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봉투 속에 100만원씩 묶은 1만원권 돈다발 20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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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박희태캠프 당협에 돈 전달 지시”… 당시 구의원들 ‘錢大’ 폭로


한나라당 A 위원장이 구의원들에게 돈을 건네라고 지시한 시점은 전당대회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08년 6월 중하순 어느 날이었다. 7월 3일 열리는 전대를 불과 열흘가량 남겨둔 시점이었다. 동아일보는 당시 A 위원장에게서 돈을 받은 복수의 참석자(당시 구의원)를 설득해 당시 상황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이 전한 당시 내막은 다음과 같다.

A 위원장은 이날 오전 일찍 자기 지역구 내 한나라당 소속 구의원 5명을 서울 여의도 D빌딩 4층 박희태 후보 캠프 사무실로 소집했다. 소속 구의원들은 연락을 받은 즉시 3명과 2명으로 나뉘어 차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캠프 사무실에는 A 위원장의 자리가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구의원 5명이 A 위원장 중심으로 몇 명은 앉고 몇 명은 선 채로 지시를 받았다. A 위원장은 먼저 서울 48개 당협 명단이 적힌 문서를 꺼냈다. A 위원장은 그 명단에 동그라미를 치는 형식으로 “30개 당협에 50만 원씩 갖다 주는데, 당협 사무국장에게 줘라”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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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위원장과 참석자들은 그 자리에서 돈을 전달할 ‘조’를 짰다. A 위원장은 “조를 짜서 나눠서 가야 일이 빨리 끝난다. 가급적 빨리 갖다 줘야 한다. 돈을 갖다 주면서 ‘A 위원장이 보내서 왔다’라고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A 위원장이 친이(친이명박)계 핵심 측근이며 박 후보 캠프에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 말만으로도 받는 사람들이 다 의도를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구의원들의 추측이다.

참석자들은 별말 없이 봉투를 받아가지고 나왔다. 커다란 노란 서류봉투 안에는 현금 1만 원짜리 100장이 묶인 100만 원 다발 20개가 들어 있었다. 당시 한 참석자는 “당협위원장이 구의원의 공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 자리에서 쉽게 못하겠다고 반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박 후보 캠프 사무실에는 2, 3명의 실무진만 있었으며 A 위원장은 자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조심스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톤으로 지시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진술이다.

30개 당협 사무국장에게 50만 원씩 나눠주면 모두 1500만 원으로 500만 원이 남는다. A 위원장은 500만 원의 용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남은 돈은 심부름값으로 우리들이 나눠 쓰라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돈과 명단을 들고 2대의 차에 나눠 타고 돌아가던 중 한 참석자가 여의도 서강대교를 건널 때쯤 다른 차에 타고 있던 이에게 “도저히 못할 것 같다”고 전화를 걸었다. 이에 5명은 구의회 사무실로 모였다.

갑론을박 끝에 ‘이 돈을 전달하지 않으면 A 위원장이 다 확인할 테고, 전달을 하면 30군데 중 한두 군데만 터져도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니 이건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한 참석자는 “친한 당협 사무국장이라면 그나마 ‘술값이나 하라’고 주겠지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무국장에게 전화해 돈을 건넬 생각을 하니 막막하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은 못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결국 이들 가운데 2명이 이날 오후 돈을 들고 여의도 박 후보 캠프 사무실로 갔고, 이 중 한 명이 올라가 A 위원장에게 돈을 돌려줬다. A 위원장은 돈을 돌려주러 온 구의원에게 “이리 달라”고 성질을 내며 돈을 받아갔다고 한다.

동아일보의 취재에 응한 이들은 이 문제로 본인이 피해를 볼 것을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실제로 2010년 지방선거 때 5명 중 4명이 구의원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A 위원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데 대한 보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구의원들은 2008년 당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뭔가 문제가 될 소지는 있지만 당내 선거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 선거법을 비롯한 현행법 위반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한 구의원은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도 우리가 당시 중앙당에 제소를 했더라도 중앙당이 무슨 조치를 취했겠느냐”며 “우리나라 정당의 당내 돈 선거 문화, 당협위원장과 기초의원들 간의 수직적 문화 등이 합쳐져 발생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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