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박근혜 vs 문재인 경제공약 심층점검<4>한미 FTA 재협상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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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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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ISD 조항, 문제 있다면 고칠 수도”… 文 “협정문에서 빼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번 대선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양국의 비준을 거치고 벌써 발효(올해 3월)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투자자-국가소송(ISD) 조항 등 핵심 쟁점을 두고 지금까지도 재협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대선후보들의 한미 FTA 관련 공약은 뚜렷한 차별화를 보이지만 누가 집권하든 정치권에서 다시 한 번 재협상 문제가 ‘태풍의 핵’으로 부상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

○ 후보 공약들 중 가장 선명한 차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달 4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재협상 자체를 안 된다고 한 적은 없다. 국회에서 촉구 결의안까지 냈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생각한다”며 “필요하다면 미국과 재협상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국회도 결의한 한미 FTA 재협상을 (박 후보는) 반대하는 것 같다”고 공격한 데 대한 대답이었다. 박 후보의 발언은 “재협상은 안 되지만 농업 등 피해 산업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기존의 ‘재협상 불가’ 방침에서 재협상 가능 쪽으로 한 발 옮겨선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두 후보의 생각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박 후보의 기본적인 견해는 “발효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재협상을 주장할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FTA로 인한 경제적 실익이 크고 앞으로의 한미 관계도 감안해야 하는 만큼 큰 문제만 없으면 먼저 나서서 재협상 요구를 하지는 않겠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이에 반해 문 후보는 “독소조항이 있는 만큼 반드시 미국에 재협상 요구를 해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강경한 주장을 펴고 있다.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인 ISD에 대해 박 후보가 “문제가 있다면 조항을 일부 고칠 수 있다”는 태도인 반면에 문 후보는 “ISD 조항을 협정문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아예 한미 FTA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ISD는 특정국 정부가 해외 투자자에게 부당하게 손실을 끼쳤을 때 투자자가 국제기구에 해당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최근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지만 이것은 한미 FTA가 아닌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BIT)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야권은 한미 FTA에도 ISD 조항이 삽입됐기 때문에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 후보가 집권하면 FTA 협정문 자체를 수정하지는 않고, ISD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보완책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의 생각과 유사한 내용이다. 이에 비해 문 후보의 공약대로 ISD 조항을 없애려면 정식으로 미국과의 재협상 절차를 밟아야 한다.
朴-文 누가 집권하든 재협상 문제 ‘태풍의 핵’ ▼

○ 정부 “ISD 보완은 가능”


이미 한미 양국은 FTA 이행을 위해 설치된 서비스투자위원회에서 ISD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올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 열린 서비스투자위원회에서 한국은 “ISD 관련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의견 수렴과 검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미국 측에 알렸다. 이에 미국은 한국이 협의를 요청하면 즉시 응하겠다고 답했다.

외교통상부는 올해 3월부터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의견 수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당국자는 “국회와 대외경제장관회의 보고 절차를 거친 뒤 새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2월 이후 미국과 1차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의 협상이 열리면 정부는 올 4월 미국 행정부가 발표한 양자투자협정(BIT) 모델을 근거로 ISD 개정을 요구하겠다는 전략이다. 당시 미국은 향후 다른 나라와 체결할 각종 협정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단심(單審)제인 ISD에 항소 절차를 추가하고 양국 간 협의회를 주기적으로 열도록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통상교섭본부는 이 모델이 미국 스스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한미 FTA와 관련해 한국이 비슷한 요구를 해도 미국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예단할 순 없지만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소한의 절차적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항소 절차 외에도 ISD를 내기 전에 ‘국내 소송’을 먼저 거치도록 하면 우리의 사법주권을 보호하면서 국제중재 판정의 오류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미 행정부도 자신들이 맺은 투자협정이 완벽하지 않다고 보고 계속 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논리적인 주장을 펼친다면 미국이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관련 조항 폐기 여부는 미지수

야권은 현 정부의 대응에 만족하지 않고 전면 재협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이 이미 두 차례 재협상을 요구했고 한국이 이를 받아들여 협정문을 개정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미국도 한국의 재협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면 재협상은 쉽지 않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우선 미국이 순순히 동의해주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협상테이블에 앉을 순 있겠지만 하나를 얻어내려면 다른 하나를 내줘야 하는데 우리로선 줄 게 마땅치 않아 재협상의 실익이 없을 것”이라며 “이보다는 양국 모두 FTA로 피해를 보는 산업계의 불만이 높은 만큼 개방수준을 낮추는 등 다른 방향으로 재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절차적인 문제도 따른다. ISD 조항 폐기는 미 행정부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협정 발효 때와 마찬가지로 미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 설령 양국 정부가 ISD 폐기에 합의한다고 해도 미국 정치권의 상황에 따라 비준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문 후보의 공약은 실현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이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미국이 반대급부로 또다시 쇠고기 수입 개방수준을 높이라는 등의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은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는 “한국과 FTA를 맺은 국가 중 재협상을 먼저 요청해온 국가는 미국밖에 없을 정도로 한미 FTA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체결된 협상”이라며 “합의를 무시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면 국제신뢰도 하락으로 대외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협상을 주장하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국제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재협상과 신뢰도 하락은 관계가 없다”며 “한미 FTA에 포함된 ISD는 다른 나라와 체결한 것보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독소 조항이라 절차에 따라 재협상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박근혜#문재인#경제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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