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일부 군의관 “미쳤냐, 이걸 아프다고 왔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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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육참총장 “꾀병도 성의있게 진료… 마음까지 치료하겠다” 했지만…
부실 軍의료체계 개선 말뿐… 육군 훈련병 불만 여전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대상포진에 땀띠약 처방, 군의관의 무시와 면박, 터무니없이 짧은 진료시간….

군 당국이 올해 5월 부실한 군 의료체계를 대수술하겠다고 발표한 뒤에도 육군훈련소 훈련병들은 여전히 열악한 의료실태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잇단 인명 피해를 초래한 군 의료사고 이후 김상기 육군참모총장은 “꾀병도 병이라는 생각으로 성의 있고 친절한 진료로 환자의 질병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빈말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 5월 13일자 A1면 [구멍난 軍의료]부모 가슴에 못 박는…
▶본보 5월 13일자 A3면 [구멍난 軍의료]軍 의료시스템 난맥
▶본보 5월 13일자 A3면 [구멍난 軍의료]체중 40kg 줄었는데…
▶본보 5월 13일자 A3면 [구멍난 軍의료]軍 의료사고 과거 사례
▶본보 5월 24일자 A10면 軍의료체계 10월까지 대수술한다

이 같은 사실은 육군본부가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영선 의원(미래희망연대)에게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6, 7월 육군훈련소 훈련병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충남 논산의 육군훈련소가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훈련병 49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훈련병 642명(12.9%)이 훈련소 내 의료지원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많은 훈련병이 턱없이 짧은 진료시간과 의료진 및 장비 부족 등 군 의료실태의 낙후성을 지적했다. 일부 훈련병은 오진으로 증세가 악화되거나 군의관으로부터 무시나 면박을 당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조사 결과에는 훈련병들이 군 의무시설을 이용하면서 겪은 불편사항이나 의료진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생생한 증언도 담겨있다. 일부 훈련병은 진료를 기다리다가 군의관으로부터 “내가 왜 너희들을 진료해야 하느냐” “아프지도 않으면서 왜 왔느냐” “쉬고 올 테니 기다려라”는 말을 듣거나 “미쳤냐. 이거 아프다고 온 거냐”며 면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 대상포진에 땀띠약 처방 ▼

또 일부 군의관은 진료 도중에 “진짜 하기 싫다” “××, ×나 짜증 나네”라고 말하는 등 불성실한 진료 태도를 보였고, 군의관이 임의로 진료 인원을 제한하는 바람에 기다리다가 헛걸음을 한 적도 있다는 훈련병의 증언도 있었다.

조사 결과에는 군 의료진의 오진 피해 사례도 포함돼 있다. 한 훈련병은 “땀띠 증세로 보이는 피부질환 때문에 의무실을 찾았더니 의료진이 대충 보고 땀띠약을 처방해 줘 피부에 발랐다”며 “그 후로 증상이 더 심해져 국군지구병원에 가서 대상포진(바이러스로 인한 수포성 피부질환)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많은 훈련병은 군 의무대에서 진료 대기시간이 너무 긴 반면 진료시간은 너무 짧고, 약품 부족으로 처방대로 약을 제공받지 못하는가 하면 군 의료진이 대부분 약만 처방하고 말아 제대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후진적인 군 의료체계의 개선을 위해 훈련병들은 군 의료진이 증상에 맞는 약을 제대로 처방하고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는 한편 군 의료진과 시설을 보강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훈련병들이 갖고 온 일반 의약품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건의했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 결과 훈련소 내에 구타나 가혹행위 등 병영폭력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6, 7월 육군훈련소 7개 연대 가운데 2개 연대에서 구타·가혹행위는 9건, 폭언과 욕설 25건, 인격모독 12건 등 모두 46건의 병영폭력이 적발됐다.

송 의원은 “지난달 자살예방연구소와 공동으로 육군훈련소 입대 장병의 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0% 이상이 군 의료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했고, 70% 이상이 군대 내 구타 폭행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며 “이런 우려와 걱정들이 훈련소에서 그대로 드러난 만큼 군 당국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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