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매립 의혹 파문 이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개정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SOFA의 실제 개정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27일 “SOFA 개정 요구라는 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외면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현명하지 않지만 무조건 개정하겠다고 하는 것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① “한미동맹을 그만둔다면 몰라도…”
2001년 개정된 SOFA에 명시된 환경 규정은 미군기지에서 오염사고가 발생하면 한미가 절차를 거쳐 공동조사와 오염치유계획을 협의하도록 했다. 그러나 공동조사는 미국이 받아들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오염치유와 손해배상 절차와 의무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했다.
정부 당국자는 “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미 협의에 따라 조사와 오염치유가 가능하다”며 “여기서 관련 규정을 더 강화하면 정부가 주한미군과의 협의 없이 조사 등을 진행할 수 있게 절차를 명시하자는 것인데, 한미동맹을 그만둔다면 몰라도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② “관례화가 상세 명문화보다 더 효과”
그렇더라도 현행 규정의 모호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정부 당국자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명문화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을지, 아니면 한미 협의에 따른 관례를 쌓아가며 명시적 규정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는 게 좋을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SOFA에 규정된 ‘주한미군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 건강에 대한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 모호하다고 해서 특정 토지면적의 다이옥신, 비소 비율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 주한미군이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 정부가 제시한 위험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관례의 불문율을 쌓아가는 것이 규정을 일일이 명문화하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고 정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③ “다른 나라 SOFA와 균형도 고려해야”
정부 당국자는 “전 세계 미군 주둔지 중 환경 관련 규정은 한국에서만 현 수준으로 도입하고 있다”며 “독일 일본 이라크에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만 또다시 개정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다른 미군 주둔 국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60년대 미일 SOFA가 발효된 이후 한 차례도 개정된 적이 없어 한미 SOFA를 벤치마킹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독일도 기본적으로 미군이 비용을 부담해 환경오염을 치유하는 개념이 없다”고 말했다. 독일 내 미군기지를 반환할 때 독일 정부가 기지 가치에 해당하는 돈을 미군에 주게 돼 있고, 이 과정에서 기지 내 환경오염이 확인되면 독일 정부가 미군에게 줄 돈에서 치유 비용을 제하고 나머지를 준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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