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마루 밑 아리에티’의 100억 엔대 흥행이 위험한 이유

동아일보 입력 2010-09-02 14:58수정 2011-01-0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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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탄생시킨 지브리 스튜디오가 2010년 새롭게 내놓은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 주인공 아리에티는 마루 밑 세계에서 인간들의 물건을 몰래 빌려쓰며 살고 있는 10cm 소인이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가 일본에서 현상적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개봉 7주 만에 665만 관객을 동원, 흥행 수익 80억 엔(약 1100억원)을 돌파했다. 거기다 아직 흥행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 8월 마지막 주말 흥행에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 대표이사직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는 "9월 말까지 100억 엔 이상을 벌어들일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일본 영화시장에서 100억 엔 돌파는 한국으로 치면 1000만 관객 돌파와 비슷하다. 1년에 1편 이상 나올까말까 한 '그 해의 문화현상'에 속한다. 거기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10월 이후까지 초장기 흥행에 돌입할 가능성도 크다. 최종 흥행수익은 현재로서 예측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아리에티는 저택에 요양을 온 인간 소년 쇼우의 눈에 띄게 된다. 쇼우의 다정한 모습에 아리에티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미야자키와 비(非)미야자키 애니메이션, 흥행 격차 좁아져

이쯤 되면 지브리의 브랜드화도 이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잘 알려졌듯 미야자키 본인의 감독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브리 애니메이터로 활동해오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감독 데뷔작이다. 아무리 홍보과정에서 미야자키 이름만 판다 해도 실제 연출자에 대한 정보는 급속도로 퍼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지명도 면에서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1990년대 초중반에도 지브리 내에서 미야자키 감독작과 여타 감독작 사이 흥행간극이 좁혀지는 현상은 있었다. 미야자키의 1992년작 '붉은 돼지'(27억1300만 엔)와 2년 뒤 다카하타 이사오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26억5000만 엔) 간 수익 차는 1억 엔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령공주'의 빅뱅으로 '100억 엔대 신화'가 시작되고 난 뒤부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흥행수익 면에서 미야자키와 비(非)미야자키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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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고양이의 보은' 64억6000만 엔, '게드 전기' 76억5000만 엔 등으로 야금야금 수익을 올려가다 '마루 밑 아리에티'의 100억 엔대 흥행으로 다시 1990년대 초중반 분위기까지 되돌아간 셈이다. 미야자키 최근작인 '벼랑 위의 포뇨' 최종수익은 155억 엔. '마루 밑 아리에티'가 초장기 흥행에 들어갈 때 격차는 많이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미야자키작의 흥행수익이 점차 떨어지고 비(非)미야자키작 수익이 올라가는 현실이라면, 향후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의 연출 여부와 관계없이 시장에서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100~200억 엔대 하이 마켓에서 안착 되는 일종의 브랜드 평준화다. 올해 말 지브리의 새 비(非)미야자키 애니메이션 '다케토리 이야기'가 또다시 대성공을 거둔다면 이 같은 예상은 현실로 굳어질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69) 감독

▶'지브리'라는 이름이 흥행 보증수표가 된 신기한 현상

특이한 현상이다. 지금껏 감독도 배우도 심지어 제작자도 아닌 제작사 네임밸류가 이 정도 흥행 보증수표가 된 경우는 대중문화 선진국들 사이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인 스티븐 스필버그마저도 자기 제작사 앰블린 엔터테인먼트를 지브리 정도로 만들지는 못했다.

앰블린 제작 영화중에는 '백 투 더 퓨쳐', '그렘린', '트랜스포머', '맨 인 블랙' 등 성공작들도 많지만, 따지고 보면 '피라미드의 공포', '이너스페이스', '8번가의 기적', '에볼루션', '러블리 본즈' 등 실패작들이 더 많다. 물론 스필버그 본인의 감독작은 꾸준히 안정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지만, 앰블린 자체의 브랜드화에는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각 영화의 퀄리티와 흥행전략에 의해 시장에서 판가름 나고 있을 뿐이다.

첫 히트작 '마녀 배달부 키키' 이후 13편의 영화 중 1999년작 '이웃집 야마다군'을 제외하고 모든 작품이 성공한 지브리, 더군다나 100억 엔대로 맞춰진 새로운 미야자키 허들에도 마침내 적응해낸 지브리와는 크게 다르다.

굳이 지브리의 흥행 보증수표 성격에 가장 가까운 제작사를 꼽는다면, 미국의 CG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 정도를 들 수 있다. 픽사 역시 현재까지 제작한 11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중 실패작은 단 한 편도 없다. 가장 낮은 수익이 '벅스 라이프'의 1억6279만8565달러였으며, 그마저도 1998년 통산 흥행 4위였다. 1999년 '토이 스토리 2'부터는 미국 내에서 2억 달러 이하로 수익을 거둬들인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픽사와 지브리를 비교하는 건 근원적인 부분에서 무리다. 픽사는 철저히 내놓는 작품들의 높은 퀄리티를 통해 대중신뢰도를 얻어낸 제작사다. '벅스 라이프'와 '카'를 제외한 9편의 작품이 모두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의 네티즌 평점 순위 250위 안에 들어있다. '벅스 라이프'와 '카'까지도 7.3과 7.5의 평점으로 평균 수준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신뢰도가 더 굳건히 쌓일 수밖에 없고, '픽사가 만들면 언제나 최고 수준'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브리는 이와는 다르다. 이미 퀄리티 면에서 누수가 시작되고 있다. 미야자키의 최근 연출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벼랑 위의 포뇨'는 모두 일정부분 비평계의 비판을 받으며, 늘 들어가던 일본 영화격주간지 키네마준포의 베스트 10에서 연속적으로 빠지고 있다.

비(非)미야자키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게드 전기'는 역대 지브리 애니메이션 사상 최악의 작품이자 지브리 외 제작사들의 애니메이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미야자키 본인부터가 자기 아들이 연출한 영화임에도 너무 실망한 나머지 시사회 도중 극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각본, 원안, 연출, 편집한 '벼랑 위의 포뇨'(2008)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처럼 보였기에' 성공했을 뿐

그러나 이렇듯 퀄리티 면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어도, '게드 전기'는 '고양이의 보은' 성적을 뛰어넘었고, 역시 '고양이의 보은'보다 못 하다는 평가를 받는 '마루 밑 아리에티'는 '고양이의 보은'과 '게드 전기' 모두를 크게 추월했다.

심지어 퀄리티 측면까지도 모두 무시한 채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진정한 흥행 보증수표 제작사, 그것이 바로 지브리라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일본 대중 전체가 지브리라는 제작사 명(名)에 무조건 반응하도록 무슨 마법이라도 걸어버린 걸까? 가히 불가해한 현상이지만, 따지고 보면 의외로 쉽다. 일단 '지브리 브랜드'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할 필요가 있다. 지브리를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브리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사실상 모두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나 마찬가지다. 1인 통제기업에 가깝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후 지브리는 총 17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내놓았다. 그 중 9편이 미야자키 감독작이고 8편은 아니다. 그러나 8편의 비(非)미야자키작 중 5편이 미야자키의 제작총지휘로 만들어졌다. 물론 이 정도는 스티븐 스필버그도 한다. 그러나 스필버그와 다른 부분은, 비(非)미야자키작 상당수가 '이야기' 면에서 미야자키의 손길이 닿아있다는 점이다.

미야자키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아이디어를 냈고, '귀를 기울이면'과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각본을 직접 썼으며, '게드 전기'의 콘셉트도 자기가 짰다. 미야자키의 이름은 명시돼있지 않지만, '고양이 보은' 역시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한 고양이 남작 캐릭터가 그대로 등장하는 등 전반적으로 미야자키의 아이디어에 기댄 흔적이 많다. 반면 51편에 이르는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의 비(非)스필버그 영화들 중 스필버그가 '이야기'에 가담한 영화는 '폴터가이스트'과 '구니스' 단 두 편뿐이다.

이제 남는 비(非)미야자키는 '반딧불의 묘지',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군' 3편뿐이다. 모두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랜 동료였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작이다. 그러나 미야자키와의 오랜 공동작업 과정에서 다카하타는 미야자키와 동일한 작화로 굳어지게 됐다. 실질적으로 캐릭터들 생김새 자체가 미야자키작 주인공들의 그것과 완벽히 일치한다.

다카하타 뿐만이 아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미야자키풍(風) 작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일반 대중 입장에선 미야자키가 직접 연출한 작품과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에 손을 대지도 않고, 작화에서도 미야자키풍(風)에서 벗어난 지브리 작품은 1999년작 '이웃집 야마다군'뿐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이웃집 야마다군'은 '마녀 배달부 키키' 이후 지브리의 유일한 실패작이 됐다. 그것도 대참패였다. 23억2000만 엔의 제작비를 들여 불과 7억9000만 엔의 수익만을 올렸다. DVD 등 2차 시장 수익까지 합쳐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신화는 모두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이디어에 기대거나 작화가 같아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처럼 보였기에'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브랜드화 성공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이뤄진 성공에 불과하다. 지브리는 없고 여전히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존재만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 패턴이 '마루 밑 아리에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브랜드 평준화만 이뤄졌을 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8년 히트작 '이웃집 토토로'. 주인공 토토로(왼쪽)는 최근 '토이 스토리3'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의 지브리 브랜드 평준화는 위태롭다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지브리에 대한 신뢰도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일본 대중의 신뢰도가 지브리의 브랜드 평준화를 이끌어냈다면, 어째서 미야자키 본인의 작품은 계속 수익이 떨어지고 있는데 비(非)미야자키 작품 수익은 오르고 있는 걸까.

이 역시도 사실상 단순한 현상이다. 근래 들어 미야자키는 '자기다운' 영화를 안 만들고 있어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소녀성(性)을 이미지 모티브로 삼는 미야자키 특유의 콘셉트에서 벗어나 난데없이 할머니-물론 마법에 걸려 할머니가 됐지만-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이야기 구조 자체도 유럽 원작에 갇혀 미야자키 특유의 자유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벼랑 위의 포뇨'는 이보다 더하다. 등장인물들 연령대를 지나치게 낮췄을 뿐더러 이야기 구조 자체를 저(低)연령층 대상으로 맞춰 기성세대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던 '이웃집 토토로'보다도 더 아동전용이라는 이미지다. 한 마디로, 미야자키를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황제로 만들었던 여러 성공요인들을 미야자키는 21세기 들어 계속 배신하고 있는 셈이다.

대신 왕년의 미야자키다운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신인 감독들에게 맡기고 있다. '고양이의 보은'은 언급했듯 '귀를 기울이면'에서 이어지는 미야자키 소녀 판타지의 연장선상이다. '게드 전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세계관이 일치하며, 애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 역시 이종(異種)간의 공생, 강인한 소녀 캐릭터, 상대적으로 무개성적이며 투명한 소년 캐릭터 등 미야자키 전성기의 구성 원칙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결국 동일한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들이라는 인식 내에서, 완성도와 관계없이 더 미야자키적(的)인 것이 신인 감독들 작품이기에 그쪽으로 대중 집중이 이뤄지고, 오히려 덜 미야자키적(的)인 것이 미야자키 본인의 근작들이기에 점차 대중의 외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지브리 브랜드 평준화는 그리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위태롭다. 쉽게 말해, 신인 감독들 작품은 '왕년의 미야자키 걸작들' 빨로 버티고 있고, 미야자키가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변화는 연이어 실패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왕년의 미야자키 걸작들' 빨이라는 게 무섭긴 하다. 여전히 일본의 유치원생들은 소풍 갈 때마다 '이웃집 토토로' 주제곡 '산책'을 부르며 걸어간다. 고양이 버스 인형을 껴안고 다닌다. 그런 식으로 20여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영향을 남기고 있기에 단번에 무너질 수 있는 아성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미야자키 본인 감독작의 대중적 어필이 계속 실패하게 된다면, 그리고 미야자키가 왕년의 걸작들에 준하는 영화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존재 하나로 버티고 있는 지브리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99년작 '이웃집 야마다군'.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이시이 히사이치(Hisaichi Ishii)의 4컷짜리 동명 만화를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는 올해 우리 나이로 70세다. 실사영화 감독이건 애니메이션 감독이건 사실상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에 이르렀다. 그리고 미야자키는 최근 자신의 다음번 감독작을 발표했다. 1992년작 '붉은 돼지'의 속편이다.

미야자키는 지브리를 설립한 이래 단 한 번도 속편을 만들어본 일이 없다. 딱히 속편을 거부한다는 발언을 한 일은 없지만, 속편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속편 없는 지브리의 연이은 작품들로 증명한 바 있다. 그런 그가 굳이 18년 전 자기 작품의 속편 제작계획을 밝힌 것이다. 자칫 창작력의 고갈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찌 보면 현 시점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현실은, 이처럼 한 꺼풀만 벗겨내 보면 오히려 최대의 위기로도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의 100억 엔대 흥행이 오히려 위험신호로 작용하고 있는, '아시아의 월트 디즈니'만이 겪고 있는 희한한 딜레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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