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의 꿈을 이룬 사람들]한국인 최초 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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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일간의 무한도전… 이 사람 ‘관상’이 달라졌다

지평선을 그저 바닷가에서 바라만 보는 것과 지평선을 향해 한 달음씩 배로 나아가는 느낌은 분명 달랐다. 7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복요트장 앞바다에서 윤태근 선장이 요트를 타고 있다. 창원=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평선을 그저 바닷가에서 바라만 보는 것과 지평선을 향해 한 달음씩 배로 나아가는 느낌은 분명 달랐다. 7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복요트장 앞바다에서 윤태근 선장이 요트를 타고 있다. 창원=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어? 저 사람이 아닌데….’

백발에 구불구불 파마를 한, 까맣게 그을린 남자가 기자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었다. 3년여 전 세계일주를 앞두고 출항하기 전 찍은 사진 속 인물과 많이 다른 듯했다. 부드러운 인상에 수줍음도 많아 보였는데…. 지금은 영락없는 뱃사람. 바로 윤태근 선장(51)이다.

경남 마산역에서 차로 40분이 걸려 도착한 구복 요트장. 그곳에서 윤 선장을 만났다. 에너지가 충만해 보였다. 지난 3년의 그 무엇이 그의 ‘관상’을 바꾼 것일까.

구복 요트장 옆에 있는 컨테이너 건물. 그의 사무실이다. 안에 들어서자 벽면을 장식한 세계지도와 한국지도가 눈에 띄었다. 뭍으로 돌아다닌다면 자동차길을 그려놨을 터. 그의 지도는 달랐다. 굵은 매직으로 뱃길을 그려 놓았다. 어느 뱃길로 다녀야 한국 섬들을 짧은 거리로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계지도에도 검은 매직으로 해상 항로가 표시돼 있었다. 605일간 그가 항해한 길. 그는 2009년 10월 11일 부산을 떠나 2011년 6월 7일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요트 세계일주를 했다. 유럽인이나 일본인이 홀로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것은 벌써 20∼30년 전의 일. 그보다는 한참 늦었지만 국내에서는 선구자다. 10여 년 전인 2002년만 해도 국내에서 요트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소방공무원을 하다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를 하면 좋을까. 2002년 일본 오사카 여행을 하다 우연히 책방에 들어갔습니다. 요트 잡지가 끌리더라고요. 이거다! 내가 물에서 노는 건 정말 좋아하고 자신 있거든요. 제가 ‘부산 싸나이’ 아닙니까? 국내에서 한번 해보자 싶었습니다.”

공무원을 그만뒀다. 요트 타는 법을 배우기 위해 바다로 갔다. 국내에 요트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이 없는 점에 착안해 ‘요트 딜리버리(운송대행)’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만든 요트를 국내까지 배달하는 일. 그러나 일감이 들어오지 않았다. 수요가 없기도 했지만 ‘생초보’에 경험도 없는 그가 미덥지 않아서다. “그럼 내가 먼저 내 배를 한 척 사서 갖고 오자!”

통장을 깨고 대출을 받아 일본에 1억 원짜리 배를 주문했다. 모험심 발동. 배를 찾아 직접 항해하겠다는 야무진 꿈도 꿨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렸다. “경험도 없는 사람이, 대한해협이 장난인 줄 아냐?”

오기가 생겼다. 떵떵 소리를 질렀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뗏목 같은 걸로도 일본까지 가지 않았나. 나무배도 아니고 요즘 기술로 만든 요트를 탔는데 죽기야 하겠어?”

항해 연습에 돌입했다. 사람들은 초보 항해 때 가장 두려운 지점이 해운대 근처라 했다. 해변을 떠나 조금만 가면 수심이 갑자기 얕아진다. 바람도 잘 따라주지 않는다. 암초에 걸리기도 쉽다. ‘장난이 아닌걸.’ 그러나 겁먹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배를 넘겨받은 뒤 마침내 첫 항해를 시작했다. 다행히 큰 탈은 없었다. 3일 만에 무사히 한국에 도착. 자신감이 생겼다. 항해술도 점차 좋아졌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요트 강습도 시작했다.

하지만 늘 목마름이 있었다. 망망대해가 부르는 듯한 착각. 그의 ‘버킷리스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바로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 욕망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7년 동안 준비를 했다. 정박비, 수리비, 식료품비, 전화비, 연료비가 필요했다. 기업의 지원을 요청했다. 한 기업이 잠깐 검토해 본 뒤 “안 되겠다”며 거절했다. 만약 사고라도 당하면 기업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다행히 부산 지역의 건설업체인 협성르네상스가 도와주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빚을 냈다.

자금은 확보됐다. 하지만 정보 부족도 큰 문제였다. 한국에는 요트 세계일주와 관련된 책이나 지도가 없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만든 지도와 자료를 정리했다. 수십 번, 수백 번 머릿속으로 혼자 항해하는 모습과 과정을 그렸다.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충분히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2009년 10월 11일. 48번째 생일이었다. 바로 그날 항해를 시작했다. 37피트(약 11.3m) 크기의 요트엔 ‘Intrepid(두려움을 모르는)’란 이름을 붙였다. 마음속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러나 출항하고 얼마 후 환송객이 보이지 않을 무렵 겁이 덜컥 났다. ‘나같이 외로움 많은 사람이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하려고….’ ‘이제라도 다시 돌아갈까?’

고개를 휘휘 저었다. 강해져야 한다!

이제 생존과의 싸움. 홀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요트를 럭셔리 스포츠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완전 ‘노가다’죠. 닻을 올릴 때 키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둘이라면 좋겠죠. 하지만 그러면 도전이 아니라 여행이 됩니다. 푸껫에서 만난 프랑스인 청년이 같이 하자고 엄청 졸랐어요. 요리를 잘한다는 말에 좀 흔들렸지만, 그래도 눈 딱 감고 거절했죠.”

낚시도 지겨울 만큼 많이 했다. 트롤망을 설치해 놓으니 참다랑어, 고등어, 오징어, 이름 모르는 물고기들까지 많이도 올라왔다. 회도 떠 먹고, 구워도 먹고, 탕도 해먹고, 생선은 원도 없이 먹었다. 그래도 가장 많이 해먹은 음식은 된장찌개. 조용하고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따뜻한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요트는 일본, 대만, 홍콩,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양에 도착했다. 소말리아 아덴 만의 해적들이 요트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횡횡했다. 머리를 맞대면 해법이 보이는 법. 28척의 배가 함께 천천히 이동했다. 무사통과.

홍해, 아프리카 수에즈 운하를 순항해 5개월 만에 지중해에 도착했다.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허리케인. 폭풍은 피해야 상책이다. 아뿔싸. 대서양을 건너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지중해에서 5개월간 배가 묶였다.

원래 계획은 1년 안에 부산으로 돌아오는 것. 생활비에 쪼들리는 아내, 중학교에 입학한 셋째 아들이 떠올랐다. 대서양의 카나리아 베르데를 거쳐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고 했다. 기상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남아메리카를 빙 둘러 우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항해는 예정보다 8개월이나 지체되고 말았다.

“참 이상하죠? 계획에도 없던 남아메리카를 거치는데 놀라운 경험을 한 겁니다. 마젤란 해협 남쪽에 파타고니아란 곳이 있어요. 그곳을 지나면 수백만 년 된 빙하가 떠다닙니다. 작은 빙하를 건져 냉동고에 고이 모셔 놨어요.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위스키에 그 얼음을 띄워서 마시는데! 야릇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마젤란도 나처럼 이 얼음으로 럼주를 마셨을 거란 상상. 그 사람처럼 나도 탐험가다! 순간 온몸에 전기가 찌릿 흐르는 느낌이 들었어요. 캬∼.”

만년 빙하로 마시는 ‘온더록스’. 기자도 침이 고였다. 정말 그랬을 것 같다. 4m가 넘는 파도와 바람에 사투를 벌이고, ‘여기서 죽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축 늘어졌어도 그 한 잔에 모든 시름이 사라졌을 것이다.

항해 거리 5만7400km에 방문한 국가만 28개국. 2011년 6월 7일, 마침내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도착했다. 아내 정소정 씨(50)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외롭고 지쳤을 때마다 떠오른 얼굴. 아내는 “항해를 끝내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집 걱정은 말고 일단 시작한 일은 해내라”며 그에게 힘을 줬었다. 한 사나이의 꿈은 어떤 여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이룰 수도, 잊혀질 수도 있으리라.

인터뷰가 끝났다. 햇살을 머금은 마산 구복 요트장. 15척의 요트가 둥둥 떠 있었다. 그가 요즘 강습도 하고 팔기도 하는 요트들. 그 요트 중 하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이 운항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돛을 언제 펼쳐야 하는지, 방향은 어떻게 틀어야 하는지 익히는 눈빛은 진지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고, 요트를 사려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어릴 적 TV에서 본, 그의 마음을 온통 뺏어버린 알래스카에 가는 것이 꿈이란다.

아 참, 세계를 누빈 ‘인트레피드’호는 어디에 있을까? 필리핀에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현지로 건너간 50, 60대 은퇴자들이 그 배를 타고 항해술을 배우고 있다. 대부분 뒤늦게 요트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꿈은 전염되는가 보다.

지난해 12월 말 9박 10일 일정으로 ‘필리핀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3개월 사이에 15명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가까운 일본 규슈 지방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요트를 타고 오는 2박 3일 일정의 요트 강습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탐험을 떠나고 싶을 겁니다. 나이를 먹어, 결혼을 해서, 자식이 생겨서, 그 꿈을 잊어 갑니다. 전 요트를 타면서 그 꿈을 이뤘습니다. 가슴속에서 타고 있는 불을 봤기 때문이죠. 후회요?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단 한 번도 항구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일주하는 ‘무기항’ 일주를 계획하고 있답니다.”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이 말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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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4명 가족 즐기려면 30피트, 1500만원짜리면 충분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요트 면허자는 2000년 제도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5520명. 동승해 유람을 즐기는 인구까지 합치면 5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최근 들어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요트 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도두항에 사업비 20억 원을 투입해 공공 계류시설(2척), 어선 접안 대체시설(25척) 등 요트 시설을 만들었다. 또 김녕항에도 25억4000만 원을 투자해 계류시설(15척) 및 클럽하우스 등을 지었다.

전남도도 적극적이다. 해안에 요트 코스 4곳과 마리나 항구 30곳을 개발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전남 요트마린 실크로드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인프라를 구축해도 아직까지는 요트 인구가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는 않다. ‘요트 값이 비쌀 것’이라는 생각에 선뜻 배우는 사람도 적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선입견일 수 있다. ‘어떤 요트냐’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다. 길거리에 소형차를 몰고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급 세단을 몰고 나서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물론 요트가 클수록 샤워장이나 부엌이 넓어진다.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을 만큼 침실 공간도 널찍하다. 그렇지만 요트가 작아도 운항하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

윤태근 선장은 “가족 3, 4명과 함께 즐길 요량이라면 30피트로도 충분하다. 중고는 1000만∼1500만 원”이라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여러 명이 공동 명의로 요트를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소유주 이름을 복수로 등록하는 게 가능하다. 이 경우, 비용은 나눠 내고 각자 쓰고 싶은 시간에 가족과 요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윤태근 선장은 “세계일주로 대양을 나가 보니 ‘저런 배로 어떻게 이런 데까지 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의별 요트가 다 나왔더라. 크고 비싼 요트로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건 편견이다. 가족들끼리 고기도 잡고 맛있는 것도 해 먹으면서 항해하다가 항구에 내려 그 나라의 좋은 유적지를 둘러보는 외국 문화가 많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창원=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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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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