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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세계 어딜 갖다놔도 살아남게…” 그 각오로 골리앗을 꺾다

입력 2013-11-14 03:00업데이트 2013-1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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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연료펌프 공급 1위 협력사 ‘코아비스’ 스토리
차량용 연료펌프 전문 중소기업 코아비스의 손인석 연구개발부문장이 최근 이 회사가 새롭게 만들기 시작한 차량용 텔레매틱스 장치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뒤에 보이는 기기들이 코아비스의 주력 제품인 차량용 연료펌프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제 겨우 살아나는가 싶더니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요?”

2000년 말 대우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GM으로 매각 수순을 밟자 주위에서 걱정 섞인 말들이 이어졌다. 회사 설립 후 약 6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버텨온 임직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가장 큰 거래처인 대우차가 GM으로 넘어간 뒤에도 안정적인 거래관계가 유지될지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살아남는 방법은 보쉬, 콘티넨털, 덴소 같은 글로벌 기업과 기술력으로 겨뤄 이기는 것뿐이었다. 임직원들은 이를 악물었다.

그 후 10여 년 뒤 이 회사는 GM 본사가 구매하는 차량용 연료펌프의 약 40%를 공급하는 업체로 거듭났다. 차량용 연료펌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코아비스의 이야기다.

○ 대우그룹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생존의 길로

코아비스의 전신은 1994년 12월 설립된 한국자동차연료시스템이다. 대우 계열사인 대우정밀과 미국 왈브로가 각각 51%와 49%의 지분을 투자해 차량용 연료펌프 제조업체를 세웠다. 경영권은 대우 측이 갖기로 했다.

자본금 16억 원으로 규모는 작았지만 직원들의 자부심은 다른 대우 계열사 직원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1995년 입사한 손인석 연구개발부문장(상무·43)은 계열사 공채 동기들과 함께 신입사원 연수를 받으며 “세계 어느 곳에 데려다 놓아도 ‘대우맨’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사의 말을 가슴에 새기곤 했다.

회사는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차량용 연료펌프를 생산해 대우차에 납품했다. 연료펌프의 국산화를 위한 연구도 진행했다.

회사가 처음 위기에 놓인 것은 1998년이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한국자동차연료시스템은 재무상태가 나빠 금융감독위원회가 발표한 퇴출기업 55곳에 포함됐다. 그룹의 지원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면서 회사는 겨우 살아남았다. 2, 3년간은 대우차에 납품할 물량이 있어 문을 닫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우의 그늘을 벗어난 여파는 컸다. 직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남은 직원들은 동요했다.

당시 경영진은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 연서면)에 있는 회사 강당에 전 직원을 모아놓고 “여기 남은 직원들은 애사심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우리 힘을 모아 다시 회사를 일으키자”고 독려했다. 사명도 2000년 10월 ‘캐프스’로 바꾸며 각오를 다졌다.

연구개발(R&D) 직원들은 국산화에 힘을 쏟았다. 경쟁 회사의 30%도 안 되는 인력으로 매일 밤을 새우며 신제품을 개발했다. 보통 2, 3년이 걸리는 제품 국산화를 1년 안에 해냈다. 손 상무는 “이 정도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 성실함과 빠른 일처리로 GM을 사로잡다

2004년 손 상무를 포함한 직원들은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미국 GM 본사를 찾아갔다. 어설픈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자 GM 구매담당자의 송곳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연료펌프의 정전기 방지는 어떻게 합니까?”

“플라스틱 재질은 세부적으로 검토했습니까?”

손 상무와 직원들은 당황했다. 빠른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숙였다. GM대우 직원들이 도왔다. 이들은 GM 본사에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꼼꼼히 봐 달라. 실력만큼은 최고인 회사다”라고 지원했다.

결국 GM이 생산하는 10만 대의 차량에 들어갈 물량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캐프스는 2006년 GM의 글로벌 제품 개발 프로그램에 함께하는 협력업체로 선정됐다. 모동헌 차장은 “해외 업체들이 자체 의사결정에 시간이 걸려 GM의 요구에 바로 대응하지 못할 때 우리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빨리 응답했다”며 “이런 성실성을 높게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회사는 사명을 다시 코아비스로 바꿨다. 코아비스는 이제 GM에 가장 많은 수의 차량용 연료펌프를 공급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독일의 다른 자동차업체와도 계약을 앞두고 있으며 블랙박스 등의 사업에도 진출해 사업 다각화를 노리고 있다. 매출액도 지난해 1634억 원으로 늘었다.

손 상무는 “이제 더이상 대우맨은 아니지만 세계 곳곳을 휘젓고 다니던 자부심은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있다”며 “이런 자부심이 여러 위기가 찾아와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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