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CIA가 그녀를 고용한 진짜 이유는? ‘코버트 어페어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일 1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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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버트 어페어즈\'의 두 얼굴. 애니 역의 파이퍼 페라보와 오기 역의 크리스토퍼 고햄.
\'코버트 어페어즈\'의 두 얼굴. 애니 역의 파이퍼 페라보와 오기 역의 크리스토퍼 고햄.
첩보물을 보면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일에 휘말려있는 경우를 발견한다. 그때 혈혈단신으로 고군분투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런 장면이야말로 첩보물의 재미라고 하겠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만큼 끔찍한 상황도 없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본 아이덴티티'로 시작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 스파이랄지,

하루아침에 쫓기는 형국이 되어 아무도 믿을 수 없고 계속해서 도망다녀야 하는 상황 등이 그런 끔찍한 상황의 연장선에 놓이겠다. 미국 케이블 채널 USA에서 7월 13일 방영을 시작한 따끈따끈한 첩보시리즈 '코버트 어페어즈'에서도 그런 복잡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주인공 애니 워커는 자신의 능력으로 CIA 요원이 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애니를 이용해 더 큰 목표를 이루려는 CIA의 비밀스러운 작전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쉬울 것 같았던 애니의 첫 임무는 호텔방이 벌집이 되는 총격전으로 변모한다.
쉬울 것 같았던 애니의 첫 임무는 호텔방이 벌집이 되는 총격전으로 변모한다.

▶ 신참 CIA요원 애니 워커의 진땀 빼는 첫 번째 임무

애니 워커(파이퍼 페라보)는 다국어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CIA 요원으로 발탁됐다. 한참 동기들과 함께 뛰고 구르던 훈련 도중 본부로부터 호출을 받고 첫 임무를 시작한다.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현장에 투입된 적 없는 애니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콜걸로 가장해 러시아 정보원을 만나 접선하라"는 것. 이보다 더 쉬운 일도 없다며 무심하고 시크하게 그녀를 현장에 내보내는 CIA DPD(Domestic Protection Division)의 부장 조안 캠벨(카리 멧쳇)은 정장을 입은 애니에게 "워싱턴의 콜걸들은 보수적"이라며 특별히 새로운 의상을 주문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애니의 첫 임무는 딱 떨어지는 정장에 킬힐을 신은 출근복장 그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애니의 첫 임무는 식은 죽 먹기가 아닌 자동소총으로 호텔방이 벌집이 되는 총격전으로 반전되고, 이어진 추격전에서 애니는 신원미상의 남자로부터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다.

첫날의 줄거리만 보면 좌충우돌 신입 CIA 요원의 적응기가 아닐까라는 예상이 먼저 들지만, 사실 '코버트 어페어즈'의 바탕에 놓인 큰 줄거리는 애니의 과거에서 출발한다. '코버트 어페어즈'의 첫장면인 애니의 CIA 지원은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 시작됐다.

"당신의 이름은 애니 워커입니까?" "네"

"당신은 6개 국어를 할 수 있습니까?" "네"

신상에 대한 확인은 개인적인 질문으로 넘어간다. "당신은 2년 전 진지한 관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2년 전 배낭여행 중이던 애니는 스리랑카에서 영어강사인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불같이 사랑했고 근심없이 행복했던 관계는, 한 장의 쪽지와 50달러를 남긴 채 떠나간 남자로 인해 애니에게 상처로 남았다. 그 뒤 홀로 남겨졌던 애니는 둘이 사랑하며 약속했던 많은 곳을 여행했고, 이제 미국에 돌아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으로 CIA를 선택한다.

"진실은 너무 복잡해, 나를 용서해." 쪽지 한장 남기고 떠난 애니의 옛사랑.
"진실은 너무 복잡해, 나를 용서해." 쪽지 한장 남기고 떠난 애니의 옛사랑.

▶ 매일매일이 위장작전, 하지만 그 뒤에는…

시리즈의 제목 '코버트 어페어즈'(Covert Affairs)는 '위장 작전'이라는 뜻으로,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경찰이나 FBI에게도 CIA요원이라고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애니가 언제나 잠입수사를 하게 되는 것과, 가족에게조차 자신이 CIA라고 말할 수 없어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일한다고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애니의 사생활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코버트 어페어즈'는 이 칼럼을 통해 이미 소개한 바 있는 NBC의 스파이물 '척'과도 일맥상통한다. 스파이답지 못한 순진한 얼굴의 주인공이 복잡하고 정교한 관료체계 안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현실을 건설해가는 동시에, 이제까지 관계 맺어온 이전의 현실을 속이면서 빠지게 되는 감정의 괴리가 드라마에 결을 더하고 인물의 페이소스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애니 역시 첫 임무에서 죽을 뻔한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준 얼굴과 자신이 사랑했던 그러나 마음을 산산이 부수고 그림자로만 남은 얼굴이 같은 얼굴 아니냐는 의문 속에서 더욱 임무에 매진한다. 사실 CIA는 애니의 전 남자친구엿던 벤 머서(에이언 베일리)에게 접근하기 위해 애니를 요원으로 고용했다. 말하자면 '코버트 어페어즈'라는 제목은 벤 머서라는 CIA의 타깃을 잡기 위해 드라마가 설계한 겹겹의 위장과 앞으로 밝혀질 반전을 넌지시 시사한다.

조금 전 '척'과 비교를 했지만, '코버트 어페어즈'는 같은 방송국 네트워크인 USA에서 같은 날 한 시간 앞서 방영하는 '화이트 칼라'와의 비교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역시 이 칼럼을 통해서 소개한 적 있는 '화이트 칼라'는 FBI 요원과 전직 위조범이 짝패를 이뤄 사건을 해결해가는 드라마로, 드라마의 큰 줄거리는 주인공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실연에 집중되어 있는 등 '코버트 어페어즈'와 비슷한 이야기의 구조와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주인공, 생생한 액션, 팔색조처럼 매번 바뀌는 위장업무, 그에 따르는 스릴 등 스파이 드라마라면 가져야 할 다양한 잔재미가 무리없이 어우러져, '코버트 어페어즈'는 첫 방송 뒤 '화이트 칼라'에 이어 보기에 무리 없이 어울린다는 반응 또한 얻었다.

코버트 어페어즈 포스터. "싱글 여자의 더블라이프"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코버트 어페어즈 포스터. "싱글 여자의 더블라이프"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파이퍼 페라보, '코버트 어페어즈'의 얼굴

'코버트 어페어즈'의 얼굴은 단연 파이퍼 페라보다. 미국 연예 전문 블로그 'Zap2it.com'에 따르면, "페라보는 전천후"다. 한국 관객에게는 아마 영화 '코요테 어글리'로 가장 알려졌을 이 여배우는, '코요태 어글리'에서 보여줬던 풋풋한 매력은 사라졌지만, 표정이 풍부한 얼굴로 자신이 마주한 복잡한 상황에 대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전달한다. 가늘고 긴 얼굴, 커다란 입, 얼굴에서 가장 먼저 인상을 만드는 풍성한 눈썹과 정겨운 눈매는, 정보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진실을 숨겨야 하는 현실과, 기관에 적응해야 하는 힘에 부친 하루하루를 애니의 얼굴로 표현한다. 빠른 템포였음에도 물 흐르듯 펼쳐졌던 페라보의 액션 역시 첩보드라마의 여성 캐릭터가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고 미묘한 웃음을 흘리는 팜파탈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에서 액션을 소화하는 것이 이 계절의 트렌드라는 걸, 최근 한국을 방문한 '솔트'의 안젤리나 졸리에 이어 여지없이 증명한다.

애니의 CIA 신참 생활을 돕는 오기 앤더슨 역의 크리스토퍼 고햄 역시 '코버트 어페어'의 중요한 인물이다. '어글리 베티'의 헨리를 연기했던 고햄은 부드러운 이미지의 얼굴 덕분에 호감형 훈남을 연기해왔고, '코버트 어페어즈'에서도 오기가 되어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작전을 진행하던 중 사고로 실명해 지금은 본부에서 기술지원을 맡고 있는 그이지만, 누구보다 애니의 고충을 이해하는 동시에 탁월한 유머감각으로 후배를 돕는다. "내가 여자라서 몸싸움에서 지는 것이 분하다"는 애니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부서장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화장실에 숨어있으면 "남자화장실에 들어온 건 아느냐"며 온화하게 감싼다. 애니가 사라진 남자친구이자 CIA의 타깃인 벤 머서와의 불행한 이별에 힘들어한다는 걸 알지만, 오기와 애니가 러브라인을 형성하지 않을까 섣부른 기대를 해보는 것도, 매력적인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고려하면 무리는 아닐 듯 하다.

그 밖에도 카리스마 있는 부서장이자 국장의 부인인 조안 캠벨은 TNT의 '레버리지'에서 네이트(티모시 허튼)의 부인 역할로 출연한 카리 맷쳇이 연기하고, 관록 있는 배우 피터 갤러거가 어딘지 모르게 의심스럽지만 미스터리한 매력을 풍기는 CIA의 국장 아서 캠벨을 연기한다. '코버트 어페어즈'에서 조안과 아서는 부부로 설정되어 있는데, 남녀 두 수장이 뿜는 부부싸움의 카리스마도 볼거리다. 또 '히어로즈'에서 모힌더 수레쉬를 연기했던 센드힐 라마무르디가 아서 캠벨의 수족이자 CIA 고위 인사의 아들인 제이 윌콕스를 연기해 CIA 안에서 벌어지는 작전에도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 호평으로 출발한 시작, 본격적인 경쟁 모드

현재 3번째 에피소드의 방영을 마친 이 시리즈에 대한 미디어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버라이어티'는 "대중적이며 호감이 가는 이야기"라고 평했고, '뉴욕 타임즈'는 "예스럽고 아취있는 드라마"라며 호의적인 대열에 합류했다. 하나둘씩 새 시리즈를 소개하려는 케이블 네트워크와 텔레비전 네트워크, 그리고 극장가의 움직임까지 살펴보면 이 정도면 성공적인 출발인 듯하지만, AMC의 '루비콘' NBC의 '언더커버' 등 같은 장르를 다루는 TV시리즈가 줄줄이 시청자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선발주자로서 '코버트 어페어즈'의 어깨는 무거워 보인다. '본 아이덴티티' '미스터 앤드 미시즈 스미스'를 만든 더그 라이먼 감독이 총제작을 맡아 잡은 지휘봉이 어떻게 드라마를 연주할지 궁금해진다.

안현진/ 잡식성 미드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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