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청소년용 포르노그라피? ‘스킨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5일 1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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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스\' 미국판 리메이크의 배우들. 15~19세 사이의 신인배우들이다. 제작자 브라이언 엘슬리는 "오염되지 않은 배우들"을 찾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2회에 걸쳐 오디션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스킨스\' 미국판 리메이크의 배우들. 15~19세 사이의 신인배우들이다. 제작자 브라이언 엘슬리는 "오염되지 않은 배우들"을 찾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2회에 걸쳐 오디션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미국 방송가에서 1월은, 9월에 시작되는 가을 시즌 다음으로 새로운 TV프로그램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다. 2011년 1월도 예외는 아니어서 새로운 드라마들이 많이 등장했다. 볼거리가 떨어져 심심하던 시청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을 테고, 마침 쓸 거리가 없어 이 칼럼을 계속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던 나에게도 단비처럼 느껴졌다. 한데, 시작하자마자 논란의 중심에 선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MTV에서 방영하는 '스킨스'다.

'스킨스'는 미국 소도시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10대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그려 낸, 그렇지만 정작 청소년이 보기엔 적합하지 않은 장면이 너무나 많아서 TV-MA(17세이상 관람가) 등급이 매겨진 TV시리즈다.

▶절친한 친구의 총각딱지는, 제가 책임집니다.

지난달 17일 방영한 첫 에피소드는 '스킨스'의 발칙한 단면을 제대로 드러내는 에피소드다. (물론 영국판 파일럿과 99% 일치하기 때문에 이미 영국판 오리지널을 본 시청자라면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아침부터 앞집 아줌마의 벗은 몸을 한참 감상하고 아침 운동까지 마친 토니(제임스 마일로 뉴먼)는 밤새고 돌아온 여동생 유라(엘레노어 지치)가 아빠 몰래 집에 들어올 수 있게 도와준다.

불같은 성미를 가진 아빠의 약을 올릴 대로 올린 뒤 학교에 가는 길, 토니는 친한 친구 스탠리(대니얼 플래어티)가 17살이 되기 전에 총각딱지를 떼야 한다며, 여자친구 미셸(레이첼 테베나드)에게 약 먹고 스탠리랑 한번 잘 만한 여자 아이가 없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토니는 스탠리에게 여자랑 자려면 약이 필요하다며 질 좋은 마리화나를 구해오라며 동네 깡패의 연락처를 알아온다. 토니 말이라면 반대할 주변이 없는 스탠리는 약을 사러 가서는 무턱대고 120그램이나 받아온다. 마리화나도 있겠다, 부모님이 여행가신 집에서는 파티도 열리겠다, 이 혈기왕성한 아이들은 아직 덜 여문 육신을 약에 술에 맡기고 신나게 논다. 사소하고 유치한 오해로 시작한 말다툼이 싸움으로 번지고, 그 와중에 누군가 약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고, 자동차를 훔쳐 달아나다가 단체로 물에 빠지는 엔딩이다. 물론 스탠리의 작은 미션은 실패로 끝난다.

미셸과 데이지. 고등학생이지만 술, 담배, 처방 약품, 마리화나는 생활이다.
미셸과 데이지. 고등학생이지만 술, 담배, 처방 약품, 마리화나는 생활이다.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며 날 것처럼 생생한 10대들의 이야기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정말 고등학생들이 이러고 논단 말인가, 입이 쩍 벌어지지만 '뉴스위크'가 '스킨스'를 두고 제시한 통계에 의하면, 고등학생들은 실제로 성관계를 가지고, 약을 상용하거나, 실험적으로 사용하며, 10명 중 3명이 20살이 되기 전에 혼전 임신을 하고, 전체의 9%가 자살 시도를 한다.

눈이 휘둥그러지는 이야기지만 사실 고등학생이면 성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렇다고 어리광도 부릴 수 없는 어중간한 시기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분노 변덕 우울 고독 불안 등을 더 섬세하게 느끼기에 다양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출연 배우 중 한명은 "'스킨스'가 특정한 누군가의 삶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진짜 일어나는 일에 가까이 다가간 몇 안 되는 TV쇼 중에 하나"라고 말한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시청자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와 장면을 준비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스킨스'는 '가십 걸' '90210'가 보여주는 10대의 섹스와 약물 사용에 대한 팬시(fancy)한 스케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가정, 거식증, 폭식증을 비롯한 정서 장애, 성(性) 정체성, 죽음 등 도처에 놓인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9명의 캐릭터 안에서 그들 방식으로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숙한 성인이 아니라, 10대인 아이들을 그 자체로 바라봐주는 이야기다.

물론 이제 겨우 1회 방영됐기 때문에 영국판과 판박이처럼 똑같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 만큼 좋은 이야기가 될 거라고 장담하기는 이르다. 미국판이 영국판과 다른 점은 우선은 MTV스타일이라고 불릴 만한 화려함이다. 그래도 '가십걸'이나 '90210'처럼 꾸며낸 느낌은 덜하다. 소소하게는 캐릭터의 이름, 아이들이 사용하는 비속어, 드라마 안에서 부르는 노래 정도가 다르고, 눈에 띄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영국판에서는 게이였던 캐릭터가 레즈비언으로 바뀐 것이다.

미셸(왼쪽)과 토니. 다른 남자아이들이 우러르는 여자친구 미셸을 '젖꼭지'라고 부르는 마력의 남자친구 토니.
미셸(왼쪽)과 토니. 다른 남자아이들이 우러르는 여자친구 미셸을 '젖꼭지'라고 부르는 마력의 남자친구 토니.
▶선정적인 내용에 시청률은 오르고, 광고주는 떠나고

원작이 유명하기도 했지만, 내용이 이렇다 보니 '스킨스'는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드라마가 논란의 중심에 놓인 까닭은 내용 중에 차일드 포르노그라피로 간주될 수 있는 장면이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특히 시즌1의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크리스가 발기부전치료제를 먹은 뒤 하루 종일 발기한 상태로 소동을 만드는 이야기가 문제가 되었고, MTV의 대표는 제작진에게 드라마의 톤을 정돈해줄 것을 당부했다. 차일드 포르노그라피는 미국 연방법에 저촉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 파장이 꽤 크다. 이 시리즈의 광고주 중에 하나인 Taco Bell은 향후 예정된 광고를 모두 취소했고, 파일럿 방송에 광고가 방영됐던 Wrigley, H&& Block, GM 등은 회사의 의사와 관계없이 배정된 광고 시간대였다며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을 서둘러 성명서로 발표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TV 감시 단체인 학부모 텔레비전 위원회(Parent Television Council)는 '스킨스'의 두드러지는 문제로 부모 기만, 성적 대상화를 구체적으로 지적했으며 전체적으로 해롭고, 무책임하며, 위법이며, 성인 취향의 내용이라고 혹독하게 비난했다. Parent Television Council의 회장은 "절대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위험한 프로그램"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를 두고 'MTV'가 내놓은 변명은 궁색하다. "'스킨스'는 성인 대상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이며, 그렇기 때문에 동부 기준 오후 10시에 방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MTV'라는 채널의 주요 시청자그룹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10대이며, '스킨스' 파일럿이 기록한 326만 명의 시청자 중에서 120만 명 가량이 18세 미만의 시청자로 집계됐다.

사실 이미 유명한 TV시리즈를 리메이크했으면서 FBI조사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조금은 호들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광고와 시청률은 비례하게 마련인데, 높은 시청률에도 광고가 떠나는 예외적 상황에서 드라마를 수정해야 하는 방송국 입장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됐다고 할 수 밖에.

▶2011년 1월은 영국드라마 미국 리메이크 풍년

'스킨스'의 차일드 포르노그래피와 관련한 논쟁과 소문들을 잠시 접어두면, 2011년 미국 방송가에는 '스킨스'를 제외하고도 'Shameless'(쇼타임), 'Being Human'(Syfy) 등 영국산 드라마들의 리메이크가 꽤 많이 등장했다. 영국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한 시즌에 3편이 첫선을 보이는 건 흔한 경우가 아님엔 틀림없다.

'Shamelss'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여섯 아이들의 처절한 삶을 가볍고 담백한 시선으로 조명한 이야기이고, 'Being Human'은 유령, 뱀파이어, 늑대인간이 룸메이트가 되어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다. 우연이겠지만 마침 쇼타임에서는 '에피소드'라는 새 시트콤을 시작했는데, 영국의 코미디 작가 부부가 쇼를 리메이크하겠다는 방송사 사장의 제안을 받고 할리우드에 오지만 의도한 것과 다르게 쇼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손 놓고 바라만 본다는 내용이다.

'프렌즈'를 만든 데이비드 크레인이 오랜만에 제작하는 시트콤이고, '프렌즈'에서 조이로 출연했던 매트 르블랑크가 배우 매트 르블랑크 역으로 출연해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의 면목을 보여준다. '스킨스' 'Shameless' 'Being Human'의 리메이크를 위해 할리우드에 온 영국의 작가들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해보니, 그것도 또 재밌다.

안현진 / 잡식성 미드 매니아 joey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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