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상헌]국회의사당을 포위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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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장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장
세월호 특별법에 발목이 잡혀 정국이 올 스톱된 상황에서 엉뚱하게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약칭 일베) 회원들의 ‘폭식투쟁’이 논란이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 등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앞에서 피자 치킨 등을 나눠 먹고 노래를 불렀다. 일부 유가족과 정치인들의 ‘정치적 단식’에 항의하는 퍼포먼스인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이 엉뚱한 논쟁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이유는 두 가지로 본다.

우선 정치 퍼포먼스는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진보 내지 좌파의 전유물처럼 여겼는데, 자생적 청년 사이버 우파가 오프라인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니 상당히 낯설고 생경하기에 논란이 커진 면이 있다고 본다.

두 번째는 퍼포먼스의 방식이다. 자식을 잃은 비극에 망연자실한 유가족 앞에서 조롱과 냉소를 퍼붓는 이들의 태도는 누가 봐도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펼칠 권리가 있지만 최소한의 상식과 예의를 지켜야 한다. 옳은 얘기도 ‘싸가지’가 없어 보이면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희희낙락할 수는 있으나 공감을 얻을 수는 없다. 공감을 얻을 수 없다면 당연히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국회는 개점휴업한 지 오래고, 광화문광장에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투쟁이 벌어지는 한편으로 이들에 반대하는 ‘폭식투쟁’에다 이들을 다시 조롱하는 개 사료까지 등장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적개심과 분노, 심지어 살기까지 느껴지는 풍경들이다. 정치는 온데간데없고 그야말로 ‘만인과 만인이 투쟁’하는 홉스적 자연 상태, 이른바 야만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참에 광화문광장의 단식투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세월호 특별법’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은 누가 만드나? 국회에서 만든다.

이미 여야는 합의한 바가 있고, 한 야당의원 말처럼 95% 쌍방의 의견이 접근해 있다고 한다. 허나 이른바 ‘집토끼 근본주의자’들에게 발목이 잡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진영의 대표가 하는 입법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항의할 수도 있고, 반대를 위한 의사표시, 즉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식’이라는 방식이 과연 교양 있고 수준 높은 방식인가?

“곡기를 끊겠다”는 것은 “죽겠다”라는 말인데, 과연 작금의 상황이 ‘죽음의 퍼포먼스’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른바 헌법기관인 의원 나리들(?)의 단식이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국회이지 광장이 아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머리를 싸매고 일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들의 ‘굶기’를 보는 심정은 내 눈엔 심지어 ‘코스프레’(의상을 의미하는 ‘costume’과 ‘놀이’를 의미하는 ‘play’의 합성어)로까지 보인다. 한마디로 참담할 따름이다. 우리가 한시적으로 위임해준 권력은 감시받고 비판받아야 한다. 허나 그 방식은 신랄하지만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풍자적이어야 한다. 퍼포먼스의 수준이야말로 우리의 민낯이고, 우리의 문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빈곤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퍼포먼스를 제안한다.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자!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함께 모여 인간 사슬을 만들어 의사당을 에워싸, 몇날 며칠이 지나더라도 해결하지 못하면 국회의원들이 한 발짝도 밖으로 못 나오게 하자! 물론 식수 이외에는 음식물 반입까지 금지!!!

‘무노동, 무임금’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않는다’는 것은 헌법보다 자연법에 가까운 이치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자!!!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장
#세월호 특별법#일베#폭식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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