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한호]쌀 관세화, 이제부터는 협상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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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 교수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 교수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지난 20년간 한국은 세계적 통상대국으로 성장해 오면서도 쌀에 대해서는 예외적 통상국으로 분류돼 왔다. 물론 대가를 지불하는 예외국 지위였다. 정해진 증량 원칙에 따라 일정량의 쌀을 수입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계속 증량돼 온 수입물량이 한국 쌀 산업에 큰 부담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마침내 적정 수준의 관세만을 부과하고 쌀 수입을 허용하는 소위 관세화 방침을 천명했다. 이는 통상대국 한국이 예외적 통상국에서 일반적 통상국으로 전환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 전환은 한국 정부의 일방적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렵고 힘든 다자와 양자 간 협상을 통해 이제 국제무대에서 보호받는 위치가 아니라 홀로서기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유리한 관세화를 위한 검증을 벌여야 하는데 이것은 상대국과 거의 협상 수준으로 임해야 한다.

협상에는 국내 이해 관계자를 상대로 하는 국내 협상과 WTO 회원국을 상대로 하는 국외 협상이 있다. 국내 협상을 통해서는 국내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여 국외 협상을 돕는 우군이 되도록 해야 한다. 국내 이해 관계자들이 국외 협상 과정에 자신들이 맡아야 할 역할을 찾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직접적 이해 관계자인 농민이 국외 협상의 가장 큰 우군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국내 협상의 내용이 돼야 한다.

이러한 국내 협상의 성공을 등에 업고 임해야 할 것이 국외 협상이다. 국외 협상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말할 것 없이 관세율 수준 결정이다. 가급적 높은 초기 관세율을 얻으려고 하는 한국 정부와 최대한 낮은 관세율을 주장할 WTO 회원국 간의 전쟁 같은 협상이 예견되고 있다. 물론 관세 수준을 결정하는 공식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공식은 공식일 뿐이다. 어떤 자료를 대입하느냐에 따라 얻게 되는 결과는 차이가 난다. 그래서 대입할 자료 결정 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 입장만을 고려한 일방적 자료로는 협상이 불가능하다. 합리적 검증과 해석으로 상대를 충분히 설득해낼 수 있는 자료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곧 있을 WTO에 대한 관세화 통보문 작성, WTO의 검증 대응, 그리고 관세율 협상 등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국내 협상의 주된 수단이 될 쌀 대책 논의와 국외 협상의 주된 내용이 될 관세율 설정 논의에는 오직 쌀 산업 발전만이 고려돼야지, 그 어떤 정치적 논리도 개입될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이 우선적으로 관세화 협상을 이해하고 정치적 논리를 벗어나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이제 한국 쌀 산업이 오랫동안 예외적 지위에서 외국 쌀과 경쟁하던 시절을 뒤로하고 보편적 기준에서 경쟁하는 때를 맞이했다. 이를 기화로 정치적 고려를 수반하던 ‘정치재화’로서의 성격도 점점 씻어내고 완전한 ‘시장재화’로서 거듭나 한국 식량안보의 기반 작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한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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