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지질한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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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12월 23일 14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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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은 생계를 위해, 스펙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뛰어든다. 뉴시스
대학생들은 생계를 위해, 스펙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뛰어든다. 뉴시스
동아일보
지독히 운수 좋은 날서울 압구정동 고급 일본식당에서 서빙과 발레파킹을 한 적이 있다. 쏠쏠한 급여에 숙식까지 제공되는 최고 일자리였다. 손님들은 과도하게 비싼 음식값이나 술값에 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주문한 음식을 대부분 남겼다.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이자 월급날인 그날은 지독히 운수 좋은 날이었다. 카운터를 보는 누나 말로는 사장이 월급봉투에 보너스도 넣었다고 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S걸그룹의 생일파티가 식당에서 열렸고 그 방을 서빙하면서 멤버들로부터 사인도 받을 수 있었다. 한 손님은 담배 심부름을 시킨 뒤 수고비로 10만 원을 줬다. 모든 사람이 그동안 고생했다며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밤이 깊어지고 손님이 줄자 밖에서 발레파킹을 도왔다. 주차장으로 최고급 스포츠카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차주인은 단골손님이자 내 또래 부잣집 도련님. 키를 받아 들고 주차하던 중 차에 작은 흠집을 내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렀다. 불같이 화를 내는 ‘금수저’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게 잘 해주던 식당 사장은 보상과 합의 과정에서 나를 외면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내 손엔 월급봉투가 없었다. 담배 심부름값으로 받은 10만 원이 전부였다. 그 돈으로 차표와 어머니 내복 한 벌을 샀다.(오병찬·언론학 대학원)

영혼 없는 사과 하기알바생의 85%는 ‘영혼 없는 사과’를 해봤다고 한다. 나도 그중 1명이다. 직장인이 주 고객인 카레집에서 알바를 했는데, 고객 일부는 상사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알바생인 내게 풀고 가는 듯했다. 판매용 반찬이 리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운 카레 메뉴가 지나치게 맵다는 이유로 화내고 사과를 요구했다. 억울함으로 심장이 콩콩거렸지만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가 아마 내 생애에서 ‘가장 지질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내게 모질게 굴던 그들도 직장에선 ‘을’일 터이다. 누구보다 을의 심정을 잘 헤아릴 것 같은 사람이 정작 을을 못살게 군다. 사회가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되는 밀림과 같아선 안 된다.(박나현·철학과)

노예정신 강조하는 패밀리레스토랑‘무개념 고객’보다 ‘노예정신을 강요하는 매니저’가 더 참을 수 없는 존재다. 내 친구는 유명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했다. 일주일 동안 매니저에게서 서비스 교육을 받으며 무릎 꿇고 손님을 응대하는 방법부터 영혼 있게 사과하는 방법까지 수없이 연습했다. 그러나 매니저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직 노예로 일하는 것만 강조하고 또 강조할 뿐이었다. 매니저는 알바생의 근무시간 조정권을 갖고 있고 평가와 계약기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알바생들은 고객 뒤에서 매니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중고를 감내해야 한다. 친구는 자신감을 잃었고 일을 그만뒀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인 알바생 스스로 최소한의 품위와 존엄을 지킬 수밖에 없다.(이민재·불어불문학과)

“순 날강도”내 친구는 한 유명제과점에서 알바를 했는데, 식사시간이 따로 없어 근무 중 눈치껏 알아서 식사해야 했다. 식비로 4000원이 지급되면 식사 후 꼭 현금영수증을 제출해야 했다. 첫날이라 어리바리했던 내 친구는 깜박 잊고 영수증을 챙기지 않았다. ‘슈퍼 을’의 ‘딱 떨어지는 실수’는 당연히 용서되지 않았다. 점장은 “순 날강도” “어디서 그딴 걸 배웠니?”라며 윽박질렀다. 샌드백처럼 쥐어터지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바닥만 봤다. 두 달 남짓 점장의 폭언은 계속됐고 일을 그만두는 날엔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한 편의 호러영화 같았다. 그러나 잘릴까 봐 대꾸를 못 했다”고 했다.(김태희·경영학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정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당시,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알바를 시작했다. 대학에 바로 진학하지 않고 알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돌이켜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처음 일한 곳은 캐나다의 대형 유통업체 S사였다. 계산원으로 일했는데 2년 뒤 관리자(supervisor)로 승진했다. 이때부터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캐나다엔 소수 명문대와 다수 비명문대가 있다. 캐나다에선 동네 주민만 아는 비명문대를 나와도 고졸자보다 승진이나 임금 인상이 잘 됐다. S사에서 나보다 꼼꼼하고 유연하게 일을 처리하는 직원은 없다고 믿었지만, 대졸 직원은 나보다 훨씬 우대받았다. 결국 보안업체 G사로 이직했다. 그러나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고졸자에겐 관리자 이상의 자리가 요원했다.
그즈음 하나뿐인 여동생은 캐나다 3대 명문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를 졸업했다. 여동생의 졸업식 날 이 학교 특유의 웅장함에 압도된 나는 지난날의 과오를 깊이 성찰했다. 그리고 다시 책과 펜을 들고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캐나다에서의 알바 3년을 통해 깨달은 삶의 진리는 이렇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알바생은 찬밥이라는 것.’(남훈희·영어영문학과)

등골 브레이커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미국에서 나왔다. 흔히 나 같은 미국 유학생을 ‘등골 브레이커’라고 부른다. 미국 대학 학비는 한국의 10배가 넘는 수준이고, 물가 또한 비싸 부모님의 허리가 날로 휘었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벌고자 했으나 미국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알바는 많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펫시터, 캐시어, 그리고 실험 참여 알바를 구할 수 있었다.
실험 참여 알바는 사회과학이나 심리학 등 인간을 연구하는 학술 분야의 실험에 실험대상으로 참여하는 것인데, 짧은 시간 내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다양한 실험에 참여했다. 가장 기괴했던 경험은 심박수와 뇌파 측정 기계를 양팔과 머리에 붙이고 혐오스러운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일이었다. 실험실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2년 뒤인 지금 나는 대학원에서 비슷한 실험을 설계하는데, 그때의 알바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전유정·언론학 대학원)

“알바 체험하러 왔어?”“웃는 얼굴이 예쁘네요.” 매니저가 알바 면접을 마치며 내게 한 말이다. 그렇게 나는 한 레스토랑의 ‘손님맞이’ 직무를 맡았다.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열심히 일했고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배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매니저가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서울 강남 집주소를 말해주자 그는 순간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너 여기 왜 왔어? 체험하러 왔어?”라고 차갑게 말했다.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확증 편향적 태도에 마치 벽에다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나는 직원과 알바생 사이에서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신경성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것으로 내 레스토랑 알바는 막을 내렸다.(송유진·경영학부)

‘쩌는 스펙’ 찾아 삼만리대학생 스펙 대열에 하나 더 추가된 게 있다면 ‘직무와 연관 있는 알바 경험’일 것이다. ‘스토리가 있는 스펙’을 중시하는 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꿀알바’라 부르는 과외를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얼마 뒤 과외 알바는 취업시장에서 내세울 ‘쩌는 스펙’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직무 연관 알바를 찾고자 노력했는데, 그런 알바 자리는 고(高)스펙 지원자로 넘쳐났다. 알바와 스펙의 물고 물리는 순환이었다. 여러 번 실패의 쓴잔을 마신 뒤에야 서빙 알바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인생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박선현·영어영문학과)

야간 인력소개소의 젊은이들토익학원 등록비를 마련하고자 인력소개소를 종종 찾는다. 어느 날 밤 10시, 이곳에 온 젊은이는 나뿐이 아니었다. 대학생, 취업준비생으로 보이는 피곤한 얼굴의 20대 남자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채웠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소장이 나를 포함해 11명을 불러 세운 뒤 택배 상·하차에 배정됐다고 소리쳤다. 우리는 10인승 승합차에 어깨를 구겨 넣은 채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한 물류센터로 향했다. 엉덩이 한 번 움직이지 못하고 도착한 그곳엔 5t 트럭이 줄줄이 서 있었다. 택배를 시·군·구별로 분류하는 일을 맡았는데, 작업이 시작되자 컨베이어벨트에서 절인 배추 더미며 커다란 TV 박스가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한 지 세 시간, 입에선 단내가 났다. “25분간 쉬었다 합시다”라는 작업반장의 말은 꿀과 같았다. 의자에 누운 듯 걸터앉은 젊은 남자에게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낮엔 학원 다녀야 하고 밤엔 학원비 마련해야 하니 야간 인력소개소밖에 없더라”고 말했다. 나와 사정이 똑같았는데 별로 놀랍거나 신기하지 않았다.(나태용·정보통계학과)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미디어 글쓰기’ 수강생들이 쓴 글입니다.

▼해외 유학생들 “우리도 한국에서 알바를 해보니…”▼
무례함은 기본, 초과근무는 옵션

나 같은 외국인 유학생인 친구는 서울 한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는데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많은 고객이 계산할 때 돈을 휙 던지듯 하는 점이었다. 적잖은 고객이 컵라면이나 음료를 먹고 치우지 않은 채 나갔다. 매장 청소는 근로계약서에 없는 업무였지만 늘 그의 몫이었다. 매니저도 고객과 다를 바 없었다. 교대할 다른 알바생이 안 오거나 늦게 나타나서 매니저에게 전화하면 늘 받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면 “잤다”고 했다. 이 때문에 친구는 심야 초과근무를 자주 했지만 별도 수당을 받지 못했다. 유교적 전통을 가진 한국에선 고객과 점원 사이, 매니저와 점원 사이에 매우 큰 위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자존심을 다치거나 노동력을 착취당해선 안 된다.(다이아나 플로레스·페루·국제학부)

학업과 알바 병행은 어려워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은 대리구매(다이고어) 알바를 자주 한다. 중국 거주 소비자를 대신해 한국에서 상품을 사고 이를 중국으로 배송해주는 일이다. 중국 측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대리구매는 13조7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친구들도 한국에서 대리구매 알바를 했다. 학비를 벌려고 알바를 시작했던 친구들은 이 일을 전업으로 하다시피 해 자연히 학업에 소홀해졌다. 상당수 중국인 유학생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알바를 원한다. 유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알바를 찾기가 어렵다.(임방정·중국·미디어학부)

널 고용한 이유
중국인 유학생인 나는 서울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번은 중국인 여성 관광객의 요청으로 서울 강남 성형외과들을 돌며 통역을 해줬다. 여러 병원의 의술과 성형비용을 비교한 관광객이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추천받은 병원을 권했고, 해당 병원 직원들은 우리가 중국인인 걸 알고 갑자기 열정적으로 변했다. “보톡스 주사는 얼마냐”고 묻자 한 직원이 “80만 원”이라고 답했다. 나는 “아까 한국인 고객에겐 50만 원이라고 한 것 같은데, 왜 차이가 나느냐”고 말했다. 직원은 당황스러워하며 “50만 원으로 특별히 할인해주겠다”고 했다. 중국인 여성 관광객은 “이게 바로 내가 너를 고용한 이유야”라고 말했다. 그 관광객은 수술 결과에 만족했고 나는 이 알바에 보람을 느꼈다.(주원쓰·중국·미디어학부)

잃은 것과 얻은 것
중국은 노동력이 풍부해 대학생 알바 자리가 거의 없지만 한국은 대학생 알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 나의 첫 알바 장소는 백화점이었다. 매장을 관리하고 옷을 파는 게 주 업무였는데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계속 서 있어야 해 퇴근 무렵이면 발이 불에 타는 듯 아팠다. 물건이 훼손되거나 없어져 직원들과 나눠 배상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주 비싼 프랑스 명품 브랜드여서 작은 장식품 하나만 잃어버려도 알바비를 거의 못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알바를 통해 얻은 것도 많다. 돈을 모았고 고객과 교류하는 방법, 직원과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웠다. 소중한 우정도 쌓았다. 그때 일한 동료들과 지금도 자주 연락하면서 지낸다.(우안기·중국·미디어학부 대학원)

손님 없으니 일 그만둬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쇼핑하던 어느 날 한 식품가게 사장님이 알바를 제안했다. 중국인 유학생인 나는 이후 가게 손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았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자 사장님은 전화로 “중국인 손님이 줄어서 일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중국인 유학생은 국내에서 알바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학교를 졸업하면 한국 친구들처럼 동등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은 커져만 간다.(채청의·중국·미디어학부)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미디어 글쓰기’ 수강생들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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