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권오병]사색이 가능한 곳, 제주 당산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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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면서 아름다운 곳을 여럿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종종 호젓하게 트레킹을 즐기는 올레길이 있다. 제주 서쪽의 차귀도를 볼 수 있는 봉우리 두 곳이다. 한 곳은 낙조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수월봉이고 다른 한 곳은 바로 옆 당산봉이다. 당산봉은 올레길 12코스 끝자락에 있다. 12코스의 총길이는 20km 정도이지만 절부암에서 시작해 당산봉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4km로 비교적 어렵지 않다. 높은 절벽에서 바다와 차귀도를 바라보는 풍경은 절경이다.

한경면 김대건신부기념관 앞 용수리 포구에서 당산봉 쪽으로 샛길이 나 있다. 올레길 12코스에 해당한다. 이 길로 5분여 가다 보면 검은 현무암이 평평히 쪼개진 해안이 나온다. 표지는 따로 없지만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중국을 출발해 20여 일간 표류하다가 도착한 표착지이다. 여기를 지나면 작은 만이 나온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언덕에 올라 갑자기 마주하는 만은 옥빛 물빛과 생이기정(새가 있는 절벽이란 제주 방언)이 더해져 아주 아름답다. 이 만을 향해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는데, 차귀도로 떨어지는 낙조를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숨은 명소다.

만을 지나면 생이기정길이 시작된다. 당산봉의 바다 쪽은 절벽으로 갈매기가 많이 살고 있다. 절벽은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흰색으로 덮여 있는데 갈매기의 배설물로 생긴 것이다. 생이기정길은 봄에 한 주먹 따서 먹을 만큼 산딸기가 많이 열리고 방풍나물 또한 많다. 이 길을 10분여 가다 보면 차귀도가 발치에서 보이는 높이에 이르게 된다. 이곳 또한 경치가 아름답다. 차귀도를 향해 다소곳이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그 풍경을 감상한다.

차귀도는 본 섬인 죽도와 사람이 누워 있는 모습의 와도, 매처럼 생긴 매바위로 이뤄져 있다. 도로에서 보는 차귀도는 둥그런 섬 모양이지만 당산봉을 오르는 길에 보는 차귀도는 초승달 모양이다. 와도와 매바위도 다른 각도에서 제대로 볼 수 있다.

당산봉 정상까지 경치를 충분히 감상하면서도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고 정상 바로 밑으로 거북바위와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북쪽으로는 신창 풍차해안도로가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수월봉, 산방산까지의 푸른 해안이 한눈에 펼쳐진다. 당산봉은 한라산이 생기기 이전에 바닷속에서 생성된 화산체가 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한라산도 멀리 바라보인다. 한라산보다 당산봉이 먼저 생성되었다고 하니 예전 이곳에서 한라산이 불을 뿜는 모습을 보았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제주에 와서도 다시 직장인의 굴레에 있지만 짬짬이 시간을 내어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당산봉은 내 마음의 풍경과 같은 곳이다. 제주의 당산봉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 되곤 한다.
 

※필자(43)는 서울에서 헤드헌터로 일하다 4년 전 제주시 한림읍으로 이주해 현재 대학에서 진로상담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권오병
#제주 차귀도#당산봉#신창 풍차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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