주부 납치-살해 2명, 범행 9일만에 서울 모텔서 검거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해 사건 피의자 심천우가 3일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경남 창원서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왼쪽 사진). 뒤따라
 압송되는 공범 강정임의 머리가 바람에 세차게 흩날리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해 사건 피의자 심천우가 3일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경남 창원서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왼쪽 사진). 뒤따라 압송되는 공범 강정임의 머리가 바람에 세차게 흩날리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경남 창원 골프연습장 40대 주부 납치 살해 사건의 피의자 심천우(31)와 강정임(36·여)이 3일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9일 만이다. 영호남을 오가며 경찰 추적을 유유히 따돌렸던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모텔에서 검거됐다. 이들이 모텔에 투숙한 건 지난달 28일. 바로 경찰이 공개 수배한 날이다.

● 공개 수배 직후 모텔로 숨었다

3일 오전 10시 10분경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팀 형사 6명이 서울 중랑구의 한 모텔에 도착했다. 40년가량 된 낡은 숙박업소다. 심과 강은 2층 방에 있었다. 경찰이 문을 두드리며 열라고 말했다. 잠깐의 침묵 후 안에서는 “예, 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약 10분 후 경찰이 “주인을 부르겠다”고 말하자 결국 문이 열렸다. 경찰이 수배전단을 보여주며 “당신 맞지”라고 다그치듯 물었다. 두 사람은 순순히 시인했다. 그리고 경찰이 들고 있던 수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거 당시 심은 수배전단 속 검은 뿔테 안경 대신에 얇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들이 모텔에 투숙한 건 지난달 28일 오후 4시 반경. 경찰의 공개 수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지 약 2시간 후다. 자신들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된 걸 알고 곧바로 모텔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일주일 치 방값(20만 원)을 내고 투숙했다. 그러나 5일 동안 거의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음식도 매번 시켜 먹었다. 장기 투숙객 A 씨는 두 사람의 행동이 이상했다. 2일 오후 9시경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두 사람이 나란히 외출하는 걸 봤다. A 씨는 “수상한 사람이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살인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출동한 경찰은 이들이 묵었던 방을 둘러봤다. 특별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A 씨도 이들이 수배전단 속 인물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일단 경찰은 모텔 주변에 남아 폐쇄회로(CC)TV를 살펴보며 탐문을 벌였다. 또 A 씨와 계속 연락하며 두 사람의 동태를 확인했다. 3일 0시 반경 심과 강은 다시 모텔로 돌아왔다. 이어 오전 9시 50분경 A 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두 사람의 도피 행각은 막을 내렸다. 경찰은 범행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이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 엉뚱한 곳만 수색한 경찰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투숙하면서 “한 달 동안 머물겠다”고 말했다. 모텔 주인이 “곤란하다”고 하자 일주일로 바꿨다. 하루 3만 원씩 방값은 21만 원. 주인이 1만 원을 깎아줬다. 심은 주인에게 “우리 방은 신경 쓰지 마라. 청소 안 해도 된다. 수건도 필요하면 우리가 달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족발 피자 같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또 옷가지가 담긴 쇼핑백을 갖고 있었다. 검거 후 방 안 휴지통에선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어린이 장난감 ‘피짓스피너’가 발견됐다.
창원 골프연습장 살인사건 피의자들이 은신했던 모텔 방 휴지통에 버려진 손장난감 ‘피짓스피너’.
창원 골프연습장 살인사건 피의자들이 은신했던 모텔 방 휴지통에 버려진 손장난감 ‘피짓스피너’.


창원서부경찰서는 이날 오후 9시 15분경 이들을 창원으로 압송해 범행 동기와 도주 경로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심은 “생활비 마련과 사업자금 확보를 위해 돈 많은 사람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달 24일 주부 손모 씨(47)를 납치,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고 신용카드로 410만 원을 인출한 혐의로 4일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붙잡힌 심의 육촌동생(29)은 강도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당초 경찰은 이들이 멀리 가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매일 경찰관 1000여 명을 투입해 함안, 진주, 창원 일대를 수색했다. 그러나 심과 강은 27일 오전 1시 반 함안에서 경찰 추적을 따돌린 직후 곧바로 창원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지나는 차량을 얻어 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이 서울로 가기까지의 정확한 경로와 방법을 수사 중이다.



● ‘수상하다’ 신고 받은 경찰 ‘끝까지 확인하자’

심과 강을 검거한 건 공개수배 5일 만이다. 이번에 체포하지 못했다면 검거까지 자칫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2일 오후 10시 서울 중랑경찰서 112상황실에 “남녀 한 쌍이 갑자기 모텔에서 사라졌는데 수상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남녀’라는 말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 및 이날 당직인 강력6팀 형사들은 심과 강의 얼굴이 나온 수배전단을 챙겼다.

모텔을 찾은 경찰은 A 씨에게 전단을 보여줬다. 심과 강을 가리키며 “혹시 이 사람들이 맞나”라고 물었다. A 씨는 “남자는 (안 봐서) 모르겠고, 여자는 (봤는데) 아닌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일단 경찰은 현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백희광 강력6팀장은 팀원들에게 “혹시 나중에 범인이 이곳에 들렀다는 게 밝혀지면 분하지 않겠나”라며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확인해보자”고 말했다. 형사들은 모텔에서 투숙객의 지문 등을 채취하고 밤새 모텔 주변 탐문 등을 벌였다. 현장 주변의 CCTV도 확인했다. 다음 날 오전 9시 형사들은 모텔을 다시 찾아가 “혹시 투숙객이 돌아오면 꼭 알려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첫 신고 후 고민에 빠졌던 A 씨도 용기를 냈다. 사라졌던 투숙객이 자정 무렵 숙소로 돌아온 찰나에 형사들이 끈질기게 붙자 평소 알고 지내던 역술인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역술인이 “경찰에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하자 A 씨도 용기를 내 “새벽에 남녀가 다시 방에 들어왔다”고 형사들에게 알려줬다. 이어 확인한 CCTV 속 남녀의 모습은 형사들 눈에 수배전단 속 심, 강의 모습과 동일했다. 형사들은 큰 불상사 없이 두 사람을 검거했다. A 씨는 “한숨도 못 자고 어떻게 할까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다”며 “(두문불출하다가 사라지는) 행동이 이상해 신고했을 뿐인데, (살인범이라는 말에) 가슴이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

현장을 지휘한 백 팀장은 1986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발을 들였다. 근무 첫해 조직폭력배 간 흉기난동 사건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중랑서 관계자들은 “백 팀장이 ‘조폭 사건 전문가’로 통하는데 평소 사건을 대하는 촉이 남다른 편이다”라고 평가했다.

창원=강정훈 manman@donga.com / 김배중·구특교 기자
#살인사건#용의자 검거#납치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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