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조벡의 할리우드 in the AD>키에라 나이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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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1일 15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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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라 나이틀리,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 4’ 고사한 진짜 이유

영국 출신 할리우드 배우 키에라 나이틀리
영국 출신 할리우드 배우 키에라 나이틀리
'3편이 끝난 지도 4년이 지난 지금, 또 캐러비안의 해적? 지난 3편으로 모든 이야기가 귀결되어 대단원의 막을 내려졌는데 또 무슨 이야기가 남은 거지?'

얼마 전 영화관련 잡지를 보던 중 올해 여름 개봉 예정인 영화 리스트에서 '캐러비안의 해적(Pirates of Caribbean) 4'를 발견하고는 가진 의문이었다.

사실 할리우드의 거대 영화사인 디즈니에서 심혈을 기울여 새로이 만든 영화이기에 기대감이 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알 수 없는 의문들이 불쑥 생겨나는 이유는, 아마도 전편과 이어지는 연결고리라고는 배우 조니 뎁이 맡았던 잭 스패로우 선장 뿐, 조니 뎁과 함께 전작들의 대성공을 이끌어 온 두 주역, 바로 윌 터너 역의 올랜도 블룸과 엘리자베스 스완 역의 키에라 나이틀리가 4편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여주며 '쿨하고 멋진 언니'로 자리매김했던 키에라 나이틀리를 더 이상 시리즈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분명 큰 아쉬움이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부터 남 다른 싹수 보인 배우


필자는 2003년 영국의 주얼리 브랜드 '애스프리' 광고 촬영 현장에서 나이틀리를 처음 만났다.
필자는 2003년 영국의 주얼리 브랜드 '애스프리' 광고 촬영 현장에서 나이틀리를 처음 만났다.
새로운 '캐러비안의 해적'의 시리즈에 출연하지 않게 된 이유가 흔하게 있는 개런티 문제이거나, 그도 아니면 배우로서의 새로운 이미지를 위한 하차쯤이 아닐까 추측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사실 하차를 생각하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패션과 관련됐다.

"머리도 짧게 밀어버리고,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촬영하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의상을 덧입히면 안 될까 매일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시대극의 의상과 분장은 준비시간도 길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거든요. 정말 상상도 못할 거예요. 특히 그 의상을 입고 현란한 액션이 계속 이어질 때는 말도 하지 마세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상대 배역인 올랜도 블룸과 함께 극의 내용 전개상 3편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서'라고 했지만, 촬영하는 몇 달 동안 매 신마다 3시간 이상 걸리는 메이크업 의상 착장, 드레스 입고 소화해야 하는 액션신도 하차 결정에 한 몫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키에라 나이틀리라는 배우에게 국제적으로 큰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이 바로 '캐러비안의 해적'의 3부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필자에게 그의 존재를 각인 시켜준 최초의 작품은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Bend it like Beckham)'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하는 18세 소녀들이 자신들에게 마주쳐진 규율과 틀에 유연히 대처하며 난관을 해결해 나가는 이 작품에서 키에라 나이틀리는 분명 감이 남다른 싹수가 보이는 배우였다.

이 영화는 감독의 호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유쾌한 스토리 전개로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박스오피스에서 2주간이나 정상에 오르는 등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를 통해 신인급 배우였던 키에라 나이틀리는 2003년도 런던 비평가 협회상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이후부터의 행보는 그야말로 성공으로의 탄탄대로로 이어지게 되는데, 특히 앞서 언급한 '캐러비안의 해적' 3부작을 비롯해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킹 아더(King Arthur)', '공작부인(The Dutchess)' 등 시대극에서 대단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저도 제가 시대극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촬영할 때 왠지 편안한 느낌도 들구요. 마치 전생의 기억이 돌아온 것처럼 말이죠. 하하하"

하지만 한국에서는 키에라 나이틀리라는 배우를 시대극에서의 활약보다는 어느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히로인으로 깊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에서 가장 친한 친구의 여자가 된 그녀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스케치북에 글로 써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아직도 많은 연인과 커플들이 모방반복하고 자신들의 스토리로 재생산해 내는 하는 이 장면의 주인공이 키에라 나이틀리다.

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니 "사실 저도 그 신을 촬영하면서 대단히 가슴 뭉클했었어요. 정말 실제로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요. 그래서 '러브 액츄얼리' 촬영 이후로 그런 가슴 뭉클한 일이 제 인생에서도 자주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직도 살고 있고요" 라며 눈망울을 반짝거렸다.

키에라 나이틀리가 2008년 캐나다의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공작부인’ 시사회 참석했다.
키에라 나이틀리가 2008년 캐나다의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공작부인’ 시사회 참석했다.

▶"당신은 나보다 사진작가에게 관심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필자가 키에라 나이틀리와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영국의 주얼리 브랜드 '애스프리(Asprey)'의 광고 캠페인 작업에서였다.

그때 필자는 전에 다니던 회사인 '배런 & 배런(Baron & Baron)'에서 인턴을 마치고 정식 직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였는데, 당시 회사의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애스프리 광고 캠페인에 어시스턴트 디렉터로 덜컥 투입이 되었다.

애스프리는 1781년에 창업한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 깊은 주얼리 브랜드지만 당시까지는 마케팅이나 광고가 전무한 편이었다.

프랑스의 까르띠에(Cartier)나, 이탈리아의 불가리(Bvlgari), 그리고 미국의 티파니(Tiffany&Co.) 등 경쟁 주얼리 브랜드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현저히 낮은 편이었고, 브랜드 이미지 또한 노점포(老店鋪)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터라 광고 캠페인은 애스프리 사활을 건 큰 프로젝트였다.

특히 그때의 광고 캠페인은 주얼리 브랜드의 최대 격전지인 뉴욕 맨해튼의 5번가 한복판, 그것도 가장 임대료가 비싸다고 알려진 '트럼프 타워(Trump Tower)'에 애스프리의 첫 미국 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과 맞춰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하면서 계획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캠페인의 메인 모델로는 그해 '캐리비안의 해적'의 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국제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영국 출신 여배우 키에라 나이틀리가 낙점되었다. 당시는 영화배우를 패션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때라 작업에 참여하는 현장의 많은 스태프들은 떠오르는 차세대 여배우와의 작업에 한껏 들떴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큰 현장은 처음이었기에 긴장을 넘어서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약간 얼어있었다. 거기다 그 캠페인 작업은 패션 사진계의 거장, 브루스 웨버(Bruce Weber)가 촬영을 맡고 있었기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실은 키에라 나이틀리라는 여배우와의 작업이라서기 보다 브루스 웨버와의 작업을 위해 이 패션 광고업계에 발을 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팬이었기에, 웨버와의 작업이은 더욱 떨리고 흥분되고 긴장됐다.

애스프리 캠페인 현장은 야외와 스튜디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필자가 참여한 현장은 스튜디오였고, 당시는 정말 일이 매우 익숙하지 않았던 때라 작업을 곁에서 많이 지켜보지는 못하고 현장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오가야 했다.

그런 필자를 불러 세운 이가 키에라 나이틀리였다. 그도 그런 현장이 아직은 그리 익숙하지만은 않았던지 물병 하나를 건네며 "물이라도 마시면서 뛰어다녀요"라고 웃어 주었다.

그 틈에 잠시 앉아 물 한 모금을 마시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영국 출신이었던 그녀에게 필자도 영국에서 몇 년 공부한 이야기를 하며 런던에서의 생활이야기를 하자 아는 사람 만난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주 짧은 시간 나눈 이야기였지만, 그 이후 필자는 키에라 나이틀리의 작은 친절에 감사하며 열렬한 팬이 되었다.

이후 한번의 화보 작업으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가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필자를 소개하며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현장에 있던 사람 거의 다가 여배우의 광고 촬영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 사람만 온통 관심이 사진 찍는 브루스 웨버 씨에게 쏠려 있었거든요. 제!가! 아!니!라! 하하하"

실은 거짓말이 아니었기에 필자도 겸연쩍었지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샤넬은 젊고 프레쉬한 향수라인인 '코코 마드모아젤'의 모델로 키에라 나이틀리를 낙점해 향수 광고 모델 비용으로는 최고 금액인 50만 파운드(약 9억원)를 제시했다.
샤넬은 젊고 프레쉬한 향수라인인 '코코 마드모아젤'의 모델로 키에라 나이틀리를 낙점해 향수 광고 모델 비용으로는 최고 금액인 50만 파운드(약 9억원)를 제시했다.
▶샤넬과 최고 금액으로 향수 광고 모델 계약한 '잇 걸'

키에라 나이틀리와 패션을 연관지어서 이야기 하자면, 그녀의 2008년 작품인 '어톤먼트(Atonement)'를 제외하고 이야기를 이을 수가 없을 것이다. 키에라 나이틀리가 극 중 한 장면에서 피로(披露)한 그린 컬러의 드레스는 '타임(Time)', '인스타일(InStyle)' 등 다수의 영화, 패션 매체에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의상이라고 선정됐다. 나이틀리는 영화 만큼이나 이 드레스로 대단한 관심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이 시대의 스타일 아이콘 중의 한 명으로 등극했다.

이는 영화 '7년만의 외출'의 마릴린 먼로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의 오드리 햅번의 의상을 넘어선 결과였으며 영화 개봉 직후에는 그린 드레스를 모방한 드레스들이 인터넷 옥션 사이트 등을 통해 대거 방출됐을 정도로 파급효과가 상당했다.

영화 의상을 담당했던 재클린 듀런(Jacqueline Durran)은 그린 드레스를 누구보다 멋지게 소화해낸 키에라 나이틀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녀는 처음 저와 만났을 때 자신이 외소한 몸을 가졌다는 피해의식에 평생을 살아왔다고 했었어요.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매는 바로 케이트 윈슬렛이라고 언제나 말하는 것 처럼 자신의 몸매에 자신 없어 했었죠. 그래서 이 에메럴드 빛의 그린 새틴 드레스는 그녀가 생각하는 그녀의 결점을 색감으로서 많은 부분 커버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재클린 듀런의 예상은 적중했고, 키에라 나이틀리는 인생에 다시없을 최상의 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나이틀리는 워낙에 스타일이 좋아 2,30대 여성들의 총애를 받으며 각종 파파라치 잡지나 사이트 등에서 평상시 모습이 담긴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이런 키에라 나이틀리를 유명 패션 하우스들이 가만 내버려 둘리 없다. 그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멋진 제안을 한 패션 하우스는 바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 샤넬(Chanel) 이었다.

샤넬은 젊고 프레쉬한 향수라인인 '코코 마드모아젤'의 모델로 키에라 나이틀리를 낙점했고, 향수 광고 모델 비용으로는 최고 금액인 50만 파운드(약 9억원)를 제시했다.

이후 영국의 떠오르는 패셔니스타이자 해리포터 시리즈의 히로인 엠마 왓슨(Emma Watson)이 키에라 나이틀리를 대신해 샤넬 마드모아젤 향수의 새로운 얼굴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키에라 나이틀리는 아직도 샤넬 향수의 얼굴로 건재하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영국판 엘르와 촬영한 화보에서 이번 시즌부터 정식 런칭하는 디자이너 '톰 포드(Tom Ford)'의 화제의 여성복 라인을 너무도 멋지게 표현해 내어 조만간 브랜드의 얼굴이 바로 키에라 나이틀리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모든 패션 디자이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몇 안 되는 배우다.

키에라 나이틀리가 영화 '어톤먼트'에서 입은 그린 컬러의 드레스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의상으로 선정됐다.
키에라 나이틀리가 영화 '어톤먼트'에서 입은 그린 컬러의 드레스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의상으로 선정됐다.

▶"대본과 연출만 좋다면 조연, 저예산 독립영화도 OK!"

2010년 10월,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메일(Mail)은 영국 배우 중 한 해 수입이 가장 많은 여배우는 3010만 파운드(약 541억원)를 벌어들인 키에라 나이틀리라고 보도했다. (이는 남녀 통틀어서도,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다니엘 레드클리프(Daniel Redcliff)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입이다) 그만큼 나이틀리는 명실상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국 출신 여배우의 자리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는 블록버스터 영화나 대작 시대극에서의 주인공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 촬영한 영화지만, '슈팅 라이크 베컴'같이 기분 좋은 영화에서의 좋은 역할이라면 언제라도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라며 작은 역할이라도 자신에게 맞거나, 대본과 연출이 좋다면 저예산 독립영화에도 얼마든지 출연이 가능하다고 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네버 렛 미 인(Never let me in)에서도 조연이었지만 기꺼이 출연을 수락한 이유기도 하다.

칼럼을 쓰다보니 오래 전 보고 기분이 좋아졌던 '슈팅 라이크 베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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