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진통끝 마련한 합의안… 아직은 갈 길 먼 ‘미완성’
“노동개혁 아닌 개악”… “유연성 위한 실질 현안 빠져”
일부에선 벌써 딴죽걸기 나서
합의 기본정신 무시하고 자신 입장만 고집하는 세력
우리 사회 공적임을 명심해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주 어렵게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으나 벌써부터 여러 곳에서 딴죽 걸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개혁이든 합의든 그것이 이뤄지는 시점부터는 그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갈등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최근 전개되는 일련의 양상을 보면 다시 대립구도로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돌이켜보면 꼭 1년 전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해 노사정이 논의를 시작한 이래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노사정 합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노총 내부의 복잡한 입장 차를 극복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김동만 위원장의 결단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또 노사정 대화 과정에서 꼭 필요했던 타협과 조정의 정치력은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의 몫이었다. 여기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역할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결렬 위기에 빠진 노사정 대타협의 물꼬를 내기 위해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현장 근로자와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이해를 구하고자 한 그의 노력은 자칫 좌초될 뻔한 노사정 합의를 살려낸 밑거름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사정 합의문은 청년고용 활성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및 취약계층 보호, 법제도의 불확실성 해소, 노사정의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 등 모두 5개 부문에서 약 20개의 과제와 다시 60개가 넘는 세부항목으로 이뤄졌다. 이처럼 방대하게 정리된 노사정 합의문은 노동계와 경영계가 고민하는 모든 이슈를 망라하지는 못했지만 노동시장 개선을 위해 현재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현안에 대하여 노사정이 그 해결을 약속한 문서이다.
이 중에는 통상임금 명확화, 근로시간제도 개선, 임금체계 개선(임금피크제 도입), 실업급여 확대 등 구체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분야도 있지만 청년고용 방안, 근로자 간 격차 해소 및 비정규직 고용안정 문제,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인사원칙 정립 등 내용이 추상적이거나 논의해야 할 주제만 정한 이른바 ‘미완성 합의’가 훨씬 더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노사정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목록과 그 논의 방향을 정리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과거에도 새로운 경제사회적 환경과 충돌되는 낡은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으나 노사와 그를 대리한 여야의 맹목적이고 이념적인 대립으로 좌절된 적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노사정 합의는 노사정이 대립과 투쟁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국가적 난제(難題)를 풀어갈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하고 노동시장을 합리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
물론 불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노동계 일부는 이번 합의가 쉬운 해고와 저임금 근로자층 확대, 비정규직 양산을 불러올 노동 개악이라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인지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 경영계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위한 실질적 현안이 빠져 있다고 주장하지만 노사정 합의문에서도 밝혔듯이 이번 노사정 합의는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완결이 아니라 초석을 놓은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히려 노동계와 경영계의 대립적인 입장을 고려하면 노사정이 함께 논의 과제와 방향을 정하고, 공동으로 구체적인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관련 당사자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가장 합리적인 해법일 수도 있다.
지금은 노사정이 고통스럽게 도달한 합의정신과 합의사항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 통합, 청년과 미래 세대의 일자리 창출과 능력 중심의 고용 등 노사정이 합의한 가치를 전제로 이미 상당한 접점이 이뤄진 사항은 신속하게 입법 처리하고, 노사정이 추가 논의를 통해 합의 및 협의하기로 한 사항은 협상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구체적 개선 방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어렵게 노사정 대타협을 지켜낸 노사정 합의의 기초자들은 합의문에 서명한 것으로 자신의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를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한 임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노사정 합의를 부정하는 극단적 주장을 선동하거나, 정치적 조급성과 정치공학적 셈법만으로 노사정 합의의 기본정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세력 모두 노사정 합의가 만들어 놓은 사회 통합의 가치들을 무너뜨리는 우리 사회의 적(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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