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인기 있어”라고 하자 애들이 “뻥”이라고 했다. 애들은 아빠가 밖에선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어려운 것은 모두 내가 안고, 좋은 것은 모두 그들이 갖길 원하는 것이 아빠. 그러니 아빠는 엄하다. 세상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집에서 “뻥” 하면 모두 웃는다. 아빠의 권위가 무너지지도 않는다. 더 이해하고 친근감을 갖게 된다.
비현실적 공약 남발의 대가
똑같은 “뻥”이지만 권위가 약화되고 신뢰를 잃는 경우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회견이다.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익에 반한다면 당초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타당성과 경제성 검토 결과 매년 적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란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표를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거짓공약을 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 책임이다. 공약 안 지키기가 반복되면 사회적 신뢰가 깨진다. 사회 자본은 줄어들고 정치 불신이 높아진다. 정치 발전에도 국민 화합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공약을 모두 지킬 수 없다.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공약이라면 당연히 수정 또는 철회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정치적 필요에 따라 비현실적 공약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표의 유혹은 악마의 유혹보다 강하다. 대통령도 “공약을 할 때는 사업 타당성이라든가 경제성이라든가 전문가 검토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결국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 공약 채택의 기준은 아니었다. 그 공약이 표를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동남권 신공항은 내년 대선에서 논란의 한복판에 다시 설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의원이 “신공항은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장 ‘가덕도 법안’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에 대한 지역민의 반감에 정치적으로 편승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적절하고 필요한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치적 필요에 따라 즉흥적으로 제시된 공약이라면 ‘공약 제시-공약 포기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선거과정에서의 정책 검증이 강화돼야 한다. 국책사업과 대형 지역개발 공약 등에 대한 후보자 토론회는 물론이고 전문가 토론과 검증 과정이 필수적이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 후보자나 당에서 제시하는 공약은 엄청나게 많다. 모두 중요한 공약이지만 타당성이나 실현 가능성 차원에서 반드시 검증해야 할 정책사안은 어떤 것인지 언론과 학계,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도 중요하다.
선거 후 취임 직전까지 공약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공약이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니고 공약 실현에도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신공항 계속 추진’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언급을 계속했다. 대통령은 경제성 검토 결과 어느 곳도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 뒤에도 “수도권에 대응하는 제2경제권을 위해서는 신공항 건설이 필수적이다”라고 했다.
정치 지도자 인식부터 바꿔야
선거공약 수립의 원칙도 있어야 한다. 국익 우선과 국토 균형발전 원칙의 조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국책 사업성, 지역발전 공약에 어느 정도 국가적 자원을 투입하느냐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지도자의 인식이다. 이 대통령은 “다음 세대에까지 부담을 주는 이런 사업을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후보 시절엔 ‘책임 있는 지도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지도자의 덕목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치는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표출해 대표한다. 나아가 정치는 계층과 지역 간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정치는 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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