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이상진] 열정과 배려, 강수진이 보여준 ‘조금 더’의 차이

동아일보 입력 2010-09-02 14:55수정 2014-08-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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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강수진은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다시\'를 외쳤다.
엠넷의 '슈퍼스타K'가 인기다.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8%를 넘는다고 한다. 지상파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우수한 성적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도전하고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서 울고 웃는 장면들이 우리들의 고단한 삶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오락적인 재미를 증폭시킨 것은 성공한 연예인들의 날카로운 평가다. 시청자들은 잔인하리만큼 냉정한 평가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쾌감을 느끼는 묘한 감정의 교차를 느끼게 된다. 휴먼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의 장점을 결합시켜놓은 영리한 프로그램이다.

어쨌든 그 프로를 보면서 떠오르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조금 더의 차이가 큰 차이다" 바로 지난 봄 고현정이 나와서 카리스마 있는 눈빛을 보내며 외쳤던 SM5 광고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나서 탈락하는 도전자들도 있지만 얼핏 보기엔 비등비등한 것 같은데도, 박진영, 이승철 등 '전문가'들은 날카로운 멘트를 날리며 탈락시키곤 한다. TV를 보며 '대체 차이가 뭐지? 전문가가 되면 그 차이가 보이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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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의 차이가 큰 차이다", 이 상황에 딱 맞는 이야기다.

아마 자신들의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한 이들에게만 그 차이가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카피는 '슈퍼스타K'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 여정에 너무나 딱 들어맞아서 나를 전율하게 했었다. 나도 광고인이지만, 가끔은 잊고 있었던 인생의 진리를 일깨워주며 온 몸을 전율케하는 광고들이 있다. SM5 광고가 그랬다.

▶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반복된 '다시'

최근 SM5 광고 후속편이 발레리나 강수진 씨(43)를 모델로 하여 촬영됐다고 해서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여성의 대명사인 그녀는 촬영장에서 어땠을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된 이번 촬영의 뒷이야기가 여기 있다.

사실 이미 멋지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역시나 멋졌다는 이야기처럼 시시한 이야기는 없다. 뒷이야기가 되려면 자고로 그 사람의 결점 내지는 약점이 드러나야 재미있는 법. 그러나 나는 그의 한국어가 생각보다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억지로 찾아내는 대신 두 눈 가득히 그에 대한 감동을 전하는 촬영 스태프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야기 속에는 강수진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조금 더'가 숨어 있었다.

첫 번째 '조금 더'는 열정이다.

CF는 중3 시절 유학을 떠나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외국 아이들을 따라잡으려 오후 9시면 불이 꺼지는 기숙사에 홀로 남아 늦게까지 연습한 강수진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이제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된 그이지만 그 열정은 CF 촬영장에서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마흔 셋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날렵한 비상 자세는 아름다움 자체였다. 촬영 스태프가 보기에는 이미 충분히 높이 비상했고, 충분히 아름다운 몸의 곡선이 표현됐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다시"를 반복했다.

많은 연예인들이 CF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촬영이나 드라마 촬영과 달리 반복 촬영이 계속되면, 매니저를 통해 있는 대로 짜증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다음 스케줄을 핑계 삼아 도망갈 궁리만 하는 경우도 다반사.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반복하는 '조금 더'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CF 촬영장에서 메이크업 점검을 하고 있는 강수진.

▶ 한식 마니아 그가 한식 거부한 이유는…

두 번째 '조금 더'는 배려다.

촬영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관계자들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강수진이 한식 마니아로 알려진 터라 메뉴는 자연스럽게 한식으로 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메뉴를 눈치 챈 강수진이 반대했다.

"저는 한식 좋아해요. 매운 것 특히요. 어쩌다 한식을 먹으면 김치 한 통을 다 먹어요. 근데 평소에 발레 할 때나 외국 스태프와 있을 때는 먹지 않아요. 같이 공연이나 일을 할 때 내 입에서 나올 익숙하지 않은 냄새로 불편할까봐요."

사실 스태프 중 대다수는 한국인이었다. 또 스태프들과의 대화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 촬영이었다. 그런데도 소수의 현지 스태프들을 배려한 것이다.

배려는 자신의 아역을 맡은 어린 발레리나에게도 이어졌다. 그는 시차로 인해 입맛이 없었는지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어린 친구에게 "잘 먹어야 해. 발레는 라인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몸으로 희로애락과 미를 표현해야 하는 만큼 체력적으로도 강인해야 한다"며 격려했다.

촬영 중에도 어린 후배의 동선과 동작을 일일이 점검해 주었다. 그 누구도 강수진에게 어린 후배를 챙겨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고 그런 수고를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촬영장에서 그는 마치 자신의 딸을 챙기듯이 후배를 챙겼고 힘든 촬영을 훈훈하게 이끌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몇 있다면, 배려심 많은 사람과 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연예계에서도 인간성 좋은 사람들이 오래 가는 것처럼 그의 성공 뒤에도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열정과 배려가 눈에 보이는 큰 차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가 모이면 결정적인 '큰 차이'로 이어지지 않을까. 강수진 씨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상진 광고회사 웰콤 기획국장 fresh.sj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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