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활시위를 당겨 스릴을 쏜다… 쾌감 활 액션 ‘최종병기 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2일 10시 13분


영화는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여동생과 단 둘이 남겨진 남이(박해일)의 귀신같은 활솜씨가 주 재료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여동생과 단 둘이 남겨진 남이(박해일)의 귀신같은 활솜씨가 주 재료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때는 1636년 12월 8일. 평화로이 혼례를 올리던 한 마을, 혼례상에 올려진 물 잔의 수면에 파동이 인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거친 말발굽 소리. 사방에 먼지가 일고 이내 마을 아낙들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린다. 온몸에 갑옷을 두른 청나라 군대의 칼부림에 딸은 영문도 모른 채 피 흘리는 아비의 죽음을 바라본다. 어떤 이는 산채로 머리채가 잡혀, 혹은 내던져진 밧줄에 목이 매달려 달리는 말에 질질 끌려간다.》

50만 조선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간 병자호란의 현장. 영화 '최종병기 활'은 이 가슴 아픈 역사의 순간 속으로 들어간다.

주인공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누이 자인(문채원)과 단 둘이 남겨진 남이(박해일)다.

역적의 후손인지라 청운의 뜻조차 품을 수 없었던 남이는 그저 기약 없이 궁술만 연습한다. 자인은 오라비처럼은 살지 않겠다며 혼인을 결심하나, 혼례 날 느닷없이 병자호란이 발발한 것. 자인과 신랑 서군(김무열)이 청나라 정예부대에 포로로 잡혀가고 이에 남이는 아버지가 남겨준 활을 쥐고 자인을 구하기 위해 청군의 심장부로 향한다.

남이의 귀신같은 활솜씨는 영화의 주 재료다. 주인공이 있으면, 그를 알아보는 적장도 있는 법. 남이의 신묘한 활솜씨를 알아챈 청의 명장 쥬신타(류승룡)는 청나라 왕자 도르곤과 부하들을 지키려 남이의 앞을 막아서고 두 사람 간에 주거니 받거니 활 액션이 펼쳐진다.

영화에서 활은 무기 활을 말하기도 하지만 살 활자를 뜻하기도 한다. 남이는 자인을, 쥬신타는 왕자와 부하들을, 각기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펼치는 진정한 활(活) 전쟁이 펼쳐진다.

▶ 활시위는 당겨지고 긴장감은 팽팽하게… 새로운 쾌감의 활 액션

영화 속 활 액션은 거칠면서도 부드럽다.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감, 과녁을 노리는 배우들의 숨 쉴 수 없는 눈빛, 활이 당겨지고 꽂힐 때 나는 묘한 쾌감의 소리는 영화의 스릴을 리듬감 있게 조절해나간다.

액션 영화 장르에서 이제껏 한번도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않은 활이라는 소재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충분한 재미를 이끌어낸다.

활만 가지고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는 김한민 감독의 바람은 영화를 보는 내내 부족함 없이 구현됐다. 감독은 조선 역사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설정했다. 소재를 위한 배경과 내용이 선택되어지고, 그렇게 활을 위한, 활에 의한 영화가 탄생하게 된 것.

청의 명장 쥬신타를 연기한 류승룡(가운데)은 활을 쏘며 에너지가 가득 담긴 눈빛을 표현한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청의 명장 쥬신타를 연기한 류승룡(가운데)은 활을 쏘며 에너지가 가득 담긴 눈빛을 표현한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실제로도 활을 잘 담아내기 위해 총 제작비 90억원이 투입됐다. 국내 최초로 도입됐다는 '팬텀 플렉스'는 초당 최대 2800프레임까지 촬영 가능한 고속 카메라로, 눈 깜짝할 새 날아가는 화살의 떨림과 꺾임, 활시위가 끊어지는 장면까지 세밀하게 담아낸다. 또한 두개의 프로펠러로 작동되는 '프로펠러 와이어 캠'은 무선 컨트롤러를 이용해 카메라가 움직이는 속도를 높여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을 포착했다. 이외에도 특수효과팀이 고안한 '와이어 하우징'으로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는 등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활 액션을 최대한으로 묘사했다.

이밖에도 활에 대한 영화임을 강조하는 듯 극중에서 주인공들은 활에 대한 소개를 대사로 전달하기도 한다. 주인공 남이가 적에게 쫓기는 급한 상황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한 활은 보통 화살의 3분의 1 크기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애깃살이라는 화살이다. 작지만 속도와 힘, 사거리를 동시에 갖춘 강력한 병기다. 남이의 적인 쥬신타의 육량시라는 화살은 일반 화살촉이 10~11g 정도인 것에 비해 화살촉의 무게가 240g에 달하는 육중한 무게의 화살이다. 실제로 적의 방패를 부수기 위한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고. 이렇게 영화에서는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활들이 소개되고, 그들의 다이내믹한 액션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활 액션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영화의 시작부터 비범한 기술로 쾌감을 안겨준 신궁 남이의 곡사 기술이다. 날아가는 활을 휘도록 조절해 장애물을 뒤의 목표물을 맞힐 수 있는 이 곡사 기술로 남이는 산 속 나무와 돌 등에 숨어 적을 향해 예측 불가능한 공격을 펼친다.

다양한 활의 종류와 기술들, 첨단 장비로 세밀하게 묘사된 활 액션은 분명 그동안의 액션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쾌감을 전달한다. 등장인물들보다, 스토리보다 더욱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영화 속 활들은 '최종병기 활'의 가장 빛나는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 이제는 사어(死語)가 돼 버린 만주어(滿洲語)까지…한계는 없다

영화 속 활 액션에는 첨단 장비뿐 아니라 배우들의 능숙한 궁술이 잘 녹아있다. 요령이 없으면 역도 선수도 활시위를 당길 수 없다는 국궁에 익숙해지기 위해 배우들은 합숙 훈련을 감행하며 궁술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박해일은 자연스럽게 활시위를 당기면서도 타들어 갈 듯한 박해일 만의 눈빛 연기를 선보인다. 또한 청군을 연기한 배우들은 말을 타면서도 능수능란하게 활을 쏜다. 4개월간 궁술과 함께 승마 훈련을 강행한 결과라고.

또 영화를 보는 동안 시원하게 들리는 활 소리와 더불어 관객의 귀를 신선하게 자극하는 것이 있다. 바로 청나라 만주족이 쓰던 만주어다. 감독은 시대적 배경을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만주어를 도입했다.

만주어는 중국 현지에도 10여 명만이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진 사어로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언어다. 청나라 군대와 남이, 자인이 또박또박 구사하는 만주어는 신선한 억양과 발음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류승룡은 '만주어는 발음이 남자답고 북방의 기질이 담겨 있어 매력적인 언어'라고 말했다.

만주어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고,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해 영화 안에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만주어를 듣고 새로운 궁술들을 접하는 등 영화 안의 새로운 도전은 관객들과 영화계에 새로운 자극들을 창출해낸다.

남이는 혼례식 도중 들어닥친 청군에게 포로고 잡힌 여동생 자인(문채원)을 구하고자  몸을 던진다. 남이는 자인을, 쥬신타는 왕자와 부하들을, 각기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펼치는 진정한 활(活) 전쟁이 펼쳐진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남이는 혼례식 도중 들어닥친 청군에게 포로고 잡힌 여동생 자인(문채원)을 구하고자 몸을 던진다. 남이는 자인을, 쥬신타는 왕자와 부하들을, 각기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펼치는 진정한 활(活) 전쟁이 펼쳐진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활과 눈빛으로는 다 채울 수 없었던 스토리 한계의 아쉬움

'최종병기 활' 속 배우들의 눈빛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박해일과 류승룡은 활을 쏘며 에너지가 가득 담긴 눈빛을 표현한다. 문채원 역시 현재 드라마상의 연기력 논란이 무색할 정도로 감정이 잘 조절된 성숙한 연기를 펼친다. 그밖에도 뮤지컬에서 연기를 갈고 닦은 김무열, 감초 연기의 달인 이한위, '추노'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박기웅 등이 가세해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활 액션과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는 만큼 아쉬움이 커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구체적인 스토리라인의 부재다.

스토리로 승부수를 띄운 영화가 아니더라도 '병자호란'이라는 배경, '역적의 아들'이라는 인물의 설정은 극 중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김한민 감독은 '활이라는 아이콘이 가슴 아픈 역사 속 수난인 병자호란과 어우러지면 멋진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지만 시사회를 본 관객들은 '병자호란이라는 큰 역사를 끌어와 단순히 서사의 배경으로만 활용해 아쉽다'는 평들을 제기했다.

남이는 나라의 억울함을 위한, 백성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 아닌 철저히 누이 자인을 구하기 위한 싸움을 한다. 스케일로 보거나 스토리상으로는 전쟁 영화라기보다 가족영화에 가깝다. 또 역적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남이가 무기력한 인물이었다가 눈빛이 변한다는 점 외에 스토리의 진행에 아무런 영항을 주지 못한다.

작은 스케일이나 추상적 역사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누이에 대한 남이 애정을 집중해 애틋하게 잘 그려냈더라면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자인이 청군에 잡혀가기 전까지 남이와 자인 남매 사이에는 그렇다할 감정의 끈이 마련되지 않는다. 남이의 오갈 데 없이 타오르던 눈빛이 그저 자인을 찾아야한다는 명목이 생기자 이를 붙들고 맹렬히 달리는 것으로만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정도. 남이가 마당에서 활쏘기 연습을 할 때 자인이 결혼을 통보하며 '나는 오빠같이 살지는 않을 거야'라고 이야기한 것이 영화 안에서 둘이 진지하게 나눈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다.

오히려 결말에서 서로를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때 '둘 사이가 이 정도로 끈끈 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공감과 눈물을 배로 자아낼 수 있었을 텐데, 액션의 스릴 속 공허한 긴장을 꽉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인과 서군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둘의 애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례가 올려지고 두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죽음을 무릅쓰고 자인을 구하려는 서군의 맹목적인 사랑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감동을 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같은 추상적인 스토리라인은 배우들의 노련한 눈빛 연기와 화려한 액션에도 극의 감정 극대화를 이뤄내지 못한다. 결국 엔딩까지 치른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그 희생의 대가가 크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

더불어 어설픈 호랑이 CG와 무성의한 한글 자막도 영화 팬들에게 자주 지적받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건과 인물이 만들어내는 깊이 있는 드라마가 아닌 한 여름 시원한 액션을 기대한다면 '최종병기 활'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영화다.

활을 쏘기 위해 일정 거리를 두고 몸을 숨기고 찾는 숨바꼭질의 묘미, 쫓고 쫓기는 추격신에서의 시원한 스피드, 목표물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의 버팀과 떨림 등의 활 액션은 그것만으로도 볼거리를 안겨준다. 병자호란이라는 무거운 소재, 역적의 아들이라는 묵직한 배경은 잊고 편안하게 즐기자. 활이라는 신선한 소재가 구현해내는 새로운 쾌감의 액션이 펼쳐진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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