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호남 민심 우롱하는 문재인의 “정계 은퇴” 食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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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에서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약속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이 끝나자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총선 다음 날인 그제 그는 호남에서의 참패와 관련해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빙빙 돌려서 하는 것을 보면 문 전 대표는 당초 약속과 달리 은퇴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정계 은퇴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입장이냐”는 기자들의 단도직입적 질문에도 문 전 대표는 “그때 드린 말씀엔 변함이 없다”며 “선거에 대한 평가 분석 이런 부분들은 다 당에 맡기겠다”는 말도 했다. 당에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니 모두 소매를 붙잡을 것으로 믿는 모양이다. 그가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모르겠으나 더민주당의 오너이자 유력한 대권후보이니만큼 식언(食言)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더민주당의 친문(親文·친문재인)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문 전 대표 구하기에 나섰다. 박광온 당선자는 “문 전 대표가 (국민의당) 녹색바람의 (수도권) 상륙을 차단했다”고 했다. 김영춘 당선자는 “결과가 좋은 상황에서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아예 “문재인은 언약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정치적 결벽증’은 떨쳐 버리길 바란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더민주당은 광주 8곳에서 전패(全敗)했고, 호남 전체 28곳 중 3곳만 겨우 건졌다. 더민주당의 123석은 더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정부 여당이 잘못해서 거둔 승리다. 문 전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패하고도 책임은커녕 자숙하는 모습도 보인 적이 없다. 2015년 대표가 된 뒤 두 번의 재·보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전임 안철수, 김한길 대표처럼 물러나지도 않았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건 정치인이 갖춰야 할 최고 덕목이다. 문 전 대표한테서는 그런 책임윤리가 보이지 않는다. ‘광주 약속’에 대해 책임지는 척이라도 했더라면 동정론이라도 일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문재인#정치은퇴#대선 불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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