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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 내놓으라지만 취업알선 미끼로 징모한 게 日 책임”

입력 2015-02-28 03:00업데이트 2015-02-28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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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윤명숙 충남대 국가전략硏 연구원
“아베 신조 총리와 일본의 보수 세력은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연행’ 증거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총검을 앞세워서 여성을 끌고 가는 것만이 위안부 동원이 아닙니다. 취업 알선과 인신매매로 조선 여성을 징모(徵募)해 간 것 역시 일본 정부의 책임이자 식민지배 폭력성을 드러내는 겁니다.”

20년 넘게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위안소 제도를 연구해온 윤명숙 충남대 국가전략연구소 전임연구원(53·사진)을 26일 만났다. 윤 연구원은 도쿄외국어대를 거쳐 일본 히토쓰바시대 석·박사과정 9년 동안 문헌자료와 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 위안소 제도를 연구했다. 이를 집대성해 일본에서 출간한 ‘조선인 군 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 제도’(2003년)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윤 연구원에 따르면 군인이 여성을 끌고 가는 것은 주로 점령지에서 발생했다.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는 공창제, 소개업 등을 응용한 ‘일본군→군 선정업자→중간 징모업자→지역 징모업자’로 내려오는 피라미드 형태의 징모 시스템이 이용됐다. 그는 “군이 여성을 공급할 업자를 선정하거나 총독부 경무국 등을 통해 지역 경찰에 지시가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선은 전 인구의 80%가 농촌 인구였고 전 농가의 70%가 빈농이었죠. 군 위안부 징모 대상을 보면 농촌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즉, 생계를 위해 일자리가 필요한 여성이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직업 알선, 취업이라는 거짓말로 조선 여성을 징모한 거예요. 군 위안부 징모였던 만큼 그 책임은 당연히 징모를 정책적으로 주도한 일본 정부에 있는 겁니다.”

일본 우익들이 군 위안부를 징모하는 과정에 일부 조선인들이 개입됐다며 책임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윤 연구원은 비판했다. 말단이나 중간의 조선인 업자보다는 징모 제도를 만들어 운영한 징집의 주체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피해 여성은 위안소에 간다는 걸 모르는 상황에서 응했다가 원치 않은 성폭력을 당하게 됐다.

윤 연구원이 위안부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1년.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1924∼1997)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일본의 각종 문헌자료를 통해 위안소 제도의 실태를 분석했다. 책에서는 조선인 군 위안부 형성 과정부터 군 위안소 정책과 관련된 일본 정부, 군의 감독 실태, 접객업 동향, 군 위안소 관련 업자, 징모업자 출현 요인 등을 세밀히 제시했다.

“조선총독부에서 남긴 군이나 위안부 관련 자료는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군 위안부가 국제법에 저촉되는 것을 당시 일본 정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패전 직후 대량 소각한 겁니다. 일본 우익들은 강제연행을 증명할 자료를 내놓으라는데, 자료를 남겨 놓지 않은 책임 역시 일본 정부에 있어요.”

윤 연구원은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일본 식민주의, 폭력성 등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내각이 수립된 후 위안부를 부정하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이에 대한 인식이 1990년대 초반으로 후퇴한 것 같습니다. 한일 과거사 청산은 군 위안부를 비롯해 사할린 징용, 조선인 원폭 피해 등 많은 문제가 남아있어요. 식민시대 연구가 더욱 활성화돼야 합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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