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이해 못할… 日의회의 과거사 공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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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서답 아베

“무라야마 담화 중 ‘우리나라는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책을 그르쳐’라는 부분이 있는데 총리는 우리가 국책을 그르쳤다고 생각하나.”(나가쓰마 아키라 일본 민주당 의원)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도, 그 이후에 나온 고이즈미 담화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생각을 표명한 그대로다.”(아베 신조 총리)

“내가 물은 것은 우리나라가 과거 국책을 그르친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나가쓰마 의원)

“담화에 대해서는 전체로 계승한다는 점을 명확히 말한다.”(아베 총리)

25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민주당 정권에서 후생노동상을 지냈던 나가쓰마 의원이 전후 70년을 맞은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을 따져 물었다. 질의석 옆에는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내용이 적힌 패널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날 시종 “무라야마 담화를 전체로서 계승하고 있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총리의 앵무새 같은 답변이 되풀이되자 나가쓰마 의원이 “그렇다면 총리는 우리나라는 국책을 그르친 바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고 추궁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회피성 답변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가쓰마 의원이 4차례에 걸쳐 같은 질문을 하자 자민당 의원석에서 “자학적”이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나가쓰마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쟁의 교훈이나 반성을 말하면 자학사관이라며 미래 지향을 이야기하라고 한다.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모독하는 것인가. 질문을 바꿔 전쟁의 교훈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번에는 아베 총리가 화를 냈다. “나는 자학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전쟁에서)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아시아 여러분에게 다대한 ‘폐’를 끼쳤다.”

나가쓰마 의원이 “그렇다면 교훈을 한두 가지라도 말해보라”고 다시 압박하자 아베 총리는 “전쟁 참가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 안 된다는 게 최대 교훈”이라고 답했다. 침략 전쟁을 ‘폐’라는 말로, 전쟁의 교훈은 ‘다시 참가하면 안 된다’는 말로 간단히 규정한 것이다.

나가쓰마 의원이 질문을 바꿨다. “전후 70년인 올해는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는 담화를 내야 한다. 국민적 논의 속에 담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총리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회는 국회의 결의든 뭐든 낼 것이고, 아베 내각은 아베 내각의 책임 아래서 담화를 내겠다.”(아베 총리)

나가쓰마 의원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NHK의 생중계가 중단됐다. 나가쓰마 의원은 게이오대 법대를 졸업한 뒤 닛케이비즈니스 기자를 거쳐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달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 3명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에 관한 질문을 받고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일본의 명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소송이 늘고 있다”며 법무성에 송무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으로 헌법에 대해서도 결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일본#아베#일본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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