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네팔의 염소와 민주주의

  • 입력 2009년 7월 3일 20시 56분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몇 시간 걸리나요?” “보통 7, 8시간 걸리지만 ‘반디’가 없을 때나 그렇지요.” 지난주 여름휴가를 앞당겨 네팔을 다녀왔다. 몬순 시즌이라 여행 적기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트레킹이 아니라 봉사활동이 목적이었다. 현지 여행사 측은 도로가 봉쇄되는 상황인 ‘반디’를 경고하며 항공편으로 이동하라고 권했지만 우리 일행은 자동차로 네팔 제2의 도시이자 안나푸르나를 끼고 있는 포카라로 향했다.

툭하면 스트라이크

어렵사리 도착한 포카라에선 안나푸르나는커녕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었다. 종일 장대비가 쏟아졌다. 인터넷방에서 CNN을 통해 날씨가 계속 좋지 않다는 예보를 확인한 뒤 카트만두로 철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항공편이 모두 결항이었다. 돌아갈 길은 낭떠러지를 끼고 달리는 카트만두∼포카라 간 왕복 2차로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짐을 챙기는 순간 도로가 봉쇄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 전날 우리가 자동차로 달렸던 그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하루가 지난 그 순간까지도 차들이 도로에 그대로 서있다는 소식이었다. 차로도 신호등도 가로등도 없는 왕복 2차로에다 물소나 염소가 자주 지나다니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빈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미한 사고가 났다고 해서 도로가 이틀씩이나 봉쇄되는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현지인의 설명으로는 자동차가 염소를 치는 사고가 나면 염소 주인이 엄청난 돈을 요구하며 도로를 막아버린다는 것이었다. 염소 한 마리 때문에 나라의 유일한 국도를 봉쇄한다니. 그것이 바로 ‘반디’, 즉 네팔식 스트라이크였다.

산악국가인 네팔이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떨어진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동행한 김미행 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KOVA) 이사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대원으로 1992년부터 2년간 네팔에 살았다. 그는 “예전엔 네팔의 민심이 이렇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잘못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네팔이 이렇게 피폐해진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마오쩌둥의 이념을 추종하는 공산 게릴라와 장기간에 걸친 전쟁 때문이다. 네팔정부는 산악지대에서 마오이스트와 12년간 내전을 벌였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내전에서 1만4000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실제 사망자는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다 2006년 모든 정파가 모여 내전을 끝내면서 마오이스트들은 의회로 진출했다.

총선을 통해 다수당이 된 마오이스트는 갸넨드라 국왕을 폐위시키고 왕정도 폐지했다. 잘났건 못났건 국가의 구심점이던 왕이 폐위되면서 네팔 국민은 준비 없이 공화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민주주의에 그간 억눌렸던 국민의 요구와 분노가 쏟아졌다. 과거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며 생떼 쓰는 것을 민주주의로 여기는 현실은 정말이지 안타깝다. 네팔은 인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네팔 남부의 주민이 인도에서 올라오는 길을 하루만 막아도 유류 수송차가 끊겨 네팔 전체가 정전이 되고 만다.

우린 민주주의 수출 자격 있나

마오이스트에 대한 반발에 힘입어 5월 추대된 마다브 쿠마르 네팔 신임총리는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지한파(知韓派)다. 네팔 총리는 제헌입법 과정에 한국의 도움을 요청해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네팔 각료와 의원들에게 헌법 특강을 했다. 우리나라가 네팔에 헌법과 민주주의 경험을 수출하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22주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비정규직 법안 하나 처리 못하는 한심한 국회를 보며 우리가 과연 네팔에 민주주의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내내 의문이 들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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