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김영애 “내 연기 인생에 ‘적당한 역’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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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6일 15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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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애(60)는 "\'로열패밀리\' 촬영하면서 체력이 바닥났다. 주량도 절반으로 줄었다"며 웃었다. 사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배우 김영애(60)는 "\'로열패밀리\' 촬영하면서 체력이 바닥났다. 주량도 절반으로 줄었다"며 웃었다. 사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그래요?" 미소가 퍼질 듯 말 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한 참 뒤에야 호탕하게 웃으며 하이톤 목소리로 "항상 제가 하는 역할은 '저 역할은 김영애가 딱이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MBC '로열패밀리'에서 JK그룹의 공순호 역할을 맡은 김영애(60)에게 '공순호는 김영애가 딱'이라는 시청자들이 많았다는 말을 건넨 뒤였다.

김영애는 JK그룹을 이끄는 냉철한 사업가로 자식조차 JK그룹을 이어받을 후계자로만 생각하는 '철의 여인' 공순호를 맡아 40년 연기 인생의 관록을 보여줬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배우는 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도 끝난 마당에 인터뷰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시청자들이 워낙 힘을 많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며 입을 열었다.

▶"공순호는 기운 없으면 못 할 역"

-머리가 짧아지셨습니다.

"많이 잘랐어요. 빨리 공순호 회장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요. 드라마가 끝나면 굉장히 시원할 줄 알았는데 공황상태였어요. 너무 허하고 텅빈 것 같아서 머리부터 잘랐습니다. 술 마시고 뚝 떨어져있기도 했고요. 이제 완전히 벗어났어요."

-공순호 회장이 그만큼 의미가 컸던 것인가요?

"원체 강한 성격이니까요. 3개월을 정신없이 공순호로 살았어요. 빨리 벗어나서 나를 찾아야죠. 그리고 전 일 할 땐 항상 그래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죠."

-시놉시스를 받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진짜 강하다. 그런 생각? 강해서 힘들겠다 싶기는 했는데 미니시리즈 한 편 하는 것이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악역이라고들 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은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인물이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빨리 동화될 수 있었고 망설임없이 연기할 수 있었고요."

김영애는 "나는 적당한 역을 한 적이 없었다. 원래 분량 많고 힘든 역을 주로 해서 공순호라고 특별히 힘들진 않았다"고 말했다. 단, 공순호는 "기운이 없으면 정말 못할 역"이었다고. 누구를 만나도 일단 기를 꺽어놓고 들어가야 하는 역이다보니 기운이 많이 소모됐다는 설명이었다.

"회장 역이니 자세도 꼿꼿해야 하고 옷에 주름이라도 생기면 맵시가 나지 않으니 앉지도 못하고 서 있다보니 쥐가 나기도 했어요. 부풀린 뒷머리가 망가질까봐 뒤에 기대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낮밤을 매주 며칠씩 새우며 연기해야 하니 체력적으로 힘들었죠."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마지막 한 달은 운동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이틀에 한 번 씩 헬스장에 가는데 스트레칭할 기운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체력이 너무 딸렸어요. 일하면서 내가 이걸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무서웠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4박5일간 누워본 시간이 9시간이었어요. 집에가서 씻고 앉아보지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간 적도 있어요. 3시간 정도 잘 수 있으면 막걸리를 3,4잔 연달아 마시고 잠들었죠. 제가 불면증이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자요. 막걸리가 참 좋더라고요. 위도 안아프고 배도 안고프고. 하하"

-체력적으로 많이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미니시리즈를 이렇게 촬영하는지 몰랐어요. (체력 때문에) 나이 들면 주인공 못 한다고 하더군요. 오죽하면 후배가 '언니 죽겠지' 전화했어요. 촬영 분량이 정말 많았고 방송이 된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았어요. 불평을 할 시간조차 없었죠. 다음 작품을 미니시리즈 하기로 했다가 번복했어요. 소속사에 '이렇게는 못 하겠다. 미니시리즈 하나 하고 할머니 되기 싫다'고 했습니다."

▶"카메라 앞 얼굴 낯설어 모니터 안 하는 편"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작가들이 선생님 연기에 매번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냥 그 때 그 때 내 느낌대로 해요. 대본 봤을 때, 리허설 할 때, 슛 들어갈 때 느낌이 조금씩 달라요. 마지막 슛 들어갔을 때 그 느낌대로 하죠. 상황과 대사를 외우고 내 느낌과 가슴에 맡깁니다. 연습은 7,80%까지만 해요. 100%까지 연습하면 바꿔지지 않거든요. 7,80% 연습하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채우는 것이죠."

-'저거 치워' 대사가 화제였습니다.

"대사보다 상황과 연출의 힘 아니었나 싶어요. 사실 전 별 생각없이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JK에서는 내가 법이다'는 대사가 좋았어요."

-모니터링 하실 때는 어떤 느낌인가요?

"방송을 잘 안 봐요. 드라마 내내 딱 한 번 봤어요. 방송을 보면 속상하고 편치 않아요. 방송을 볼 때 몸에 힘이 들어가는데, 그 기분이 너무 싫고 불편해요. 보통 때 얼굴과 카메라 앞 얼굴이 너무 달라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같을 순 없죠. 그게 낯설어서 모니터를 잘 하지 않아요. 완전히 다른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불편하거든요."

그는 같은 이유로 화장도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요. 드라마에서는 아주 옅게 하고요. 화장을 많이 하면 내 얼굴이 여우같아서 싫어요. 사람들이 화장한 제 얼굴을 자주 보다보면 화장 안 한 내 얼굴 보고 놀라지 않을까 싶어서도 안하고 다니고요."

-연기에는 만족하셨나요?

"지나간 거니까 생각 안해요. 연기 할 때, 그 순간에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해 쏟아 붓죠. 미련이 없어요. 소용없잖아요. 다른 감정 정리는 그렇지 못한데 일에는 그렇게 해요. 하하"

-완벽주의자로 유명하십니다. 촬영장에서도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찍자고 하시나요?

"그렇진 않아요. 그 열악한 상황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하자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10번 한다고 정말 내 마음에 드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자신도 없어요. 그러니 웬만하면 넘어가요. 나 자신, 가족들에게는 완벽을 요구합니다. 그렇다고 1등을 하라거나 100점 받으라고는 하지 않아요. 최선을 다했냐고 묻죠. 해도 해도 안되면 어쩔 수 없잖아요."

-공순호 회장과 선생님의 닮은 점도 있었나요?

"목표는 다르지만, 갈 때가지 가보는 거요. 공순호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더 키우고 이루고자하는 욕망이 많다므녀 저는 배우로 좋은 연기자, 최고의 연기자가 되고 싶죠."

▶"무너진 뒤 다시 올라가는 공순호 보여주고 싶었다."

-공회장이 이해된다고 하셨습니다. 100% 이해되던가요.

"마지막 장면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죽이고 싶은만큼 미운 사람은 있을 수 있죠. 그러나 실행에 옮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로열패밀리' 마지막회에서 공순호 회장은 JK그룹을 물려받은 둘째 며느리 김인숙(염정아 분)과 한지훈 변호사(지성)을 헬기에 태워 없앴다.

-헬기가 실종됐는데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인숙과 한지훈이 죽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두 사람이 다른 나라로 떠났다고도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죽었을 수도, 그냥 사라져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죠. 한국적 상황에서는 죽은 게 맞는 것 같고 외국 드라마 기준으로 보면 새 인생을 살 것 같아요."

-시청자들은 김인숙이 자신의 마지막임을 알고도 헬기에 탔다고도 생각하는데요.

"김인숙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단지 시기가 빨라진 것은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공순호의 의지였을 거예요. 공순호가 병에 걸린 이상 어쨌든 정리는 하고 가야하지 않나 싶었겠죠."

-마지막회에 김 변호사(독고영재)와 공 회장의 관계가 사랑처럼 보였습니다.

"심정적으로 많이 의지하지 않았을까요. 남의 눈 이목 체면이 있다보니 표현하지는 못했지만요. 공순호도 여자인데 남편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살면서 김 변호사에게 의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김 변호사와 술 마시는 장면이 두 번 있었어요. 살아온 모습이 묻어있다보니 표현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회장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쉬워요. 너무 늦게 쓰러졌습니다. 공순호가 아래를 쳐다보지 않고 올라만 가다가 딱 꺽어졌으니 훨씬 더 큰 좌절과 상실감을 맛 봤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충분히 표현되고, 이 사람이 어떻게 정리하고 다시 올라가는지가 궁금했는데 여유가 없었어요.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좀 더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는 "공순호가 마지막회에 쓰러졌는데 시놉시스 상에서는 14회 쯤 쓰러졌다"고 말하며 "14회에 쓰러졌다면 조금은 달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영애는 '로열패밀리'에 출연한 후배 연기자들 중에 '제2의 김영애'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주저없이 염정아(왼쪽)를 지목했다. 사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김영애는 '로열패밀리'에 출연한 후배 연기자들 중에 '제2의 김영애'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주저없이 염정아(왼쪽)를 지목했다. 사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내 가슴에 끓는 것이 있는 한 연기 계속 할 것"

-'로열패밀리'는 독대 장면이 많았습니다. 후배들이 주눅들었을 것 같은데요.

"하하. 우습게 봤을껄요? 저는 어려운 선배 아니에요. 못마땅한 게 있으면 바로 이야기하긴 하는데 까탈스럽진 않죠. 오히려 웃어서 NG를 가장 많이 냈어요. 스태프 배에서 꼬르륵 소리만 나도 그렇게 웃겨요."

-연기 잘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제2의 김영애'를 꼽으신다면?

"글쎄요. 드라마를 잘 안보는 편인데 최근 가장 열심히 봤던 드라마가 '시크릿 가든'이에요. 보면서 현빈이 연기 잘 한다고 생각했어요. '로열패밀리' 안에서는 (염)정아요. 정아는 색깔있는 배우잖아요. 자기한테 맞는 색을 만나면 정말 좋은 배우에요. 다양성을 갖춘다면 더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럴 필요 있나요."

-그동안 어머니 역을 많이 하셨습니다. 공순호는 기존에 맡으셨던 어머니와 달랐는데, 공순호의 모성은 무엇인가요?

"공순호는 엄마이기보다 기업을 끌고가는 역할이 컸기 때문에 자식을 볼 때도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느 자식이 JK라는 그룹을 잘 물려받아서 잘 키울 수 있나를 봤겠죠."

-데뷔하신지 4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어떠셨나요.

"데뷔했을 때는 연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했고 5년 지나면서 내가 이걸 안하면 안되겠다 생각했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는 내가 배우 안했으면 뭘 했을까 어떤 그림도 상상이 되지 않아요. 지금은 내가 배우로 살아올 수 있었던 데 정말 감사해요."

김영애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 가슴에 끓는 게 있다고 생각되는 한 연기를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말라 버릴까봐 사실은 좀 무서워요. 가슴에서 올라오는 게 없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 때는 배우를 그만둬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후속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충분히 놀고 10월 이후에 들어가고 싶어요. 1년에 한 작품하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과거엔 세 작품에 겹치기출연한 적도 있었죠. 그 때는 먹고사는 일이 급했으니까.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가 생활 걱정 안하고 근사하게 연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김영애는 유독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했다. 인터뷰 마지막까지도 그랬다.

"이런 역할을 이 나이에 만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내 나이에 맡을 수 있는 역은 누구의 엄마같은 장식품이나 구색맞추는 역들이 대부분이에요. 그건 안하고 싶어요. 엄마를 안하고 싶은 게 아니라 누구의 엄마로 지나가는 역은 싫어요. 이런 저런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진 것에 감사합니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한민경 동아닷컴 기자 mkhan@donga.com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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