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내용 때문?… 후임 대통령 위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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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金 회의록 원본 실종]노무현 前대통령 삭제 지시 의혹

민주당 의원들 대책 논의



22일 국회 운영위원회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가운데 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헌 원내대표,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 열람위원 민주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민주당 의원들 대책 논의 22일 국회 운영위원회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가운데 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헌 원내대표,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 열람위원 민주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조명균 전 대통령안보정책비서관이 검찰 수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지원(e-知園) 시스템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내린 이유와 삭제 경위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국정원에 원본 보관돼 있다는 것 감안”

조 전 비서관은 올해 1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2012년 10월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의혹을 제기한 새누리당 정문헌 이철우 의원을 고발했고, 검찰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실제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회의록의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조사하기 위해 조 전 비서관을 부른 것이다.

검찰 수사에서 조 전 비서관은 자신이 노 전 대통령의 회의록 삭제 지시를 직접 받았고, 삭제 작업도 직접 진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려던 게 아니라 국정원에 원본이 보관돼 있다는 걸 감안해 이지원에서 삭제를 지시한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비서관의 진술을 그대로 해석하면 노 전 대통령은 회의록 내용을 일부러 은폐하기 위해 삭제 지시를 내린 게 아니라 후임 대통령이 편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배려였다는 것이다. 회의록을 대통령기록관에 보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관하면 국정원에 있는 자료도 똑같은 지위를 얻게 돼 후임 대통령들이 쉽게 볼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의 실용적인 사고가 작용했다는 의미다. 노 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후대 대통령들이 (회의록을) 언제나 찾아볼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도 있다.

반면 사료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기록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마음대로 삭제 지시를 내린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시는 이미 대통령기록물관리법도 시행되고 있던 때였고, 기록을 쉽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또 다른 기록을 삭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이지원과 국정원에 자료를 모두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국정원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민감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는 정상회담 회의록을 모두 없애려 했지만 국정원이 이를 듣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임기 말 구축된 이지원 삭제 기능 이용?

노 전 대통령이 정확히 언제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만들어져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된 이후 이런 지시가 내려졌다면 새로 추가된 이지원의 삭제 기능이 활용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는 2007년 7월부터 ‘이지원 기록물 보호체계 구축 사업 계획서’를 바탕으로 18억여 원을 들여 이지원에 53개 항목의 삭제 기능을 추가했다. 삭제 가능 항목에는 회의록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대통령 일지’나 ‘대통령 업무 주제’ 등도 포함됐다.

회의록 외에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 발언이 담긴 청와대 사전·사후 회의록이 함께 없어졌다는 의혹도 이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지원 내에서 같은 항목으로 분류된 기록이 함께 삭제됐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노무현 정부가 회의록 삭제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이런 삭제 기능을 추가한 것 같지는 않다.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에 삭제 기능을 구축하기 위한 사업 계획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보낸 사업 계획서에는 “참여정부에서 생산된 기록물을 누락 없이 차기 청와대로 인수인계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기록물보호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사업 추진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당초 기록물 관리 및 새 정부 인수인계를 위해 도입된 이지원의 삭제 기능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결과적으로 회의록 삭제 도구로 쓰였을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삭제 경위, 수사로 밝혀질 듯

회의록이 왜, 어떻게 삭제됐는지는 결국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수사, 또는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이미 한 시민단체가 대검찰청에 사라진 회의록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 검찰은 조만간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에선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면 차라리 특검을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대통령지정기록물은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하면 열람할 수 있게 돼 있다. 검찰이 이지원과 대통령기록관 자료를 대조하고 이를 통해 자료 삭제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수사에 착수한 지방검찰청이 고등법원장에게 직접 영장을 청구하는 이례적인 상황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여야 합의로 특검법이 발의되고 특검이 수사에 나서게 되면 검찰은 그동안 수사한 자료를 특검에 이관하고 특검에서 이 사안을 다루게 된다.

최창봉·권오혁 기자 ceric@donga.com
#민주당#남북저상회담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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