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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거북선 420년만에 다시 햇빛볼까

입력 2012-04-13 03:00업데이트 2012-04-13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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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20년이 되는 올해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을 찾는 사업이 다시 시작된다. 탐사기법에 관한 연구부터 시작해 발굴할 지점을 특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동아일보DB
이원식 원인고대선박연구소장이 복원한 1592년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 조감도. 좌우의 대포 구멍이 6개인 것이 대표적 특징이다. 이원식 소장 제공
‘식사를 하고 귀선(龜船·거북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지자포와 현자포를 쏘아 보았다.’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12일. 부산 앞바다에 일본배가 나타나기 바로 전날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임진왜란을 예견이라도 한 듯 조금씩 완성해 가던 거북선을 전쟁 발발 직전에 완성했던 것이다.

세계 해전사에서 근대 장갑선의 시초로 평가받는 ‘이순신의 창제귀선(創製龜船)’을 찾는 사업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일곱 갑자(420년)가 지난 올해 재개된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거북선을 찾기에 앞서 탐사기법부터 연구 개발하기로 하고 올해 한국해양연구원과 ‘탐사장비를 활용한 수중문화재 조사 기법 개발 연구’에 착수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대대적인 거북선 찾기 작업은 1970∼2000년대 초반 해군이 간헐적으로 해온 사업과 2008∼2009년 경남도가 추진한 것에 이어 세 번째다. 성 소장은 “기존의 거북선 찾기는 거북선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큰 남해의 칠천량해전지를 훑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연구소는 탐사 기법부터 새로 개발해 장기계획을 세워 퍼즐을 풀 듯 찾아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12월∼올해 초 경남 남해의 칠천량해전지를 찾아 기초적인 수중탐사활동을 벌였다. 신종국 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칠천도 일대 해역엔 두껍고 무른 개흙(뻘)층이 형성돼 있어 임진왜란 당시 흔적을 찾으려면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수중 토층 조사를 먼저 실시해야 하는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곳의 개흙은 매년 0.65∼1.3cm씩 쌓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거북선이 있다면 개흙 속 깊숙이 묻혀 있을 개연성이 크다.

연구소는 고정밀지층탐사기(SES) 장비를 활용한 탐사기법의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고려와 원나라 연합군의 일본 원정 때인 1281년 침몰한 배를 이 장비로 찾아낸 바 있다.

문환석 연구소 수중발굴과장은 “고려청자 등 많은 유물과 함께 발굴된 서해안의 배들은 우연히 어부의 그물에 유물이 걸려나오면서 지점이 특정된 것들”이라며 “위치를 특정하는 탐사기법은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거북선은 대부분이 목재다. 철이 아닌 목재 성분이 개흙 속에 묻혀 있을 때, 그 깊이에 따라 탐사장비의 신호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하는지가 연구 대상이다.

40년 넘게 거북선을 찾지 못했다면 거북선이 사라지고 없는 것은 아닐까. 문 과장은 “서해안에서 발굴된 배들은 조선보다 더 오래된 고려 때의 배들이고, 거북선보다 크기가 작은 상선인데도 형체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거북선 발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3∼5척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출전에서 승리하는 바람에 침몰될 일이 없었다는 점은 거북선을 찾는 데 불리한 조건이다. 1597년 7월 조선군이 대패한 칠천량해전이 거북선을 찾는 측에는 ‘희망’이다.

거북선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거북선의 잔해임을 알 수 있을까. 2007년 이순신이 만든 거북선의 수치를 추정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원식 원인고대선박연구소장(78)은 “거북선에만 있었던 용머리, 칼송곳이 꽂혀 있던 거북잔등판이 발견된다면 바로 거북선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거북선에 실렸던 대포(천·지·현·황포)도 거북선의 유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소장은 “일반인들이 오늘날 흔히 보는 거북선 모습은 1592년 이순신의 거북선이 아니라 1795년 규장각이 발행한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후대의 거북선”이라며 “이순신의 거북선은 좌우에 대포구멍이 각각 6개로 1795년의 10개보다 적었고, 배의 길이와 폭도 30%가량 짧았다”고 설명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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