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곽금주]창의성도 협동에서 일어난다

  • 입력 2009년 7월 15일 02시 59분


최근 영화계를 강타하고 있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의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할리우드 최고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그답게 차별화된 창의적 발상의 제작이 또다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토록 혁신적인 발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스필버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포함해 입양한 아이들까지 7명의 아버지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반드시 아이들과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같이 놀아주고, 또 그렇게 뒹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하니 무척이나 가정적인 아버지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순간 스필버그 스스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감동하게 된다는데, 바로 아이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야말로 스필버그식 창의성의 자극제가 아닐까. 로저 폰 외흐는 창의성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로 ‘놀이는 경박스럽다고 여기는 것’을 꼽았는데, 스필버그는 이를 몸소 증명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집단속에서 새로운 통찰 끌어내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창의성 관련 붐이 일고 있다. 창의시정(創意市政), 창의적 인재 교육, 창조경영 등등 사회 곳곳에서 창의를 강령으로 내걸고 새로운 결과를 창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로널드 골드먼은 창의성 개념을 우산에 비유했는데, 겉으로는 확 펼쳐져 그 안에 모든 것들이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밑엔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는 의미다. 창의성에 관한 심리학 연구도 1950년대부터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 그 개념 정의조차 논쟁 중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창의성이 무의식에서 비롯되고,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고나야 하며, 소수 영재에게서만 나타난다는 생각이 잘못된 믿음이란 것이다. 보통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창의성이란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그리고 많은 연습을 통해 일어난다. 창의성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위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며, 그 행위가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 사회문화적 특징인 동시에 협동과정으로 이뤄진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문화적 협동과정으로 창조적 활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창의성 연구자들은 협동과정이 창조적 업적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한 개인의 독립적인 수행이 아니라 집단 속에서 사고하도록 자극받고, 그간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통해 촉발된 사고를 점검해 지속시킴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창의적 아이디어란 집단 구성원들의 작은 통찰과 서로의 생각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하고 시너지를 일으킨 협동의 결과이다.

집단 즉흥연주에서 이러한 협동적 창의성 과정을 볼 수 있다. 여러 악기 또는 장르를 섞어내는 것 자체로도 새롭지만 순서나 구성이 정해져 있지 않아 어떤 연주자가 어떤 형태의 연주로 가세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바로 ‘즉흥성’과 ‘협동성’이다.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서 작곡과 연주를 병행하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영감을 즉흥적으로 표현하고 서로의 연주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다른 변화를 더하고, 정교화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구성해낸다. 각 연주자들을 통해 이어지는 돌발 상황이 연주자들 간 마음속 대화를 거치면서 새로움으로 탈바꿈되는 집단적 창조성을 갖게 된다. 연주자들은 협동적인 창의성을 실감하게 되며, 관객은 이전에 감히 짐작하지 못했던 새로운 창조적 행위를 경험하게 된다.

에바 바스의 연구에서는 협동 상황에서 서로 주고받는 유머나 노래하기, 허밍하는 것 등이 창의적 사고를 고양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연한 환경에서 여러 사람과 감정의 일치감을 가지는 것은 결국 지금 이 자리의 타성을 벗어날 수 있도록 사고를 자극시켜 준다. 나와 관련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로 경계를 나누며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것은 결국 그 틀 안에 사고를 묶어두고 오로지 대치하고 있는 그 경계선에만 주의를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창의적이기 어렵다. 서로 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함께 동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편가르는 사회선 창의 기대못해

서로 간 대치와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지금 이 상황에서 창의적 인재가 되라는 압력은 아이러니이다. 편 가르기가 심해지고 내 편과 네 편을 나누어 서로 비난하면서 경쟁적으로 성과를 올려야 하는 이런 사회구조에서 창의 인재, 창의시정은 어렵다. 평가, 경쟁, 보상에 대한 기대에 묶여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감시하기보다 서로 간 경계를 잊고 여유로움 속에서 협동하는 그 상황에서 창의성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곽금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심리학

kjkw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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