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정극 도전에서 타이틀 롤 차지 ● 소지섭 김남길과 비교 안 돼도 김탁구는 해낼 수 있어 ● 초심 잃지 않는 '건강한 배우' 되는 것이 꿈
▲ 동영상 = ‘김탁구’로 하이킥, 윤시윤 (촬영 : 정주희 동아닷컴 기자)
"와~. 광화문 네거리가 한 눈에 보이네요. 청계천도 보이고…."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스튜디오를 찾은 배우 윤시윤(24)이 창문 밖으로 풍경을 내려다보더니 소년처럼 좋아했다. 그러나 창가에 앉아 자세를 취해달라는 사진 기자의 주문에는 바로 낯빛이 굳었다. 셔터 소리가 멈추고서야 그는 얼른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어이쿠야~. 제가 원래 고소공포증이 심하거든요. 이 근처 고층건물 옥상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제 몸이 완전히 경직돼 있을 거예요."
죽다 살아났다는 듯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 그에게서 3월 종영한 MBC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의 '고딩' 준혁 학생 분위기가 났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외모 때문에 그는 올 7월 말 개봉 예정인 영화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이하 '고사2')에서도 고등학생 역할을 맡았다.
그가 드디어 제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게 된 작품은 9일 시작된 KBS2 새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윤시윤은 '고사2'의 주연을 꿰찬데 이어,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타이틀 롤을 맡았다. 무명 시절 없이 '지붕킥'으로 데뷔한 그로서는 놀라운 성과다. 과연 그에게 어떤 힘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일까. 1시간 반이 넘도록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기자는 그의 내공을 일단 '말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윤시윤은 말을 잘했다. 그대로 받아 써 모으기만 하면 '어록'이 될만한 명언들을 따박따박 쏟아냈다. 다소 민감한 질문에도 겸손함 반, 자신감 반이 섞인 '외교적 레토릭'을 구사했다. 팬들은 말 잘하는 그에게 '개념 시윤' '말발 시윤'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젊은 배우들 중에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 처음 봤다"는 기자의 칭찬에도 "질문이 좋아서 대답이 잘 나오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스물 넷의 이 남자가 더 궁금해졌다.
▶ 첫 정극 도전, 탁구로 거듭나다
현재 김탁구는 아역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윤시윤은 김탁구가 스물 네 살일 때부터 등장한다. 딱 지금 윤시윤과 같은 나이다. 드디어 성인 연기를 하게 된 소감은 어떨까.
"고사 2와 지붕킥에서는 제 안의 소년성을 끄집어내는데 주력했어요. 이제 반대로 소년성을 줄이고 탁구 특유의 캐릭터를 이끌어내는데 힘쓰고 있죠."
첫 정극 도전작에서 곧바로 주연으로 발탁되는 '속성코스'를 밟게 된 그에게 기대만큼 우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성인 김탁구는 24일 방영 예정인 6회 마지막 장면부터 출연하게 되는데도 벌써부터 연기력 운운하는 이들이 있다. 서운하진 않을까.
"논란이 이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아직 보여 드린 게 없으니까요. 딱 두 가지만 생각하고 있어요. 한 가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배워야겠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외상을 갚자'는 거예요. 받은 사랑에 비해 보여 드린 게 없는 만큼 그 빚을 이번 작품을 통해 갚아드리고 싶어요. 이 두 가지만 이루면 저 스스로는 대만족이예요."
'제빵왕 김탁구'의 방영 첫 주 성적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였다. 전광렬, 전인화, 정성모 등 중견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아역 연기자들의 열연에 힘입은 결과다. 앞으로 이 드라마가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윤시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일단 출발이 좋은데 아역 출연 분은 봤나요?
"아역이 표현하는 김탁구도 제가 직접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모니터했어요. 신기하게도 아역 연기자가 장난을 칠 때 발음 끝을 약간 뭉개는 버릇이 저랑 똑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배턴을 넘겨받게 될 제가 잘 연결해 나가야겠죠."
김탁구는 거성식품의 회장(전광렬 분)이 보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회장의 아내(전인화)가 옛 연인과 정을 통해 낳은 아들(주원)의 견제 속에서도 제빵 명인으로 성장해 가는 꿋꿋한 캐릭터인 만큼 밝고 구김살 없는 성격을 연기해야 한다.
윤시윤이 맡은 김탁구는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고난을 극복하고 제빵 명인에 오르는 강한 캐릭터다. 함께 출연하는 이영아와 함께 제빵 실습 중인 윤시윤. 사진제공 삼화네트웍스.
- 캐스팅 과정에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감독님께서 '긍정의 힘'을 알고 있냐고 물으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 제목인데다 데뷔 때부터 마음속으로 새긴 좌우명이라 내심 반가웠죠. 감독님께 '연기력은 완벽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직 투박하고 부족하지만 '긍정의 힘' 은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걸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 '지붕킥'은 10대, 20대 시청자들이 많았다면 1970년대를 전후로 한 '김탁구'는 중년 이상의 시청자도 많을 것 같아요. 시대극의 매력이라면….
"러닝셔츠를 오래 입으면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잊어버리게 되잖아요. 시대극의 매력은 친숙함인 것 같아요. 그 시대를 직접 겪었던 사람들이라면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긴 캐릭터에도 애정을 갖게 되죠."
김탁구는 냄새만 맡고도 빵의 발효정도를 알 수 있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제빵사다. 김탁구와 윤시윤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될까.
"저도 후각은 엄청나게 예민해요. 방에 있다가도 어머니가 무슨 음식을 요리하시는지 금세 알아맞히죠. 그런데 음식 냄새 말고 다른 냄새에는 그리 민감하지 않아요.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탁구도 빵을 좋아하는 만큼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고요."
윤시윤은 현재 함께 출연하는 이영아(26), 주원(23)과 함께 빵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영아는 절대미각을 가진 제빵 신동으로 탁구와 사랑에 빠지는 양미순 역을, 주원은 거성식품을 두고 탁구와 경쟁하나 재능을 타고난 탁구에게 열등감을 갖는 구마준 역을 맡았다.
- 제작발표회 때 직접 빵을 만들어 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서 시윤 씨와 주원 씨가 정 반대로 답해 눈길을 끌었어요. 시윤 씨는 '내 스타일대로 만든다'고 했고, 주원 씨는 '선생님 말씀대로 똑같이 따라한다'고 했죠.
"주원 씨는 신중한 성격 그대로 빵도 매뉴얼에 맞춰 예쁘게 만들더라고요. 저는 혼자 구석에서 생크림으로 토끼 만들고 놀아요. 소보루빵을 만들 때는 '왜 가장 맛있는 쿠키 부위가 빵 한 면에만 붙어있지?' 라는 생각에 다른 면에도 붙여 구워봤는데 홀랑 타버리더라고요. 저는 뭐든 제가 즐거워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MBC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준혁 학생\'으로 데뷔한 윤시윤. 사진제공 MBC.
▶ 남과의 비교보다 나와의 싸움이 두렵다
윤시윤은 동시간대 경쟁작 '로드넘버원'(MBC)의 남자 주연 소지섭, '나쁜남자'(SBS)의 김남길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았고 스타성 측면에서도 경쟁자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는 평가다.
"소지섭, 김남길… 그리고 윤시윤? 에이, 저를 두 분 이름과 나란히 놓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죠. 선배님들이 흘린 땀과 노력한 시간이 있는데…. 하지만 저는 모자라도 탁구라는 캐릭터는 경쟁작 캐릭터들에 뒤지지 않아요. 캐릭터로 승부해야죠."
윤시윤은 소지섭이나 김남길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 두렵다고 했다.
"첫 촬영 때가 생각나네요. 스스로 겁먹지 않을까 겁이 나는 기분이 뭔지 아세요? 다행히 제가 부족한 걸 너무 잘 아시는 제작진과 선배님들이 제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주시더라고요. 아역 연기자를 대하듯 친절하신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윤시윤은 '지붕킥'의 전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이 배출한 스타 정일우(23)와 종종 비교되곤 한다. 정일우 역시 시트콤으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고 이후 '돌아온 일지매' 등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또 속쌍꺼풀이 가늘게 진 '고운' 눈매와 가는 얼굴선은 이준기(28)를 떠올리게 한다.
"이준기 선배님이 입대하느라 머리를 자르시니 저랑 별로 안 닮았던데…. 하하. 저야 무조건 영광이죠. 한 시기, 한 시대에 대중을 놀라게 한 아이콘들이시잖아요. 1년 전만해도 이런 선배님들과 저를 감히 비교할 수 있었겠어요?"
- 갑작스런 인기를 얻게 된 스타 중 일부는 너무 거만해진 나머지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죠. 자기 관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배우로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훌륭한 선배들을 관찰해보니 공통점이 자신감이더라고요. 배우로서 건강하다는 것은 교만하지 않되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가꿀 수 있는 힘, 즉 자신감을 갖춘 것이죠. 비 선배님을 롤 모델 중 하나로 삼은 것도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한 만큼 당당한 모습 때문이에요."
- 배우로서 가장 건강하다고 느낀 선배가 있다면?
"전광렬 선배님이요. 연기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시며 진지한 표정을 지으시다가도 씩 한 번 웃어주시면…. 아 그 영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배우의 카리스마가 저런 것이구나, 나도 나중에 이렇게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 내내 진지함과 장난기 사이를 수시로 오락가락하며 특유의 '말발'을 자랑한 KBS2 새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 윤시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 영화, 노래… 다음 도전은?
'고사2'에서 그는 김수로, 황정음, 그룹 티아라의 지연 등과 함께 연기했다. 영화 보충 촬영이 남아 있어 현재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병행하고 있다.
- 영화와 드라마를 함께 찍는 것이 어렵지 않나요?
"전혀요. 저는 재밌는 일은 한번에 몰아서 하는 게 좋아요. 영화 촬영도 참 재밌었는데 공포영화라 주로 밤에 촬영하다보니 매일 잠과 싸우느라 힘들었어요."
- 영화를 찍으면서 배운 게 있다면?
"고사에는 저보다 신인인 배우들이 많이 출연해요. '남학생3' '여학생4' 같이 배역 이름도 없고 대사도 없는 단역 배우들이 카메라가 돌고 액션 사인이 내려지기도 전에 감정이입을 하며 연기를 준비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마치 이들이 저를 호되게 혼낸 기분이랄까. 제가 벌써부터 초심을 잃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게 됐어요."
그는 출중한 노래 실력으로도 유명하다. 올 4월 말 케이블채널 '올리브 TV'의 뮤직드라마 '티아라&윤시윤의 부비부비'를 통해 직접 부른 OST '너에게 간다'를 공개했고 '지붕킥'에서도 노래방 장면에서 가창력을 뽐냈다.
- 혹시 가수로도 활동 영역을 넓힐 생각인가요?
"절대 아니에요. 연기자 윤시윤의 노래도 듣고 싶은 팬들이 있다면 백번 천번이라도 불러드리겠지만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어요. 노래방 가는 건 좋아해요. '18번'은 '눈의 꽃'이고요."
이쯤에서 능수능란한 그의 말재주 비결을 묻고 싶었다. 질문보다 대답이 짧거나, 장황하나 핵심은 없는 대다수 신인 연예인들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윤시윤의 말솜씨에는 '연륜'까지 느껴졌다.
- 스피치 학원이라도 다니시나요?
"아니에요. 제 주위에 인생 상담을 해주시는 멘토들이 많은데 그 분들의 말을 옮기다보니 잘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겠죠. '세경· 정음('지붕킥' 출연배우) 중에 또는 영아·유진('김탁구' 출연배우) 가운데 누가 더 좋으냐는 질문만 아니면 뭐든 답해드릴 수는 있어요."
이렇게 말하며 슬쩍 찡그리는 눈매에서 장난기가 뚝뚝 흘렀다. 인터뷰 중간 중간 매니저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도 밝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좋은 분위기를 틈타 여자 연예인 얘기를 슬쩍 꺼냈다.
- 얼마 전 '고사2' 촬영현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시윤 씨가 티아라의 지연을 정말 예뻐한다는 사실을 황정음 씨가 폭로해 화제가 됐어요. 이상형이 지연 씨인가요?
"제가 빵을 배우면서 느낀 건데, 소문이 빵처럼 빵 부풀어질 때가 있더라고요. 지연 씨가 '지붕킥'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해서 다른 아이돌 멤버들보다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뜻이었는데 정음 누나가 농담처럼 말한 게 확대 재생산됐어요. 지연 씨도 불편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제 이상형은 여성스러운 성격과 외모를 가진 사람? 그런데 늘 바뀌니까 나이 들면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하."
그의 취미는 독서다. 그냥 '콘셉트'로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 여러 차례 되물었다. 그러나 팬들 사이에서 이미 그의 취미는 널리 알려져 있다. 소속사로 배달되는 선물 중 90%는 책이 차지할 정도.
"최근에 선물 받은 것 중엔 법정스님 책들이 많았는데, 마침 팬 네 분이 똑같이 잠언집을 선물해 주셨더라고요. 같은 책을 네 번 읽었죠. 그런데 읽을 때 마다 집중하게 되는 포인트가 달라지더라고요. 이동 시간이나 대기 시간에 전자오락을 하는 연예인들도 많은데 전 오락은 5분 이상하면 지루해져요."
곁에 있던 매니저는 "책을 많이 읽어 시윤이가 말을 잘하는 것 같다"고 거들었다.
그의 또 다른 취미는 등산이다. 국내에 있는 웬만한 산들은 다 가 봤을 정도.
"그런데 또래 친구들더러 등산 가자고 하면 다 싫어하는 거 있죠. 산사에도 가고 인근 섬에 자전거도 타러 가고 하면 참 좋은데…."
진지함과 장난기 사이를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그와의 대화는 유쾌했다. 그러나 그는 유쾌한 '말발' 만큼이나 통쾌한 '연기발'로 시청자를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그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 위에 올라야 한다.
제빵 명인을 연기할 윤시윤이 제일 좋아하는 빵은 소보루와 바게뜨다.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제 맛을 내지 못하는 이 빵들처럼 그가 연기하는 김탁구가 담백하고 탄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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