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문화유산 등재, 韓日 새롭게 시작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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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국제부장
허문명 국제부장
본보 파리 전승훈 특파원이 강제 징용기록을 뺀 채 그 시설물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 한다는 일본의 움직임을 A1면 톱과 A3면에 보도(3월 31일 자)했을 때 분노가 차올랐지만 결과에 대해 솔직히 비관적이었다. 총회를 불과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일본의 준비는 치밀했던 데 비해 유네스코 한국대표부 지도부는 아예 공백 상태였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제기구에서 잔뼈가 굵은 실세 외교관을 유네스코 특명전권대사에 임명해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왔다. 게다가 일본은 유네스코 분담금 1위 국가에 1999년 일본인 유네스코 사무총장까지 배출할 정도로 돈줄과 인맥을 쥐고 있는 나라 아닌가. 하지만 일본은 결국 독일 등 국제사회의 반일 여론에 굴복하고 한국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요구에 승복했다.

일본 외상의 말바꾸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최종 등재 결정문에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적시하게 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우호적 한일관계 확립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화를 나눈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라는 걸 보여준 일이라 생각된다. 우리 민(民)과 관(官)이 일본과 더 많이 대화하고, 또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면 위안부 문제 등도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요즘 본보가 연재하고 있는 ‘한일수교 50년 한일교류 2000년, 한일 새로운 이웃을 향해’ 시리즈를 기획 주관하면서 기자는 새삼 한일관계의 어제와 내일에 빠져 있다. 전 국제부원들이 발로 뛴 지난 6개월간의 취재과정에서 기자는 백제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그 후손이 일본 고대국가의 왕비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일본에 한자와 논어를 전해준 백제인 왕인 박사가 지금까지도 일본인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백제 왕족과 귀족들의 주도하에 일본 지배층이 형성되었으며 일본에 문물과 기술을 전해주면서 거의 형제 국가처럼 지냈다는 역사적 기록들과 구체적 증거들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잊고 살았던 백제인들의 흔적과 숨결을 오히려 일본 땅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주말에 전직 언론사 사장과 장관을 지낸 어르신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마침 본보 시리즈가 화제에 올랐는데 이 자리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현역 시절 도쿄에서 연수도 하고 일본 정치인들과도 자주 교류한 전직 언론사 사장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와 세 번 만난 사이인데 그가 내 조상은 ‘경상도’라며 ‘형님국가’를 위해 건배하자고 건배사를 할 때 전율이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5공화국 때 청와대 경호실에서 일했던 한 전직 관료는 “84년 전두환 대통령 방일 때 사전 점검차 ‘황실’에 갔다가 우리가 옛날에 쓰던 놋수저 놋그릇에 대대로 한국식 김치까지 담가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번에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새삼 알게 된 것이지만 고대 한일교류 연구는 한마디로 봉인된, 어떤 면에서 금기시된 분야이다 보니 연구층이 매우 얇았다. 아무리 화목했던 집안도 100년이 지나면 옛날을 잊고 원수가 된다는데 광복 70년을 맞는 한일관계도 이렇게 가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한일 양국 모두 ‘일제 35년’에 발이 묶인 채 으르렁대며 조상에 부끄러운 역사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소식이 알려진 같은 날, 한국에도 낭보가 날아들었다. 백제유적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에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한일 두 나라가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을 뛰어넘어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고, 함께 인류에 공헌하는 미래를 꿈꿔 본다.

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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