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상 4代 10명 왁자지껄… “갈등 겪을 틈 없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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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충전 코리아]
안성 쌍지목장 대가족의 웃음

《 새로 담근 김치를 가지고 아버지가 오셨다/ 눈에 익은 양복을 걸치셨다/ 내 옷이다/ 한번 입은 건데 아범은 잘 안 입는다며/ 아내가 드린 모양이다/ 아들아이가 학원에 간다며 인사를 한다/ 눈에 익은 셔츠를 걸쳤다/ 내 옷이다/ 한번 입고 어제 벗어놓은 건데/ 빨래줄에서 걷어 입은 모양이다. (윤제림 시인의 ‘가족’) 》

윤 시인은 중년 남성의 오래된 양복 외투를 나이 든 아버지가 입고, 빨아둔 셔츠는 아들이 입고 나가는 풍경을 그렸다. 입던 옷을 물려주고 바꿔 입는 일상에서 가족의 사랑이 느껴진다.

3월 29일 오후 1시 경기 안성시 고삼면 쌍지1리 마을 주민회관. 윤태광 씨(29)는 카메라 앞에 선 채 손을 모아 하트를 만들었다. 윤세옥 씨(79)도 난생처음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들었다. 윤홍선 씨(51)가 뒤따라 같은 포즈를 취하자 아내가 “생전 해봤어야지”라며 깔깔 웃었다. 윤태석 군(14)도 어색한 듯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포즈를 취했다. “찰칵!”

뒤이어 집안의 막내 정희 양(8), 윤상 군(6), 그리고 정원 양(1)의 차례. 카메라를 손으로 만지려고 자꾸 기어나가는 정원 양을 정희 양과 윤상 군이 붙잡았다. “찰칵.” 모처럼 곱게 한동주 씨(78·여), 이옥기 씨(52·여), 임덕순 씨(28·여)도 제각각 포즈를 취했다. 마지막 촬영 컷을 위해 함께 카메라 앞에 모였다. 팔십을 바라보는 노인과 한 살배기 갓난아이가 정면의 렌즈를 응시했다.

1시간 넘게 동아일보 취재팀 앞에서 포즈를 바꿔가며 촬영을 마친 모델 10명은 시종일관 미소를 짓거나 재밌다고 웃었다.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 한 지붕 네 가족 모여 사는 쌍지목장

쌍지1리에서 쌍지목장을 운영하는 윤 씨 가족은 4대 10명이 모여 산다. 1대 윤세옥 할아버지와 한동주 할머니 부부, 2대 윤홍선 이옥기 씨 부부, 3대 손자 부부 윤태광 임덕순 씨와 남동생 윤태석 군, 4대 증손주 정희, 윤상, 정원이까지. 지난해까지 함께 살았던 태광 씨의 여동생 지연 씨(27)는 호주에서 유학 중이다. 가족이 일하는 쌍지목장에는 젖소와 한우가 총 200마리가 넘는다. 가족은 목장 옆 손닿을 거리에 집 세 채를 지어 산다.

매일 오전 6시. 가족들이 눈을 뜬다. 밤새 여물을 기다린 소들에게 아침을 먹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오전 8시에서 8시 반 사이 가족들이 모여 아침을 먹는다.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서면 할아버지 세옥 씨는 밭을 돌보러 나간다. 아버지 홍선 씨와 아들 태광 씨는 목장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할머니 동주 씨와 며느리 옥기 씨는 목장 일을 거들거나 집안일을 한다. 손주며느리 덕순 씨는 막내 정원이를 돌본다.

오후 6시가 넘어 아이들이 돌아오면 다시 온 가족이 얼굴을 마주보는 시간. 저녁상에는 학교에서 치른 받아쓰기 점수부터 젖소가 생산한 우유량, 밭에 심어놓은 작물 상태 등 온갖 이야기가 오간다. 쌍지1리 산골에 해가 저물고 저녁상을 물린 뒤에도 가족들 사이에는 도란도란 이야기가 이어진다.

○ 대가족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

할아버지 세옥 씨는 온 가족이 인정하는 ‘착한 남자’다. 할머니 동주 씨는 “이 이가 정이 많아 노숙인 보면 매번 돈을 쥐여준다”며 혀를 찼다. “경제관념이 없는 게 젊었을 때는 속상했지만 그런 성격이 대가족을 품을 수 있는 비결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하는 홍선 씨는 “하루 24시간 중 오후 9시 무렵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가족들이 잠들면 홍선 씨는 세 손주가 잠든 방의 방문을 살며시 연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정희, 윤상, 정원의 발을 보듬거나 발가락을 만져본다. 홍선 씨는 “내 새끼가 또 새끼를 낳아서 한 지붕 아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 세옥 씨를 가장 챙기는 사람은 손주며느리 덕순 씨다. 그는 세옥 씨가 갑상샘암 수술을 받기 위해 일주일간 입원했을 때 내내 옆에서 먹고 자며 수발을 들었다. 스무 살이 갓 넘어 시집 온 덕순 씨는 처음에는 대가족 살림이 낯설기만 했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시아버지 앞에서 고개도 못 들었다. 그러나 대가족과 살면서 조금씩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할아버지가 외출할 때면 쫓아가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 넣어드릴 정도라고 한다.

윤 씨 가족이 대가족이 된 데에는 3대 태광 씨 역할이 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업시간에 장래 희망을 “낙농업”이라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던 것. 아버지 홍선 씨는 ‘어린 마음에 한때이겠거니’ 했지만 태광 씨는 대학에서 축산업을 전공한 뒤 목장 일에 뛰어들었다. 홍선 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따로 산다며 분가를 하는 게 당연한데 같이 살면서 아버지 일까지 이어받겠다는 아들이 고맙다”고 털어놨다.

○ 걱정도 갈등도 있지만 ‘해답’은 가족

대가족 생활에도 걱정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사교육’. 집이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손주며느리는 자녀 교육에 마음이 쓰인다. 어른들도 며느리의 마음을 알고선 “언제든 (시내로 출가하는 것을) 편한 대로 하라”고 말했다. 덕순 씨는 “고민이 있지만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게 아이에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선 씨 부부가 늦게 얻은 막내아들 중학생 태석 군은 한창 사춘기다. 가족이 많아 갑갑하거나 불편하진 않는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들 중에는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아무도 없는 애들이 적지 않아요. 집안 불도 꺼져 있고. 쓸쓸해 보였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할아버지나 할머니, 부모님이나 조카들이 있어서 좋아요.”

시집온 뒤 29년간 시부모를 모셔온 옥기 씨는 “힘든 점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래도 가족이 해답이었다”고 말했다. 시부모를 언제부터인가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게 된 순간부터 ‘시집살이’가 ‘내집살이’로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남편 홍선 씨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윤 씨 가족은 “가족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할아버지 세옥 씨는 “대가족이 불편한 점도 있지만 함께 복닥거리며 살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며 “그 안에서 일상이 매일 소소하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윤 씨 가족 같은 대가족은 빠르게 줄고 핵가족과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1975년 우리나라에서 4대 이상이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은 6만1935가구(2.5%)였다.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대가족은 1만2769가구(0.07%)로 크게 줄었다. 가족의 붕괴와 함께 절망적인 지표도 늘고 있다. 1983년 한 해 총 25만4563명의 사망자 중 3471명(1.36%)이 자살이었다. 2012년 한 해 사망자는 총 26만7221명으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자살자는 1만4160명(5.3%)이 발생해 4배 이상으로 늘었다.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자살자가 느는 건 가족의 붕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사회학자들은 지적한다. 윤 씨 가족처럼 4대가 함께 살진 않더라도 가족 구성원 간 솔직하게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안성=이은택 nabi@donga.com·여인선 기자
#쌍지목장#대가족#4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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