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집중분석] 영화 트루맛쇼 “나는 맛 집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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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8일 12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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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맛집에 대한 통렬한 다큐 영화의 반격
●두둑한 배짱으로 풀어낸 거대한 트릭 다큐의 진수

영화 ‘트루맛쇼’는 미디어가 어떻게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는 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트루맛쇼’는 미디어가 어떻게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는 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맛은 맛이 갔다." 영화 '트루맛쇼'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요?

'KBS VJ 특공대에 소개된 집' 'MBC 찾아라 맛있는 TV O월 O일 방영' '출발! SBS 모닝 와이드 출연'. 여러분들께서는 심심치 않게 식당에 걸린 이런 홍보 문구를 보셨을 겁니다. 아예 방송 3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식당들도 종종 있지요. ''SBS, KBS, MBC'에 모두 소개된 집!!!' 이렇게요.

이런 현수막을 보며 가끔 궁금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정말 소개가 된 걸까?' '그럼 맛이 있는 거겠지?' '어째 영 맛은 별로인데… 방송국에서 나오면 다른 음식을 주나?' '혹 내가 모르는 검은 거래가 있는 거 아냐?' 'TV에 나온 집이 왜 이렇게 많아?'

그래도 믿고 음식을 드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배신감을 느끼실 겁니다. 이 영화는 맛집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거든요. 이 영화는 거꾸로 이렇게 말합니다. 오히려 맛집으로 소개되지 않은 식당이 맛있는 집이라고요. 앞으로 성공할 식당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과히 충격적입니다. 케이블 TV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들까지 맛 집 코너를 돈 받고 판매한다는 겁니다. 2분 또는 3분 정도하는 코너 하나를 사는데 적게는 몇 백 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도 든다는 군요. 맛 집 코너에 나오기 위해 가짜 메뉴를 만드는 것도 다반사라고 합니다.

TV 맛집 프로그램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트루맛쇼'의 한 장면. 사진제공=트루맛쇼
TV 맛집 프로그램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트루맛쇼'의 한 장면. 사진제공=트루맛쇼

■ PD출신 감독이 만들어 낸 거대한 트릭, "방송사를 속여라"

이 영화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익명의 방송 작가들이나 브로커와의 인터뷰만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거짓말을 다루는 영화답게 아예 스스로 식당을 차려 봅니다. 처음엔 일반적인 분식집을 차리고 방송 프로그램을 주선해주는 브로커와 접촉을 합니다.

그런데 이 브로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평범한 메뉴로는 방송에 나가기 힘드니 프로그램 컨셉에 맞게 전문 음식점 설정을 해 달라는 주문을 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PD인 식당 주인은 개점한지 며칠 만에 식당이름을 바꾸고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메뉴도 만들어 냅니다. 바로 '죽말' 시리즈입니다.

이름의 뜻은 간단합니다. 청양고추를 잔뜩 넣고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이 '매워서 죽거나 말거나'를 줄인 것입니다. 음식 메뉴는 자극적일수록, 이전에 다루지 않은 것일수록 방송에 소개되기가 쉽다고 하는 군요. 그리고 실제 이 식당은 9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브로커의 말처럼 '어차피 맛은 알 수 없으니 보는 것이 다'인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가 됩니다. 우리의 귀에 너무도 익숙한 성우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가운데 실제 지상파 TV에서 방송이 되는 화면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이쯤 되면 음식을 먹고 오버스럽게 반응해 주는 손님들의 정체 역시 궁금해지실 겁니다. '줄 소송을 당할 각오를 하고 만들었다'고 한 김재환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이에 대한 답 역시 즉각적으로 내 놓습니다. 이 손님들 다 '가짜'라는 겁니다.

일부 손님들은 현장에서 즉석 섭외를 받습니다. 그리고 PD가 요구하는 대로 적극적인 반응을 연출해 주죠. '국물이 예술이에요' 라거나 '몸까지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를 남발하는 손님들은 마치 아기 돌사진 찍는 것처럼 자세하게 주문을 하는 PD의 연출에 따른 겁니다. 하지만 뭐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니까요.

대부분의 손님들은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모집된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섭외를 하다 보니 아예 단골이 된 끈끈한 동호회도 있습니다. 여기서 모집된 가짜 손님들은 공짜 음식이라는 대가를 제공받고 가짜 리액션이라는 용역을 제공합니다.

여러 번 해 보신 분들은 '하다 보니 방송에 대한 노하우도 생겼다'며 새로 섭외된 손님들에게 팁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이 분야에도 나름 전문가가 생긴 셈입니다.

실제 공중파 MBC의 PD였던 감독은 방송국의 고발 프로그램에 위생 불량으로 고발이 되었던 식당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례도 보여줍니다.

눈뜨고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위생상태로 고발이 되었던 돈가스 집이 몇 주 후엔 대박 돈가스 집으로 탈바꿈하고, 가짜 한우로 설렁탕을 끓이는 집이 얼마 후엔 한우 설렁탕 맛집으로 소개되는 일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맛집이 존재한다. 앞으로는 TV에 안나온 곳이 진짜 맛집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맛집이 존재한다. 앞으로는 TV에 안나온 곳이 진짜 맛집일 수도 있다.

■ 한 주간 TV에 나온 식당은 177개, 1년이면 무려 9229개

방송국에는 유독 음식프로그램에만 자체 검열이라는 것이 없던지, 제작진이 엄벙덤벙 허술하게 정보 공유를 했던지, 이것도 아니면 다 알면서도 돈을 받고 눈을 질끈 감던지 이 중 하나일겁니다.

어느 분야든 썩은 곳은 있기 마련이고 대단한 일도 아닌데 너무 수선 떠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지실 겁니다. 2010년 3월 셋째 주 지상파 TV 에 나온 식당은 177개, 1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9229개라고 합니다. 이 중 협찬의 탈을 쓴 사실상의 뇌물을 주고 TV 에 출연한 식당은 몇 개나 될까요?

그만큼 우리는 맛집 프로그램에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알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겁니다. TV 에 소개된 것을 그대로 믿고 찾아갔다가 낭패를 당한 소비자는 물론이요, 맛 집 프로그램에 돈을 내는 식당이 많아질수록 건전한 다른 식당까지 피해를 입게 되는 악순환 구조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어 온 식당이라도 맛과는 상관없이 약간의 돈만 내고 방송에 나오면 (일시적일지언정) 매출이 확연히 올라가는 데, 이에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영화에 대해 방송사들은 (물론, 대단히, 예상한대로)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사실무근이라 발뺌하는 것은 기본이요 소수의 외주 제작사가 벌인 일 일뿐 자신들은 모른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가짜 식당을 차리고 함정을 팠다며 공격을 하더니, 급기야 MBC 는 상영금지가처분 소송까지 냈습니다.

이에 대해 김재환 감독은 오히려 방송국이 영화 홍보를 해 주었다며 두둑한 배짱을 드러냈습니다. 하긴 이 정도 배짱이 아니면 영화를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치면 실명으로 얼굴이 등장하는 연예인은 초상권을, 방송국은 프로그램 영상의 저작권을, 제작진들은 명예훼손을 들어 줄줄이 소송을 걸 여지가 다분하거든요.

영화에 등장한 한 평론가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동물을 소재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버려진 유기견의 뒤를 쫓기 위해 몇 주씩 잠복을 하는데, 우리의 먹는 것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이렇게 손쉽게 돈을 받고 맛을 팔다니… 이들에게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라고요.

물론 극심한 시청률 경쟁에 열악한 방송 환경, 자극적인 것에만 흥미를 보이는 시청자 등 함께 돌아봐야 할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정기능이 없는 저널리즘은 통제가 불가능한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 뿐 입니다.

현대 사회 최고의 권력이라는 '돈'과 '미디어'가 결합했을 때 어떤 횡포를 부리게 되는 지 이 영화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실생활 속에서 보여줍니다. 감독이 궁극적으로 칼을 겨눈 것 역시 이 거대 미디어 권력일 겁니다. 영화의 제목을 따온 '트루먼 쇼'처럼요.

■ 예술전용관 '하이퍽텍 나다'의 마지막 작품

글을 마치며 한가지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달 말이면 강북의 대표적인 예술영화전문관이었던 '하이퍼텍 나다'가 문을 닫습니다. 경영난이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트루맛쇼'도 나다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화가 될 겁니다. 이제 천편일률적인 멀티플렉스의 상영영화에 지겨움을 느낄 때면 찾아 가던 휴식 같은 장소가 또 하나 줄어들었습니다. 매년 말이면 그 해의 좋은 영화를 다시 한번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 해주던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도 안녕입니다.

우리 나라 전국에 이제 거대기업의 멀티플렉스에 맞서 살아남은 극장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또 다른 미디어 권력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정주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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