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Topic]“현대차 버스 연료통 위치가 잘못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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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0월 20일 1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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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 사고의 숨은 진실

10월 14일 경부고속도로에서 화재 사고가 난 관광버스.
10월 14일 경부고속도로에서 화재 사고가 난 관광버스.
자동차 연구 조사 전문기관 자동차기술연구소 A 수석연구원은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10월 13일 경부고속도로 언양 갈림목 관광버스 화재사고 이후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사고로 그동안 자신이 소방대원 등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강조한 내용이 결과적으로 틀린 얘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승용차의 경우 보통 엔진이 있는 앞쪽에서 불이 나더라도 뒷좌석 바로 아래에 있는 연료통까지는 불길이 미치지 못한다. 폭발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A 수석연구원은 “지난 10여 년간 교육을 통해 자동차 폭발 사고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해 왔는데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돼 버렸다”고 민망해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됐을까. 이번 사고에서 피해를 키운 근본 원인은 화재였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화재만 없었다면 승객 대부분이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한두 명 부상당하는 것으로 그쳤을 단순 사고였다”라고 단언했다. 설사 출입문이 막혔다고 해도 승객들은 차분히 탈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2차로를 달리던 버스는 내리막길에서 1차로로 차로를 변경해 차량 여러 대를 추월한 뒤 다시 2차로로 급격히 끼어들기를 했다. 거의 동시에 버스가 도로 옆 콘크리트 분리벽을 들이받으면서 100m 이상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전문가들은 버스가 분리벽과 충돌하는 순간 연료통이 깨졌고, 마찰로 생긴 불꽃 때문에 폭발로 이어졌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당연히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그럼 연료통이 깨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연료통 파손으로 인한 연료 누출이 없었다면 점화원인 불꽃이 일었다고 해도 폭발로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료통은 정부가 엄격히 규정한 안전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 차량에 장착할 수 있다.

한국화재조사학회장인 이의평 전주대 교수는 “그런 연료통이 파손된 것은 사고 차량인 현대 유니버스의 연료통 위치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연료통이 앞바퀴 앞쪽에 위치해 있어 충돌에 의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손될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김필수 교수도 “연료통은 폭탄이나 마찬가지여서 앞 차축과 뒤 차축 안쪽에 배치해야 가장 안전한데 사고 버스 연료통 위치는 이 상식에 위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로선 연료통이 파손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마모된 타이어가 분리벽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불이 붙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연료 누출이 있었는지, 폭발이 있었는지는 경찰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울주경찰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감정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사고 직후부터 취재해온 동아일보 정재락 기자는 “경찰도 처음엔 연료통 파손이 화재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연료통 파손으로 인한 연료 누출이 없었다면 그런 폭발이 일어나기 힘들다고 본다.

현대차 관계자는 또 “버스는 무거운 엔진이 뒤쪽에 있기 때문에 연료통을 앞쪽에 배치하는 게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했다. 그래야 버스의 무게중심이 뒤쪽으로 쏠리지 않게 되고 직진 안정성과 조향성, 승차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일부는 맞는 얘기지만 중요한 대목에서는 틀린 주장이다.

현행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연료통 위치와 관련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다만 규칙 제17조 1항 1과 4에서 연료장치는 자동차의 움직임에 의하여 연료가 새지 않아야 하고, 차실 안에 설치해서는 안 되며 연료탱크는 차실과 벽 또는 보호판 등으로 격리되는 구조여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대형 버스의 경우엔 정면충돌시험도 하지 않는다. 다만 전복 시험만 한다. 전복됐을 때 승객의 거주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는지 등을 확인하려는 차원이다. 그러나 4.5t 이하 신차의 경우 정면충돌시험을 통해 △탑승자의 상해 정도 △충돌 때 문이 열리는지 △충돌 후 문이 제대로 열리는지 △충돌 후 연료가 새는지 등 4개 항목을 평가한다.

국내 자동차 회사가 생산한 대형 버스의 연료통 위치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물론 현대차 관계자가 주장한대로 연료통을 앞쪽으로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자일대우버스가 생산한 버스 사이에는 육안으로 확인해도 미세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일대우버스의 대형 버스도 연료통이 앞쪽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현대차 대형 버스와 달리 연료통이 앞바퀴 뒤쪽에 있다는 점이다. 앞 차축 뒤쪽에 있는 것이다. 자일대우버스 관계자는 이런 설계 상 차이에 대해 동종 업계의 일이어서인지 “공식 입장을 내놓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현대차 버스처럼 앞바퀴 앞쪽에 연료통을 배치하면 무게 중심을 유지하는 데도 좋고 수하물 적재 공간을 넓히기에도 좋다는 걸 대우 버스라고 왜 모르겠느냐”면서 “그럼에도 앞바퀴 뒤쪽으로 배치한 건 연료통 안전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의평 교수도 “현대 버스의 연료통 위치가 안전 측면에서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수하물을 싣는 공간을 더 넓게 확보하려고 연료통을 앞쪽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반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앞 차축과 뒤 차축 사이에 배치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및 현대차 측과 머리를 맞대고 디자인상으로 그렇게 배치하는 게 가능한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번 사고에 대해 예상대로 땜질 대책을 내놓았다. 비상 망치와 소화기 등의 위치, 사용 방법을 모니터나 방송을 통해 안내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내년 1분기에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또 비상시 쉽게 탈출할 수 있도록 비상 해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자동차안전기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국 고속도로 확장 공사 구간을 집중 점검하겠다고도 했다. 경찰청과 협의해 과속단속 카메라를 확대 설치할 계획도 내놓았다. 공사 중인 도로의 위험한 환경과 운전자의 무리한 주행이 빚은 참사라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또 사고 버스 운전사처럼 대형 교통사고 유발자는 운수 종사자가 될 수 없도록 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물론 필요하긴 하지만 근본 처방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필수 교수는 “피해를 키운 화재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보지도 않은 대책이어서 핵심을 빠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사를 초래한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 및 처방이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도대체 ‘뭣이 중한디’를 묻고 싶은 심정이다.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현대차#화재사고#매거진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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