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강풀 원작 영화 ‘통증’ 필망(必亡) 공식 깨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8일 10시 00분


● 권상우의 재발견, 구수한 연기로 마음 울리다
● "사랑만이 모든 것을 바꾼다"
● 곽경택 감독, 서울을 서울이 아닌 곳으로 만들다

혈우병에 걸린 정려원과 권상우는 슬픈 사랑을 이어간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권상우는 정려원을 만난후 “나 죽기 싫다”고 말한다. 정려원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말한다.
혈우병에 걸린 정려원과 권상우는 슬픈 사랑을 이어간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권상우는 정려원을 만난후 “나 죽기 싫다”고 말한다. 정려원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말한다.

《"돈내놔 이 X년아"

건달은 무심한 얼굴로 자신의 손으로 벽으로 내리 찍으면서 윽박지른다. 상대방이 사채 빚을 갚지 않자 자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서워서 돈을 내 놓곤 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의 얼굴은 성할 날이 없다. 그는 매를 맞고 돈을 받는다. 여자는 그런 남자가 못마땅할 뿐이다. "그 얼굴로 왜 이렇게 살아, 제비를 해도 먹고 살 수 있겠다. 하늘에 계신 네 부모님은 지금 울고 계실 거야." 》

곽경택 감독의 10번째 영화 '통증'은 따뜻하게 슬펐다. 어린아이들이 서로를 좋아하기 시작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면 귀엽고, 또 마음이 흐뭇해지기 마련이다. 영화 '통증'의 두 남녀주연 권상우, 정려원은 이런 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리고 울게 했다.

주인공 남순(권상우)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그 충격으로 온 몸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는 아픔뿐 아니라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음식의 맛도 느끼지 못한다. 그가 사랑하는 동현(정려원)은 상처가 나면 치명적인 혈우병을 앓고 있다. 그도 일찍 가족을 잃고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상을 하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남순과 달리 동현은 마음이 여려 눈물을 많이 흘린다. 그런 남순은 사랑을 알려준 동현을 위해 기도한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내가, 이상하게 동현이 울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녀가 울지 않게 해 주세요." 이렇게 그들은 서로의 빈 곳을 채워가며 사랑을 키워 간다.

▶ 강풀 만화 징크스…영화 '통증'이 깰 수 있을까?

'통증'의 8일 오전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 예매순위는 4위다. 1위는 4주간 선두를 달리던 '최종병기 활'을 내려 앉히고 올라간 '가문의 영광 4:가문의 수난'이다. 3위는 짐캐리 주연의 '파퍼 씨네 펭귄들'이다. '통증'보다 예매성적은 좋지 않지만, 차태현 주연의 '챔프',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푸른소금'등이 10위 권 안에 들었다.

당초 '통증'이 강풀 작가의 만화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걱정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과거 강풀 작가의 웹툰이 영화화 된 적은 많으나 흥행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우 고소영 출영의 미스테리 호러물 '아파트'와 차태현과 하지원 주연의 멜로 영화 '바보', 유지태 이연희 주연의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모두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아파트'는 64만, '바보'는 97만, '순정만화'는 73만 관객을 동원하며 100만을 넘기지 못했다.

강풀 작가의 웹툰은 소소한 감동과 공감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수수한 캐릭터와 그만의 흡입력으로 많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강풀 작가만의 소소한 감동은 점점 화려하고 스케일이 커지는 영화판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통증'은 강풀의 만화의 영화화에 다시 도전했다. 주인공 설정을 강풀 작가가 했기에 원작과의 교감이 크다. 시나리오는 여성 작가인 한수련 작가가 맡았다.

곽경택 감독은 "영화 '통증'은 작가의 시나리오를 재해석해 만든 유일한 작품이다. 솔직히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원작자의 느낌을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 '통증'은 만화가 강풀의 웹툰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배우 권상우와 정려원이 만나 그들만의 색채로 구수하게 영화를 만들어 냈다.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다소 길게 늘어지는 듯한 감이 있었지만 슬프고 따뜻한 느낌을 전체적으로 잘 표현해 냈다.

▶ "사랑만이 모든 것을 바꾼다"

"가슴이 너무 답답한데 눈물이 안날 때는 이렇게 주먹을 쥔 손을 벽에 대고, 긁으면서 길을 걸었어. 그럴 때면 누군가가 내게 '너 왜 그래?'라고 말해 주길 바랬어." (남순)

확실히 이번 영화 '통증'은 곽경택 감독의 이전 작품 '친구', '태풍',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랑' 등과 달리 부드러웠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내용도 남자들 간의 의리나 야망 등이 아닌 사랑이었다. 곽경택 감독이 영화 속에 풀어낸 사랑은 참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곽경택 감독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 촬영현장 공개 뒤풀이 모임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이라는 감정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40대 중반이 되니 사랑이 인생에서 중요한 감정이 됐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에는 곽경택 감독이 말하는 사랑의 중요성이 잘 녹아있었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도 "사랑만이 모든 것을 바꾼다"고 말했다. 사랑이 남순(권상우)의 인생을 바꿨고, 남순의 눈을 뜨게 했다.

우리 사회의 약자이고, 또 본인은 외로움을 느낄 수 없지만 너무 외로워 보이는 남순이기 때문에 그가 마음을 바꿔 "이제 맞기 싫다"고 말한 순간 작은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이 잘 지켜지길 바랄 뿐이었다.

권상우는 정려원에게“말라깽이는 관심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둘은 사랑에 빠지고 정려원이“나 말라깽이야?”라고 물어보자 권상우는 “아니 살 많아”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권상우는 정려원에게“말라깽이는 관심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둘은 사랑에 빠지고 정려원이“나 말라깽이야?”라고 물어보자 권상우는 “아니 살 많아”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 영화 '통증'은 권상우-정려원 이어야 했다

곽경택 감독은 7월 21일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권상우가 이번 영화의 남순 역에 잘 어울린다. 이렇게 잘 맞는 배우는 권상우 밖에 없다"라고 극찬했다.

권상우는 영화에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덤덤한 남순을 잘 소화해 냈다. 무덤덤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는 부모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이 배어있었다. 그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그를 보는 이들은 그의 눈에서 아픔을 읽었다.

또 남순에게서 시골청년의 구수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허름한 의상과 꾀죄죄한 얼굴의 권상우는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서 점순이에게 당하기만 하는 순박한 주인공 '나'를 연상케 했다. 얼굴도 반반하고 몸도 건장한 권상우가 아이 같은 행동을 보일 때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정려원도 동현 역을 잘 소화해 냈다. 정려원의 마른 체형은 혈우병에 걸린 동현을 연기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도 남순과 마찬가지로 부모를 잃었으나 강한 정신력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며 남순에게 사랑을 알려주는 모습에서 듬직함이 느껴지도 했다.

▶ 곽경택 감독, 서울을 그의 색으로 물들이다

곽경택 감독의 눈에 비치는 서울은 참 구수한 모습이었나 보다.

곽경택 감독은 서울거리를 그만의 색으로 물들였다. 주로 지방에서 촬영을 해왔던 곽경택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서울을 배경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 속에 평소 자주 가는 홍대 거리가 등장했는데도 실제로 봤던 거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곽경택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로맨스의 섬세함과 촬영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필름카메라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곽 감독은 영화의 한 장면 장면들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촬영 현장 공개 뒤풀이 모임에서 자신의 아이패드로 정려원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이 장면 너무 예쁘죠?"라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확실히 영화의 장면들은 남순과 동현의 사랑만큼 아름다웠다.

동아닷컴 홍수민 기자 sum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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