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최면, 마취제 맞았다고 상상한지 5분… 손가락 감각이 무뎌져왔다

  • Array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최면, 직접 체험해보니

최면은 마법이 아니다. 과학이다.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법 최면에도 과학적인 방법이 많이 적용되고 있다. 법 최면에선 목격자, 피해자의 뇌파는 물론이고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몸에서 나오는 열까지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최면은 마법이 아니다. 과학이다.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법 최면에도 과학적인 방법이 많이 적용되고 있다. 법 최면에선 목격자, 피해자의 뇌파는 물론이고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몸에서 나오는 열까지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오른손 위에 햇볕이 내리쬐는 상상을 하면서 손등에 따뜻한 감각을 느껴보세요. 태양은 더욱 뜨거워지고 열은 피부 속까지 파고들어 손이 뜨거워집니다…. 손등이 뜨거워진다. 점점 더 뜨거워진다.”

귓가에 주문처럼 울리는 소리. 그렇다고 잠이 든 건 아니다. 의식은 또렷했다. 다만 세포 하나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온 신경이 손끝에 집중됐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터진 가는 신음 소리. “앗!” 손등이 화끈거려 손을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 마치 사막 어딘가에 있는 듯 몸이 화끈거리고, 손등이 얼얼했다. 긴장감에 몸이 살짝 달아올랐을 때쯤 다시금 차분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오른손의 열감이 사라집니다.” 그 말이 끝나고 2초쯤 지났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 손등의 얼얼한 느낌이 없어졌다.

○ 혹시 조종당한다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법 최면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실제 그 성과를 확인하고도 ‘이게 진짜 가능할까’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심리학을 바탕에 깔고 있는 최면을 과학수사에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 기자가 직접 최면을 당하고, 느껴보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건 현장에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차량 번호판을 떠올린다거나, 범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등의 체험은 불가능할 터. 그래서 간단한 ‘최면 반응성 검사’(개인이 최면 유도에 반응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검사)만 해보기로 했다.

체험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내 범죄분석실에서 이뤄졌다. 검사에 앞서 우선 간단한 면담을 했다. 함근수 범죄분석실장이 현재 기분이 어떤지 등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러한 사전 면담을 통해 피최면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그들의 언어 패턴을 분석함은 물론, 긴장까지 풀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살짝 겁이 났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최면을 통해 사람을 인형처럼 조종하고, 또 전생까지 들여다보던데….’ 걱정이 표정에 드러났던 것일까. 함 실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면 상태는 무의식 상태가 아니에요. 가끔 공부에 집중하면 누가 옆에서 부르는 것도 못 들을 때가 있죠? 주의가 한곳에 집중되면 ‘중심 인식’이 부각되면서 기억력이 놀랍게 좋아지는데 최면은 일상적인 자극들을 차단함으로써 의식의 집중 상태를 만들어 주는 과정입니다.”

○ 최면유도-심화-회상단계로 진행

이제 최면실로 이동해 본격적인 최면 체험을 시작했다. 실내온도를 25도 정도로 맞춘 최면실은 아늑했다. 팔걸이가 있는 푹신푹신한 최면의자에 앉자 함 실장이 “눈을 감고 편하게 숨을 쉬라”고 했다. 눈을 감는 이유는 간단했다. 눈을 뜨면 대뇌에 청각은 물론이고 시각적인 자극까지 들어와 집중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통상 법 최면을 할 때는 목격한 내용을 회상하기에 앞서 ‘최면유도 단계’와 ‘최면심화 단계’를 거친다. 최면유도 단계에선 ‘눈 감기’와 ‘숨소리에 집중하기’ 등을 통해 최면에 몰입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한다. 최면심화 단계에선 ‘숫자 세기’ ‘계단 내려가기 상상’ 등을 통해 최면 몰입을 완성한다. 하지만 최면 반응성 검사에선 이 두 단계를 배제한다. 아무런 사전 작업을 하지 않아야 순수한 상태에서 최면에 반응하는 정도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머리에 뇌파측정기를 쓰고 몸에서 나오는 열을 감지하는 열화상 카메라까지 설치한 뒤 첫 번째 ‘팔 무거워지기’ 최면에 들어갔다. 함 실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왼팔을 뻗어 어깨 높이로 드십시오…. 무거운 사전을 손에 얹어놓았다고 생각하십시오…. 더 무거워지고 매우 무거워지고 점점 더 무거워지고….” 집중이 덜 됐을까, 아니면 최면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약간 어깨가 묵직할 뿐 손에 사전 한 권을 든 것 같은, 무겁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두 번째 ‘손 떠오르기’ 최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찬 물줄기가 손바닥을 밀어 올린다고 상상하는 최면이었지만 역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손가락 마취’ 최면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새끼손가락에 국소마취제가 주사됐다고 상상한 지 5분쯤 지나자 욱신거리는 느낌이 왔다. 그러더니 이내 내 손가락이 아닌 듯 감각이 무뎌졌다. 얼떨떨한 마음에 다른 손가락으로 쿡쿡 눌러봐도 확실히 통증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다음 ‘맛 환각’ 최면에서도 반응이 왔다. 오렌지의 맛과 향을 상상하다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침을 꿀꺽 삼켰다.

검사의 마무리 부분인 9단계(기사 첫 부분의 ‘온도 환각’ 최면은 7단계)는 앞서 최면보다 좀 더 심화한 단계인 ‘연령 퇴행’ 체면. “시간이 역행하여 초등학교 때로 되돌아갑니다. 당신의 몸이 작아지고 또 작아집니다. 교실 바닥이 느껴집니다. 책상의 감촉이 느껴집니다.” 최면이 진행될수록 초등학교 교실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녹색 책상과 칠판 앞 교탁, 담임선생님 얼굴 등이 손에 잡힐 듯 떠올랐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1초, 1초의 순간 사이에도 간격이 있고, 그 간격 사이에는 1초보다 작은 아주 많은 시간이 존재하고… 매 순간을 고무줄처럼 늘이고 더 늘이면 시간이 천천히 흐릅니다.”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나는 마치 느리게 재생되는 영화를 보듯 어린 시절 내 모습과 친구들, 교실 풍경 등을 천천히 살펴봤다.

○ 과학수사의 처음과 끝

검사를 시작한 지 30분 만에 모든 검사가 끝났다. 함 실장이 주문을 외듯 말했다. “자, 이제 눈을 뜨면서 완전히 깨어납니다.” 눈을 뜨는 건 힘겨웠다. 온몸이 묵직하고 뭔지 모를 여운이 가슴 속 깊숙이 남는 기분. 함 실장은 “최면을 하고 나면 반드시 완벽한 각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최면에 걸렸을 때와 유사한 장면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최면 시 했던 행동이 불쑥 튀어나와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뒤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최면 반응성 검사 답안지를 작성했다. 점수는 40점 만점에 21점(점수가 높을수록 최면에 크게 반응한다는 의미). 일반 성인 남성의 평균 14.6점에 비해 점수가 높았다. 함 실장은 “보통 집중력이 강하거나 상상력, 감수성이 많은 사람, 최면에 호의적인 사람 등이 최면에 크게 반응한다”면서 “평소 의심이 많고 논리적이라 최면에 잘 걸리지 않는 대표적인 직업군이 검사나 경찰, 기자 등인데 신 기자님은 좀 예외적인 경우”라며 웃었다.

검사를 끝내고 나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약간이나마 최면을 맛봤지만 그 기분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웠다. 뇌 속에 꼭꼭 숨겨둔 기억을 끄집어낸다는 게 어떤 건지 어렴풋이 느낀 것이 성과라고 할까. 그러다 불현듯 실험 전 함 실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발전시키기에 따라 법 최면은 과학수사의 처음과 끝이 되기에 충분한 분야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